“나는 신(神) 아래 불가분의 하나의 국가로서 모두가 자유와 정의를 누리는 미합중국 국기와 그 국기가 상징하는 공화국에 충성할 것을 맹세합니다.”(I pledge allegiance to the flag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nd to the republic for which it stands, one nation under God, indivisible, with liberty and justice for all.)
미국인들이 과거 우리나라로 치면 ‘국민의례’를 할 때 암송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 구절이다. 2002년까지도 미국 모든 초등학교 어린이는 평일 아침마다 성조기 앞에서 이 맹세를 외워야 했다.
하지만 그해 6월25일 미국 연방고등법원은 “공립학교 학생들한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도록 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한다. 이후 공립학교가 아닌 사립학교와 사립기관들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지, 말지 자율적 결정권이 주어졌다.

◆6월14일은 미국의 성조기 제정 기리는 '국기의 날'
16일 미국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6월14일은 ‘국기의 날’이었다. 미국 국기, 곧 성조기를 기리는 날이다. 한국에는 국기, 곧 태극기를 기리는 날이 아직 없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성조기는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1776년 처음 등장했다. 그해 7월4일 당시만 해도 영국 식민지 지위였던 북아메리카 13개 주(州) 대표들이 모여 토머스 제퍼슨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를 공식 채택했다. 미국이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이겨 세계 다른 나라들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은 건 7년 뒤인 1783년의 일이나, 미국인들은 1776년 7월4일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해 기리고 있다.

1776년 선보인 최초의 성조기는 ‘그랜드 유니언(Grand Union·사진)’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독립군 지휘관이자 미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워싱턴이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왼쪽 상단에 영국 국기 ‘유니언잭’ 문양이 들어가고 나머지는 붉은색과 흰색의 줄 13개로 채워졌다. 그런데 영국과의 독립전쟁 도중인 1777년 6월14일 미국 의회는 “유니언잭 문양이 들어가지 않은 자체 국기를 마련하자”고 제안한다.
새 국기 도안은 전에 유니언잭 문양이 있던 자리를 푸른색 바탕에 13개의 흰색 별을 수놓은 문양으로 대체해 버렸다. 오늘날 성조기 모습의 원조인 셈이다. 그 뒤 미합중국에 속한 주 숫자가 늘어나면서 애초 13개에 불과했던 별이 지금은 50개까지 늘었다.
◆美 육군 창설일과 같아… 기념행사는 주별로 진행
미국 의회가 ‘유니언잭과 완전히 구별되는’ 국기 디자인 마련을 제안한 1777년 6월14일로부터 100년이 지난 1877년 미국 의회는 “매년 6월14일을 국기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자”고 행정부에 요청한다. 가장 먼저 뉴욕주가 6월14일을 국기의 날로 선포했으나 다른 주들이 그 뒤를 따르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와 관련해 미국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국기의 날로 제안된 날짜인 6월14일이 한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미국 ‘메모리얼데이’(5월의 마지막 월요일)는 물론 미국 독립기념일(7월4일)과도 너무 가깝다는 점에 근거한 여론의 반대가 제법 거셌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국기의 날 국경일 지정이 제안된지 거의 40년이 지난 1916년에야 우드로 윌슨 당시 대통령이 6월14일 국기의 날을 공식 국경일로 선포했다. 그로부터 33년 세월이 더 흐른 1949년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은 연방 차원의 국기의 날 법안에 정식으로 서명했다.
이후 미국 대통령은 매년 6월14일을 국기의 날을 선포하고 있다. 이날 모든 미국 국민은 집과 사업장 밖에 성조기를 내걸라는 독려를 받는다. 다만, 국기의 날을 실제로 어떻게 기념할 것인지는 각 주별로 알아서 정한다. 보통 모든 공공건물에 성조기가 게양되고 공공장소에선 기념식 개최, 유명인의 기념 연설 등이 이뤄진다.
국기의 날인 6월14일은 미국 육군 창설기념일이기도 하다. 영국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 도중인 1784년 6월14일 미 의회가 기존의 ‘대륙군’을 해체하고 대신 ‘미국 육군’을 정식으로 만든 것을 기리는 날이다.
◆韓, 10월15일 '태극기의 날' 제정 운동 있었지만…
한국도 미국과 같은 국기의 날, 또는 ‘태극기의 날’ 같은 것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은 없고 과거 태극기의 날을 창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현재는 관련 목소리가 잦아든 상태다.
우리나라 태극기의 기원은 조선 말기인 1882년 외교관 박영효(朴泳孝)가 고종 임금의 명을 받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태극 문양을 활용한 깃발을 만들어 국기처럼 활용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종은 이듬해인 1883년 3월6일 왕명으로 이 깃발을 조선의 국기인 ‘태극기’라고 공식 선포한다.
다만 태극기 규격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아 다양한 형태의 국기가 만들어져 쓰이다가 일제강점기를 맞았다.
광복에 이어 1948년 8월15일 정식으로 출범한 대한민국 정부는 이듬해인 1949년 10월15일 태극기의 규격 등을 담은 ‘국기 제작법 고시’를 확정, 발표했다.

이를 기려 매년 10월15일을 ‘태극기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자는 운동이 과거에 있었다.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서울 송파구가 박춘희 구청장 시절 특히 적극적이어서 2016년 7월에는 구민들을 상대로 태극기의 날 제정을 위한 주민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들어선 태극기의 날 제정 움직임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현재 10월15일은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기념일인 ‘체육의 날’로 지정돼 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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