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저장장치(ESS·Energy Storage System) 화재 사고의 원인 조사 결과와 더불어 안전 강화대책을 11일 발표했다.
ESS는 생산된 전기를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내보내는 장치다. 밤이나 바람이 없는 날 등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없을 때도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정부의 신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에 꼭 필요하다.
ESS는 전세계가 주목하는 미래 신성장 산업으로 국내에서는 2017년 열풍이 불면서 시장이 급성장했다.
이처럼 승승장구하던 ESS 산업에 제동이 걸린 것은 2017년 8월 전북 고창의 설비에서 불이 나면서이다. 이를 시작으로 지난해 5월부터 지난달까지 22건의 화재가 잇달아 발생한 바 있다.
이에 주무부처인 산업부는 민·관 합동 ESS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를 꾸려 학계와 연구소, 시험인증 기관 등 출신인 19명의 전문가에게 맡겼다.
위원회는 그간 모두 23개 사고 현장에 대한 조사와 자료 분석, 76개 항목의 시험 실증을 거쳐 이날 그 결과를 발표했다.
분석 결과 전체 23건의 화재 사고 중 14건은 충전 완료 후 대기 중에 발생했다. 6건은 충방전 과정에서, 설치·시공 중에도 3건이 각각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원인으로는 전기적 충격에 대한 배터리 보호 시스템 미흡과 운영환경 관리 미흡, 설치 부주의, ESS 통합제어 및 보호체계 미흡 등 4가지 요인이 꼽혔다.
산업부와 위원회는 화재사고 원인을 두고 배터리 제조회사를 비롯해 복합적으로 책임이 있다며 다소 애매모소한 입장을 밝혔다.

김정훈 위원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배터리 제조사의 총괄 책임이 있고, 통합관리 미흡 등 SI(설계·시공) 업체의 책임도 있다”며 “현 단계에서는 기술적 화재 원인을 네다섯가지로 밝힐 뿐 정확한 책임 소재는 화재 피해 정도에 따라 사업자 간 법정에서 가려질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산업부 측은 “ESS 업체가 화재 발생과 관련해 법령 등을 위반했다면 마땅히 정부 차원에서도 책임을 묻겠지만 현재로선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몇몇 배터리 셀에서 제조상 결함을 발견했으나 이를 모사한 실증에서 화재가 발생하진 않았다고 위원회는 전했다.
다만 위원회는 제조 결함이 있는 배터리가 가혹한 조건에서 장기간 사용되면 위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화재 원인을 토대로 ESS 제조·설치·운영단계의 안전 관리를 강화하고, 소방 기준을 신설해 화재 대응능력을 제고하는 종합대책을 시행키로 했다.
먼저 제조 기준을 강화했다. ESS용 대용량 배터리 및 전력변환장치(PCS)를 안전관리 의무 대상으로 지정하는 등 주요 구성품에 대한 안전 관리를 강화하도록 했다.
오는 8월부터 배터리 셀은 안전 인증을 통해 생산공정의 결함 발생 등을 예방하고, 배터리 시스템은 안전 확인 품목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PCS는 연말까지 안전 확인 용량 범위를 현행 100㎾에서 1㎿로 높이고, 2021년까지 2㎿로 확대키로 했다.
산업부는 앞서 국제표준화기구(IEC)에서 논의 중인 국제표준(안)을 토대로 세계에서 처음으로 ESS 전체 시스템에 대한 KS 표준을 지난달 31일 제정한 바 있다.
나아가 이번 실증 시험을 통해 확보한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향후 ESS분야 국제표준 제안 등 관련 논의를 주도할 계획이다.
ESS 설치 기준을 개정해 옥내 설치에는 용량을 모두 600㎾h로 제한하고, 옥외에 설치할 때는 별도 전용건물 내 하도록 규정했다.
누전 차단과 과전압 및 과전류 보호 등 전기적 충격에 대한 보호장치의 설치를 의무화하는 한편 배터리 만충 후 추가 충전을 금지하기로 했다.
배터리실의 온도와 습도 및 분진은 제조자가 권장하는 범위 내에서 관리되도록 기준을 세울 계획이다.
과전업·전류와 누전, 온도 상승 등 이상 징후가 탐지되면 관리자에게 통보하고 비상 정지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며, 사고 시 원활한 원인 규명을 위해 전압과 전류, 온도 등 배터리 상태 등을 포함한 ESS 운전기록을 안전한 곳에 별도 보관토록 의무화된다.
정기점검 주기를 단축해 기존 4년에서 1∼2년으로 하고, 전기안전공사와 관련 업체가 공동 점검을 실시해 실효성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안전과 관련된 설비의 임의 개조·교체에 대한 특별 점검을 수시 실시하고, 미신고 공사에 대해 처벌하는 규정도 마련한다.
ESS를 특정 소방대상물로 지정해 소방시설 설치를 의무화하고, ESS에 특화된 화재 안전기준을 오는 9월까지 제정할 계획이다.
ESS 화재에 특화된 표준작전절차(SOP) 제정을 통해 화재 시 조기 진압할 수 있도록 소방 대응능력도 강화한다.
모든 사업장에 대해 전기적 보호 및 비상정지 장치를 설치토록 하고, 각 사업장에서 배터리 만충 후 추가 충전 금지는 몰론이고, 온도와 습도, 먼지 등 운영환경이 엄격하게 관리되도록 할 계획이다.
안전조치를 이행하는데 소요되는 비용과 관련해 공통안전 조치는 각 사업장 ESS 설비의 안전강화를 위한 것이므로 소유자·업계가 부담하되, 이미 업계가 자체적으로 조치 중이고 방화벽 설치 등 추가 안전조치는 옥내 설치된 ES S설비의 화재 발생 시 인명피해 방지를 위한 것으로, 정부가 일부 지원할 계획이다.
산업부는 이 같은 안전조치의 이행 여부 확인을 위해 전기안전공사 등으로 ‘ESS 안전조치 이행 점검팀‘을 구성해 사업장별로 안내하고 확인‧점검까지 할 계획이다.
ESS 핵심 구성품인 배터리 분야에는 화재 위험성이 적고 효율이 높은 차세대 제품 개발 및 조기 상용화를 지원하고, PCS는 신뢰성과 안전성을 강화하기 위한 기술 개발도 돕기로 했다.
또한 생태계 전분야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ESS 협회’의 설립을 추진해 업계 소통과 협업 수준을 대폭 제고할 계획이다.
양봉식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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