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에 딱 한 번 있는 국가 공인 시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라니 너무 화가 납니다.”
지난 1일 제28회 노무사 1차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 강모(35)씨는 당시 감독관의 무책임한 행태를 전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강씨에 따르면 그가 시험을 봤던 고사장의 감독관은 자리에 앉아 1시간 넘게 코를 골며 졸았다. 사탕을 꺼내 부스럭 소리를 내며 먹기도 했고 심지어 방귀를 수차례 뀌기도 했다고 한다.
125분 시험 시간 내내 집중력을 흐트러트리지 않으려 애썼다는 강씨는 “운 나쁘게 맨 앞자리에 앉아있어 시험에 집중하기 정말 어려웠다”며 “수험생에겐 인생이 걸려있다고 할 만큼 중요한 순간인데 감독관은 전혀 배려가 없었다. 하다못해 토익이나 워드프로세서 시험도 이 정도로 관리가 안 되진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가시험 관리 감독 문제가 잊을 만하면 도마에 오른다. 특히 일부 감독관이 시험 분위기를 흐트러트린다거나 시험지를 잘못 배분하는 등의 실수가 끊아지 않으면서 시험 주관 기관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감독관 실수에 수험생만 속앓이... 법원, 위자료 배상 판결도
지난 4월 치러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신규직원 채용 필기시험에선 답안지가 잘못 배포돼 수험생들이 혼란에 빠졌다. 1교시 시험 문제가 80문항이었는데 일부 고사장에서 50문항짜리 답안지가 배포된 것이다. 답안지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고사장별로 추가 시간을 다르게 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결국 심평원은 한 달 후 재시험을 실시했다.
2017년도 1차 경기북부 여경 시험 때도 비슷한 문제로 수험생들이 시험을 두 번 치르는 불편을 겪었다. 시험 당시 감독관이 잘못된 답안지를 배부해 시험 시간이 지연됐고 일부 고사장에선 파본 검사 후 수험생들에게 화장실을 다녀오도록 하기도 했다. 시험을 먼저 시작한 고사장도 있었다. 이에 이승철 당시 경기북부경찰청장이 사과문을 게시했고 재시험이 결정됐다.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관련해서도 과거 시험감독관의 불찰로 피해를 본 수험생에게 위자료를 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2007학년도 수능시험 수험장에서 홍모(19)군은 시험감독관이었던 김모 교사가 홍군 답안지에 날인을 잘못하는 바람에 3교시가 끝난 뒤 고사본부에 내려가 답안지를 재작성해야 했다. 평소 수능 모의평가 전과목에서 1등급을 받던 홍군은 이날 시험에서 1~3교시는 모두 1등급을 받았으나 4교시는 4과목 중 2과목에서 2~3등급을 받았다. 홍군은 국가와 김 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홍군에게 위자료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공무원들이 ‘알바’ 개념으로 감독... “최저 시급도 못 받아”
노무사, 공인중개사 등 국가시험 시행을 담당하는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문의한 결과 시험감독관은 보통 공무원 등 공공기관 직원이 맡는다. 고사장으로 지정된 학교의 교사가 하루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감독관을 하는 사례가 많았다. 신분이 확실하며 해당 고사장에 대해 잘 안다는 게 큰 이유였다.
시험 과정에 대한 사전 교육은 30분~1시간 정도 진행된다. 공단 관계자는 “문제가 된 노무사 1차 시험의 감독관은 해당 전문 고등학교 교사”라며 “조사 과정에서 시험 전날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병간호해 졸음이 왔다는 해명을 들었다. 문제를 제기한 수험생들이 바라는 대로 해당 교사는 다음 시험 과정에서 감독관으로 위촉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를 전해 들은 수험생 강씨는 “사정은 딱하지만 자신이 피곤하면 대타를 세우든지 했어야 한다. 그날만 바라보고 공부해온 수험생들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독관들에 대한 낮은 처우가 관리 부실을 불렀다는 지적도 있다. 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감독관들은 최저 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당을 받는다. 거기다 대부분 시험이 주말에 이뤄지기 때문에 지원자도 적다는 전언이다.
공단 관계자는 “시험 감독을 하시는 분들을 사실 일종의 봉사 정신으로 해주시는 거다. 이들에게 더 강한 수준의 감독관 교육을 한다거나 하면 이마저도 아무도 안 하려고 할 것”이라며 “약 20만명이 응시하는 공인중개사 시험과 달리 응시자가 6000명 정도인 노무사 시험은 사실상 시험 주관 기관 입장에서 적자가 난다. 감독관 수당을 올리기도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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