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후원(기부) 사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보배드림 사건에 앞서 ‘고(故) 장자연 사건’의 증언자로 나선 배우 윤지오씨가 후원 사기 혐의로 경찰에 고발당한 일이 있었고, 성 칼럼니스트 겸 작가 은하선씨 등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지는 사례도 잇따랐다. 좋은 취지로 남을 도우려는 온정의 손길이 잇단 사기 논란 탓에 자칫 위축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고소전·유죄 판결 등 이어지며 논란
윤지오씨와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김수민 작가의 법률대리인 박훈 변호사는 올해 4월 말 윤씨를 사기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박 변호사는 “윤씨는 ‘장자연 문건’에 나오는 ‘조선일보 방사장’ 부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함에도 마치 뭔가를 아는 것처럼 얼버무렸고, 신변의 위협이 전혀 없음에도 일반 교통사고를 테러로 둔갑시켜 사람들을 기망했다”며 “이런를 통해 윤씨는 은행과 해외 펀드 사이트로 후원금을 모금, 재산상 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후원금을 1원도 쓰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맞고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씨에게 후원금을 보냈던 이들 역시 조만간 민사소송을 제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퀴어 문화제 후원번호를 방송사 PD의 전화번호인 것처럼 속여 수십명에게 원치 않는 후원금을 보내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은하선씨는 지난달 서울서부지법에서 열린 1심 판결에서 벌금 100만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은씨는 2017년 12월 문자 1건당 정보이용료 3000원이 후원금 명목으로 부과되는 퀴어 문화제 후원번호를 EBS 프로그램 ‘까칠남녀’ 제작자 번호인 것처럼 페이스북에 올려 90여명에게 후원금 44만4000원을 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은씨는 까칠남녀의 방영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퀴어 문화제 후원금을 과금할 생각으로 이런 행위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과 은씨 측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기부단체 차원에서 후원 사기가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불우한 아동을 지원하겠다며 기부금을 받아 횡령한 혐의(상습사기 등)로 기소된 사단법인 ‘새희망씨앗’의 윤모 회장은 얼마 전 대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확정받았다. 새희망씨앗은 2014년 2월부터 2017년 7월까지 4만9000여명에게 결손 아동을 위한 후원금 약 127억원을 받아 놓고 실제로는 2억원가량만 아이들에게 쓴 것으로 드러났다. 윤 회장은 후원금으로 아파트와 외제차를 사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등 호화생활을 누렸다. 올해 초엔 동물보호활동 명목으로 모은 후원금 중 1억여원을 보증금이나 월세 등 사적 용도로 유용한 동물보호단체 대표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온라인 공간선 소액 후원 사기 기승
꼭 유명인이나 기부 관련 단체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온라인 공간에서 심심찮게 후원 사기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보배드림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익명성에 기대 자신의 처지를 얼마든지 실제보다 안타까워 보이게 포장할 수 있고, 후원금 규모도 비교적 작기 때문이다. A씨는 사연 외에도 도와주겠다고 했던 한 보배드림 회원이 정작 자신을 조롱하고 집에 쓰레기가 담긴 택배를 보냈다는 내용의 자작극으로 동정을 얻으려 한 것으로 밝혀졌다. A씨를 후원한 보배드림 회원들은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보배드림 운영자는 “단체 소송을 통해 이런 소액 사기도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첫 선례를 만들겠다”고 공지했다.

지역별로 있는 맘카페 등에서도 ‘미혼모인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아기 분유 살 돈도 없다’, ‘한겨울에 추운 방에서 아이와 부둥켜 안고만 있다’ 따위의 글을 올린 뒤 후원을 요청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한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의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게 후원 사기가 용이해진 원인으로 보인다”며 “기본적으로 후원 사기도 사기 범죄라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또 “후원자들이 대부분 소액을 후원하기 때문에 사기 피해가 발생해도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허윤 변호사는 “후원 사기에는 일반적으로 사기 혐의가 적용되며 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겐 배임 혐의가, 공직선거법이 적용되는 사람에겐 선거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 변호사는 이어 “현행법상 사기죄는 죄질에 비해 처벌이 약한 편”이라며 “한 예로 어떤 사람에게는 5000만원이 전부일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에겐 그리 큰 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원 전 개인·단체 꼼꼼히 살펴야”
경기 침체 등의 요인으로 이미 수년 전부터 기부 심리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연이은 후원 사기 논란으로 후원이 정말 필요한 개인이나 단체가 외면받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열매의 김누리 마케팅본부장은 “2년 전 일명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이후 기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 같다”며 “그런 사건들과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매년 기부 총액이 줄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개인 간 후원을 ‘P2P 모금’이라고도 하는데 아무래도 투명성이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며 “가급적 기부단체를 통해 기부를 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후원(기부)자들이 보낸 돈의 사용처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도 개선 과제로 꼽힌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6년 ‘나눔 실태 및 인식 현황’에 따르면 후원자의 61.7%가 후원금 사용처를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자료에선 후원을 하지 않는 이유로 ‘후원금 사용처가 투명하지 않아서’라는 응답이 60.7%에 달했다. 국내 대표적 기부단체로 꼽히는 또다른 단체의 한 관계자는 “특히 개인 간 후원은 보낸 돈을 어떻게 썼는지 피드백이 없는 경우가 많다”며 “후원자들이 후원을 하고 그냥 끝내는 게 아니라 한 뒤에도 지속적으로 지켜보는 것이 우리나라 기부시장을 보다 건전하게 만들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푸르메재단 강지원 이사장은 “후원을 할 때는 반드시 후원하고자 하는 개인이나 단체의 정보가 어느 정도로 공개돼 있는지 파악하고 혹시나 사적인 용도로 후원금을 쓰려는 의도가 없는지 눈여겨 봐야 한다”며 “아직까지 관련 법에 미흡한 점이 많은데, 정부가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후원하려는 대상이 기부금품법 적용 대상인지 여부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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