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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밖 청소년 74% “가족 갈등·폭력 시달렸다”

입력 : 2019-05-29 19:24:30 수정 : 2019-05-30 01:4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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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정책연구원 실태 조사 / 24.5% “가정폭력 피하려 집 나와” / 46% “집 안 돌아가고 자립하고파” / 14.6% 빚 있고 20.8%만 “저축한다”

“엄마는 화가 나면 때렸다. 술에 취해 때릴 때가 많았는데, 술이 깨면 기억을 못 한다고 하셨다. 엄마가 하는 가게에는 같이 일하는 삼촌이 있었는데, 삼촌도 뭔가 맘에 안 들면 때렸다. 나를 죽인다고 협박한 날도 있다. 살기 위해 집을 나오기로 했다. 청소년쉼터에 들어가려고 엄마에게 동의서를 내밀었다. 엄마는 ‘그런 데는 갈 데 없는 애나 가는 곳’이라고 동의를 안 해 주셨다. 아마도 내가 나와 살면 ‘애를 제대로 못 키웠다’는 손가락질을 받을까 걱정하신 것 같다. 한 달 넘게 싸운 끝에 마침내 동의서를 들고 집을 떠날 수 있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9일 공개한 ‘가정 밖 청소년의 실태와 자립지원 방안 연구’에 실린 한 청소년의 이야기다. 흔히 집 나온 청소년에게는 ‘부모 속썩이는 비행청소년’이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는 가정 내 갈등이나 폭력을 못 견뎌 가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구원이 지난해 6∼9월 청소년쉼터와 청소년회복지원시설에 있는 청소년 730명을 조사한 결과 가정 밖 생활을 하는 주된 이유는 ‘가족과의 갈등’이 49.7%로 가장 많았다. 위 사례자의 경우처럼 ‘가정 폭력을 피하기 위해’라는 응답률도 24.5%였다. 가정 밖 청소년 10명 중 7명은 가정불화가 원인인 것이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는 9.9%, ‘경제적 어려움’ 6.5%, ‘친구·선후배의 권유’ 2.6% 등이 뒤를 이었다.

 

또 가정 밖 청소년의 43.8%가 ‘부모님(보호자)이 내 몸에 멍이 들거나 상처가 남을 정도로 때린 적이 있다’고 답했고, 64.8%는 ‘부모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는다’고 했다.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가정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답한 청소년은 19.6%에 불과했고, 절반에 가까운 이들(46.0%)이 ‘자립하고 싶다’고 답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가정 밖 청소년 14.6%는 빚을 지고 있었고, 평균 액수는 265만원에 달했다. 20.8%는 저축을 하고 있었지만, 평균 저축액은 112만원으로 자립을 준비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정부는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내일이룸학교, 위기청소년 특별지원사업, 일학습병행제 같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20% 미만의 낮은 경험률을 보였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 가출청소년이 비행 청소년이나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되지 않도록 용어를 가정 밖 청소년으로 변경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학계에서도 정규 교육과정에서 이탈한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정책처럼 가정 밖 청소년에게도 비슷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2017년 발의된 관련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다. 연구를 수행한 김희진 선임연구위원은 “가정 밖 청소년 상당수가 가정 폭력이나 갈등으로 집을 나오는 경우가 많고, 원가정 복귀를 원치 않는 경우도 있어 이들을 적극적으로 정책 대상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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