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국빈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일 일성(一聲)으로 ‘공정 무역’과 ‘대미(對美) 투자’를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일본 도착 후 첫 공식 일정으로 도쿄 미나토(港)구 아카사카(赤坂)의 주일 미국대사관저에서 미국 및 일본 기업인들과 만찬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 연설을 통해 “미국과 일본은 양국에 이익이 되는 무역협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며 “일본은 오랫동안 상당히 유리한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괜찮다. 그래서 여러분이 우리를 그렇게 좋아하는 건지도 모른다”며 “(지금부터는) 좀 더 공정해질 것”이라고 뼈있는 말을 건넸다. 그러면서 “이번 (무역) 합의로 우리는 무역 불균형 문제를 다루고 미국 수출의 장벽을 제거하고 우리 관계에 공정함과 상호주의를 보장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기업인들에게 대미투자 확대도 촉구했다. “지금의 놀라운 기회를 잡는 데 합류한다면 투자에 대한 엄청난 보상을 얻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만찬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도요다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자동차 사장 등 일본 주요 기업의 경영인 30명이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에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골프 회동 후 트위터에 “일본과의 무역협상에서 큰 진전이 이뤄지는 중이다. 농업과 쇠고기를 매우 활발히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부분은 일본의 7월 선거 이후까지 기다릴 것이다. 거기서 난 큰 숫자를 기대한다”며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미·일은 지난달부터 새 무역협정을 위한 협상을 하고 있다. 지난달 워싱턴에 이어 25일 도쿄에서는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경제재생상과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고위급 협의를 진행했으나 자동차 수입물량 제한, 농산물 관세 인하, 환율조작 금지 명문화 등 쟁점에서 접점을 못 찾고 있다. 모테기 경제재생상은 고위급 협의 후 “입장차를 좁히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며 “미·일 정상회담에서는 (무역협상과 관련해) 일부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정상회담 등에서 무역 문제를 거론하겠지만 본인도 밝혔듯이 본격적인 대결은 7월 참의원(參議院·상원) 선거 후에 이뤄질 전망이다. 일본의 개헌 향배에 분수령이 될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배려하는 측면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인 모임 만찬 연설에서도 “이번 방문은 (나루히토 일왕 즉위에 대해) 특별한 축하를 위한 것이다. 무역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한 방문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폭스뉴스 백악관 출입기자인 존 로버츠는 이날 자신의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이 도쿄에서 내게 전화를 했다”며 “그는 오늘(26일)과 내일(27일) 아베 일본 총리와 무역 관련 얘기를 나눌 예정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7월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무역협상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고 적었다.

◆ 트럼프·아베 세끼 식사 함께 하며 '친밀' 과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계기로 미·일 우호 분위기를 국내외에 부각하기 위해 전력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일과 6월 일본 오사카(大阪)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등 외교 이벤트를 앞세워 개헌 향배의 분수령이 될 7월 참의원(參議院·상원) 선거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26일 삼시 세끼를 같이하며 친밀감을 과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전날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 후 첫 국빈으로 일본을 방문해 3박4일간의 방일 일정에 돌입했다. 두 정상은 오전 도쿄 인근 지바(千葉)현 모바라(茂原)시 골프장에서 오전 함께 아침식사를 한 뒤 5번째 골프 라운딩을 했다. 헬기로 골프장에 먼저 도착한 아베 총리가 역시 헬기를 타고 온 트럼프 대통령을 착륙장에서 맞이한 뒤 직접 운전하는 카트에 태워 조식 장소로 이동했다. 일본은 이날 도쿄 도심부가 33도를 기록하는 등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두 사람은 오전 9시44분 게임을 시작해 미리 정해진 계획에 따라 전체 18홀 중 16홀을 돌고 점심식사를 했다.

교도통신은 “두 정상이 긴장을 푼 채 의견을 교환하며 신뢰 관계를 깊게 하기 위해 골프를 함께했다”고 전했다. 라운딩에는 1983년 소니오픈에서 우승해 일본 선수 최초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챔피언이 된 원로 골프선수이자 트럼프·아베 골프회담의 기획자인 아오키 이사오(靑木功)도 초청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 라운딩 직전 자신의 트위터에 “아베 총리와 지금 골프를 치려고 한다. 일본은 이 게임(골프)을 사랑한다”는 글을 올렸다. 아베 총리는 라운딩 후 트위터에 “레이와(令和·나루히토 일왕의 연호) 첫 국빈으로 맞이한 트럼프 대통령과 지바에서 골프다. 새로운 레이와 시대도 미·일 동맹을 더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다”는 글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과 촬영한 사진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만난 뒤 트위터에 “일본의 많은 당국자가 (미국) 민주당이 나(트럼프 대통령)나 (미국) 공화당의 성공을 보기보다는 차라리 미국의 실패를 보기를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고 미국 민주당을 비난하는 글을 적기도 했다. 두 정상이 골프 라운딩을 하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 부인 멜라니아와 아베 총리 부인 아키에(昭惠)는 도쿄 오다이바에 위치한 디지털 미술관 팀랩을 함께 관람했다.


미·일 정상 부부는 오후에는 도쿄 료고쿠(兩國)에 있는 국기관(國技館)으로 이동해 일본의 전통씨름인 스모(相撲) 경기를 관전했다. 모래판에 가깝게 위치한 자리에 방석 대신 의자에 앉아 경기를 지켜본 트럼프 대통령은 대회 우승자 아사노야마 히데키(朝乃山英樹)에게 미국에서 주문제작한 높이 137㎝, 무게 30㎏ 정도의 대통령배(杯)를 수여했다. 일본스모협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안전과 관련해 국기관 관객들에게 “스모 경기 중 방석 등의 물건을 던지는 행위를 절대 하지 말아달라”고 적힌 유인물을 나눠주기도 했다. 스모에서는 최고 계급인 요코즈나(橫網·천하장사) 선수가 하위 계급의 선수에게 패했을 때 관객들이 자신이 깔고 앉은 방석을 던지는 관습이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방석에 맞는 불상사를 우려한 것이다.
양국 정상 부부는 저녁에는 도쿄의 번화가 롯폰기(六本木)에 있는 아늑한 분위기의 일본식 선술집인 이자카야(居酒屋)에서 만찬을 함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일 사흘째인 27일 나루히토 일왕 부부와의 만남, 아베 총리와의 11번째 정상회담, 일왕 주최 만찬 등이 예정돼 있다. 미·일 관계를 강조하고 있는 정부와 대조적으로 왕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특별 대우를 하지는 않을 계획이라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왕실 관계자는 “국가의 크고 작고와 관계없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지금까지의 다른 국빈과 마찬가지로 대우하겠다”고 말했다.
일본 공안 당국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테러 가능성과 안전에 대비해 기관단총을 휴대한 경시청 특수부대를 현장에 최초로 배치하는 등 인원 2만5000여명을 동원해 도쿄 지역의 경비 수준을 최고 수위로 높였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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