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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 검침원 정규직화, 누굴 위한 것인가

입력 : 2019-05-14 21:28:25 수정 : 2019-05-15 17: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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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 자회사 세워 편입했지만 / 내년 원격검침 장치 보급 완료 / 한전MCS 유지 가능성 불투명 / 정부 지나친 개입에 시장 왜곡

전기검침원이라는 직업이 있다. 각 가정의 전기계량기를 확인하고 전기요금 고지서를 전달하는 일을 한다. 명색이 IT 강국인데, 아직도 이런 직업이 남아 있느냐고 의아할 것이다. 자가변전소까지 갖춘 계약전력 100㎾ 이상의 고압고객은 거의 자동원격검침이 이뤄진다. 99㎾ 이하 저압고객 중에는 방문해 검침하는 곳이 많다.

전기검침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끔 봉변을 당하고 남모를 고충도 있겠지만 그 정도 애환이야 어느 직장인이라도 겪는다. 근무형태도 비교적 자유롭다. 전국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5200여명에 이른다. 대우는 4대 보험 가입에 정년 60세 보장, 평균 연봉 4000만원으로 제법 괜찮다.

박희준 경제부장

3년에 한 번씩 소속 회사가 바뀐다는 게 불편할 따름이다. 한전은 제한경쟁입찰 방식으로 한전산업개발, 신일종합시스템, 새서울산업, 대상휴먼씨 등 6개 민간회사와 검침업무를 계약했다. 낙찰 결과에 따라 6개 회사들끼리 ‘검침원 빌려주기’를 하면서 소속이 바뀐다.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다 보니 경력단절 여성 등에게 인기다. 잇속 밝은 이들이 이런 자리를 그냥 놔둘 리 없다. 검침원 중에 한전 임직원 출신과 검침회사 직원들의 부인, 조카, 동생, 며느리 등이 수두룩하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문제돼 당시 한전 사장이 시정약속까지 했으나 감감무소속이다. 이런 인원이 1500명에 이른다는 말까지 나돈다. 한전 직원들과 검침원들의 가족관계도를 그려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요즘 검침원들이 다시 대규모 이동을 하고 있다. 이전과 성격이 다르다. 이번에는 한전이 100% 출자해 세운 자회사 한전MCS로 편입되고 있다. 지난 1일자로 이미 절반가량이 소속 변경됐다. 문재인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한전이 추진 중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작업이다. 꼭 2년 전인 2017년 5월12일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행보로 인천국제공항을 찾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소속 변경 후 검침원들이 하는 일이나 대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단지 그들이 쓴 사제 모자가 관용으로 바뀔 뿐이다. 한전으로서는 퇴직을 앞둔 직원들을 내려보낼 수 있으니 반길 일일까.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한전MCS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한전은 2020년까지 전국 2250만 가구에 ‘지능형 원격검침 장치(AMI)’를 보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격으로 전기 사용량과 시간대별 요금 정보 등을 수집할 수 있게 된다. 검침원이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때 한전 MCS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하다. 한전이 검침원들을 직접 고용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결국 무엇을 위해 검침원들의 정규직화를 하는지 의문이 든다. 검침원들 고용 안정보다 정규직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계약직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으로 불거진 연료·환경설비 운전 2200여명의 정규직화도 결국 이런 방식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면 시장이 왜곡되는 일이 의외로 많다. 정부의 선의 여부와 달리 시장은 냉정하게 반응한다. 저임금 근로자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최저임금을 올렸더니 대학생 아르바이트 자리가 사라진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주 52시간을 시행했더니 운전사, 플랜트건설 노동자 같은 이들의 임금이 팍 줄어든다. 강남 집값 잡으려고 보유세를 대폭 올렸더니 난부자가 집을 내놓고 진짜 돈 있는 부자가 낚아채 간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지난 2월 청와대 혁신벤처기업인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정부의 지원책이 있을 때마다 시장경제를 왜곡시키는 것은 아닌가 우려를 하곤 한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이라고 쓰면 ‘정부주도 성장’으로 읽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문재인정부로서는 집권 3년 차로서 조바심이 나겠지만 경기는 의욕이나 선의만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지원을 하더라도 시장경제의 건강성을 유지시켜 주길 바란다”는 김 대표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박희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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