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제주도는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로 대한민국 최고 여행지로 자리매김 했다. 실제 온라인투어가 실시한 ‘여행자들이 직접 선택한 2019년 여행지’ 설문조사에서 제주도는 해외 수많은 여행지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말 그대로 ‘해외만큼 좋은 국내 여행지’란 반증이다.
곳곳마다 맛 집과 볼거리가 넘쳐나는 관광 1번지 제주도라지만, 조용한 어촌에서 느끼는 혼자만의 여유 같은 ‘진짜 제주다운 풍경’도 놓칠 수 없는 제주도만의 매력 포인트다. 휴식과 힐링을 중시하는 최근 여행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제주도 내에서는 ‘조천읍 북촌마을’이 그런 곳이다.
제주국제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동쪽으로 40여분 남짓 달리면 물빛 아름답기로는 제주도에서도 손꼽힌다는 함덕해수욕장이 나타난다. 소문난 관광지답게 해수욕장 인근은 숙박업소와 카페, 음식점 등으로 시끌벅적하다.
“(함덕해수욕장을 가리키며) 오른쪽에 오름 보이죠? 저기가 서우봉인데, 넘어가면 북촌마을이 나와요. 여기랑은 완전 다른 세상이야. 정말 조용하죠.” 택시기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이렇게 화려한 동네인데…. 뭐가 조용하다는 것이지?’
10여분 정도 더 달리면 곧 혼잣말이 무색한 상황이 펼쳐진다. 마치 지도에 없는 곳처럼,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마을 하나가 신기루처럼 드러난다. 낮은 돌담길을 사이에 두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담한 집들이 시야에 펼쳐진다.
북촌마을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동쪽 끝에 자리한 해변 마을이다. 북촌포구를 중심으로 ‘본동’, 서쪽에 서우봉과 접한 ‘해동’, 남쪽 선흘리 방향 중간 산에 ‘억수동’이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에 ‘한사동’이 추가로 조성돼 총 4개의 마을로 이뤄져 있다. 바다로 나가면 해녀들이 물질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김녕해수욕장부터 월정, 성산까지는 해안도로가 닦여 상가나 카페가 많아졌지만, 이 마을은 해안도로가 없는 탓인지 상권이 발달하지 않았다. 도보여행 마니아나 낚시꾼들 사이에서 ‘진짜 제주다운 제주’로 불리는 이유다.
◆4․3사건 최대 피해지역으로 슬픈 역사 간직
북촌마을은 제주 4·3사건 최대 피해 지역이다. 한날 가족들을 잃은 마을 사람들은 70여 년 동안 같은 날 제사를 지낸다. 북촌의 아픈 역사는 마을 서남쪽에 자리한 ‘너븐숭이 4·3 기념관’(이하 기념관)에서 만날 수 있다. 너븐숭이란 ‘넓은 돌밭’을 뜻하는 제주 방언. 기념관 내부 전시관에서 4·3사건이 일어난 1948년의 ‘그날’을 만날 수 있다.
기념관을 나와 아래로 난 길을 10여 분 걸으면 서우봉이 보인다. ‘서산봉’이라고도 하는 이 오름에는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20여 개 ‘진지동굴’과 4·3 사건 당시 북촌, 함덕 주민들이 몸을 숨겼던 ‘몬주기알’이 나타난다. 몬주기알은 토벌대 작전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인 1948년 12월 26일 전후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곳이다.
서우봉부터 해안을 따라 더 걷다 보면 바다의 적을 막았던 성벽 ‘환해장성’이 나타난다.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본향당’과 ‘가릿당’도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좀 더 북쪽으로 가다 보면 마을의 상징처럼 서 있는 ‘등명대’가 보인다. ‘도대불’이라고도 불리는 등명대는 1915년 마을 사람들이 세운 것이다. 고기잡이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원하며 불을 밝힌 마을의 등대다.
북촌마을 4·3길 코스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기념관을 나와 나무에 걸린 붉은색, 흰색 띠를 따라 걸으면 된다. 이 띠는 4·3길을 상징하는 로고다. 붉은색은 정열, 희생, 진실을 뜻한다. 흰색은 순결, 결백, 평화 등을 의미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연과 환경에 적응하며 평화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마을 주람들을 표현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제주 전통 돌집과 현대가 어우러진 팬션들
북촌마을에서는 제주의 전통 ‘돌집 스테이’를 경험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북촌리:멤버’는 북촌리 어촌마을 한 가운데에 있다. 해녀의 집을 현대적으로 리모델링해 가족과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꾼 곳이다. 가장 제주다운 동네에서, 제주에서 가장 흔한 돌집을 리모델링한 것이 특징. 대지 95평에 건평 30평이니 아주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다.
북촌리:멤버란 이름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우리가 멤버(가족)였던 시간을 다시금 기억하고 추억하자는 의미. 건축주 이응수 대표는 병상의 아버지를 오랜 시간 간호하느라 가족여행도 제대로 못 가본 어머니를 떠올리며 이 공간을 꾸몄다. 연로한 어머니가 해외보다 제주에서 며칠이라도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을 방문하는 관람객에게는 할인 혜택을 준다.
이 대표가 집을 고치면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부분은 정원과 부엌. 어머니와 함께 요리도 만들고 정원을 바라보며 예전 추억을 떠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기존 주택의 창고 돌담은 그대로 살려 지지대로 썼고, 주방에는 구로 철판으로 마감한 대형 테이블을 뒀다. 정원에서는 4계절 꽃을 보며 자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대청마루는 두런두런 모여 앉아 이야기 나누기에 제격이다. 마당 수돗가에선 과일을 담가 놓거나 등목도 할 수 있다. 본채에 누워 천장을 올려보면 이 집이 57년 전에 지어졌다는 흔적인 상량문도 발견할 수 있다.
북촌에는 북촌리:멤버처럼 사연을 담은 제주다운 독채 펜션들이 여럿 있다. ‘옥화장’도 그중 하나다. 옥화장의 ‘옥화’는 집 주인의 친정어머니 이름이다. “나이 들어 돌집 빌려 살면 좋겠다.” 집 주인은 어머니와 단둘이 온 제주 여행에서 지나가듯 어머니가 전한 말씀이 불현듯 떠올라 제주 돌집을 찾아 나섰다. 약 3년에 걸쳐 제주 곳곳을 다닌 끝에 운명처럼 이 집을 만났다. 70년 된 돌집을 골조와 서까래를 그대로 보존하며 다듬고 고쳐나갔다. 외부는 돌집이지만 내부는 마감재로 제주산 굴목이나무를 써 아늑하고 포근하다. 마당에는 나무와 꽃, 잔디도 깔려 있다.
‘아따블르 제주 렌트하우스’는 세계의 유명 주방 잡화들을 이용해 직접 요리를 할 수 있는 ‘키친’ 중심의 렌트 하우스다. 프랑스풍이 물씬 나는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서울 삼청동에 동명의 레스토랑이 있어 더욱 친근하다. 이곳 역시 제주의 전통 돌집을 모던하게 리모델링했지만 주변마을과 잘 어우러진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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