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 직원들과 수송업자, 운전자 모두가 말을 학대하고 있었다. 그들은 번갈아가며 막대기를 휘둘러 말을 학대했다. 말 중에는 3~4살 어린 말들이 있었고 하나는 7마리의 새끼를 낳은 13살짜리 말이었다.”
미국 동물보호단체 페타(PETA)가 지난해 4월부터 지난 2월까지 제주도에 머물며 말 도축 실태를 조사한 결과다. 페타는 지난 3일 제주도의 한 도축장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는 말들의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하며 도축업자들이 동물보호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영상에는 도축업자들이 막대기를 사용해 트럭에 실려 온 말들의 얼굴을 수차례 가격하고 말들이 전기충격기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말 도축 현장을 최초로 촬영한 이 영상은 퇴역 경주마에 대한 실태를 조명하며 국민적 관심을 이끌고 있다.
세계일보는 10일 미국에 있는 페타 측과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11개월간 진행한 말 도축실태조사에 대해 물었다.

◆ “제주도에서 만난, 두려워 저항하는 말들의 얼굴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페타 측은 이번 조사를 실시한 계기를 “수년간 미국 내 경주마 경매 결과를 분석하다 한국이 경주 및 번식을 위해 미국말을 수입하는 비용이 계속 증가하는 것을 파악했고, 한국의 경마 산업을 자체 조사한 결과 퇴역한 경주마에 대한 대안이 거의 마련돼 있지 않아 우려를 가졌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조사를 통해) 한국에 수출된 미국말들 운명을 문서화하려했다”며 “우리는 TAA(미국 퇴역순종마복지연합) 기준을 기반으로 한국에도 합법적인 말의 은퇴제도를 만드는 것에 목표를 뒀다”고 했다.
페타는 제주도의 도축실태를 관찰하며 만난 말들의 얼굴이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트럭에 실려 함께 도축장으로 향했던 경주마 ‘에어 블레이드’와 ‘로얄리버’는 함께 운동장을 누비던 동료였다. 이들은 “‘에어 블레이드’는 ‘로얄리버’가 살해당하는 것을 앞에서 봐야했고 자신이 총에 맞을 차례가 다가오자 두려워 열심히 저항했다”며 “번개장군, 슈퍼엔젤 등 다른 경주 말들도 함께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 안에는 미국 3대 경마대회인 ‘캔터키더비’ 우승마 중 하나인 ‘빅 브라운’의 아들, 유명 경주마인 ‘메다글라 도로’의 자녀도 포함됐다.
심지어 ‘케이프 매직’이란 이름의 경주마는 경주대회를 마친 뒤 3일 만에 도축장으로 끌려왔다. 트랙에서 달리던 경주마는 한순간에 도축 신세에 놓였다. 경주마 ‘탐라여신’과 ‘원더 드리머’의 이름 없는 새끼는 피를 흘린 채 진흙에 뒤덮여 도축장에 쓰러져있었다. 경주마들의 화려한 이름 뒤엔 잔혹한 현실만이 남아있었다. 이렇게 도축된 대부분의 말은 말고기나 마유크림 같은 화장품 원료로 활용됐다. 페타의 한 조사자는 “조사 기간 동안 22마리의 퇴역마들을 만났고 모든 말들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고 안타까워했다.
한국마사회는 지난해 1360마리의 망아지와 407마리의 말을 포함 총 1767마리를 수입 및 등록했다. 이중 연간 경주에서 은퇴하는 경주마는 1400여 마리에 달한다.
페타 측은 한국이 자국의 경마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무리하게 경주마들을 수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 마사회는 연간 1600여마리의 은퇴마 중 50마리만이 다른 승마 목적으로 재교육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는 은퇴마의 3%에 불과하다”며 “마사회는 경주마의 경력을 연장하기 위해 더 많은 수의사를 제공하고, 경주마의 마주가 그들을 번식시키도록 장려하는 두 가지 정책을 펴고 있지만 이것은 말들이 도살로 보내질 기간만 연기할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페타는 “한국에서 원치 않는 말의 도축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은 한국마사회가 나서 경주마의 은퇴 시설을 설립하거나 말을 많이 사육하지도 많은 말을 수입하지도 않는 것”이라 방법을 제시했다.

◆ 마사회 “경주마는 개인자산…은퇴 후 운명은 마주들이 결정”
마사회 측은 “연간 1600여마리의 은퇴마 중 3%만이 재활한다”는 페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마사회는 연간 1400여마리 은퇴마 중 절반가량인 700여마리가 승용마로 전환됐고, 150마리는 번식마로, 150마리가 안락사 등 폐사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머지 400마리는 용처가 불분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마사회 관계자는 “경주마는 마주들의 개인 자산들이라 일단 은퇴하면 어떤 용도로 변경했다는 보고가 없는 한 마사회에 알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주마 시절엔 마사회에 의해 관리되지만 퇴역 후 말 관리는 마주의 재산권 문제라는 설명이다.
이어 마사회 측은 “일본 및 프랑스의 경우에도 말에 대한 인도적인 도축을 전제로 하여 경주용, 승용 이외의 목적으로 말을 활용하고 있다”며 “축협 등 도축장을 관리하는 기관을 통해 인도적인 말도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은 사람의 소비를 위한 말 도살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페타 측에 따르면 이런 이유로 매년 1만여 마리의 미국 경주마는 도살을 위해 캐나다와 멕시코로 운송되고 있는데 현재 미국에서는 도살을 위해 말을 수출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 퇴역 경주마 실태조사 나선 정부
현행 동물보호법엔 ‘모든 동물은 혐오감을 주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도살돼서는 안돼고 도살과정에 불필요한 고통이나 공포를 줘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페타와 생명체학대방지포럼은 지난 8일 동물보호법 위반혐의로 경주마를 학대한 도축자 5명과 이를 관할하는 제주축협을 제주지검에 고발했다. 경찰은 해당수사에 나섰다.
농림축산식품부도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제주를 비롯한 전국 149개 도축장에 대한 동물보호법 준수 여부를 점검하고 나섰다. 농식품부는 마사회와 협의해 퇴역 경주마의 승용마 전환과 경주마의 임의 처분 사례 최소화 등을 포함한 퇴역 경주마 관리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했다. 마사회도 △말 복지 가이드라인 보급 및 인식개선 사업 △말 이력시스템 구축으로 경주 퇴역마 관리 △경주마 퇴역 프로그램 지원확대 △국산 경주 퇴역마 해외수출 등 대안을 내놨다.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박창길 대표는 “경주마 은퇴문제는 경마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한국마사회 측이 적극 나서야 한다”며 “경마로 인한 수입이 상당한데 미국처럼 경주마의 은퇴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도축장 내 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장치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사진=페타(PETA)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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