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지방의 일로 여겨졌던 아파트 미분양이 서울에서도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정부 대출 규제 등에 따라 집값 상승 모멘텀이 상실됐는데도 일부 단지가 비싼 가격에 아파트를 내놓으면서 수요자에게 외면당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도 더 이상 분양 안전지대가 아닌 셈이다. 시행사들은 무순위 청약이나 계약조건 완화 등의 방식으로 미분양 사태에 대응하고 있다.
2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서울의 미분양 주택은 770호로 집계됐다. 2월 말의 50호에 비하면 14.4배나 늘어난 것이다. ‘e편한세상 광진 그랜드파크’ 미분양 사태가 크게 작용했다. 서울시 집계에 따르면 ‘e편한세상 광진 그랜드파크’ 일반분양 물량 730가구 중 685가구나 미분양됐다.
이 아파트는 1월 말 진행한 1순위 청약에서 2.3대 1에 그쳤고 일부 주택형은 청약미달되는 사태를 빚었다.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 경우는 일반분양 청약 경쟁률은 10.97대 1에 달했지만, 전체 일반분양의 41.5%인 174가구가 실제 계약으로 이뤄지지 않아 다시 청약시장에 나왔다.
높은 분양가가 미분양의 원인으로 꼽힌다. 9억원 이상 아파트 구매 시 대출을 어렵게 한 정부 규제도 한몫한다. ‘e편한세상 광진 그랜드파크’ 경우 3.3㎡당 분양가는 3370만원으로 전용 84㎡가 9억9000만~12억4000만원선에서 책정됐다. 최저 분양가가 9억원이 넘어간 것이다. 9억원이 넘어가는 아파트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을 받지 못해 중도금 대출을 받지 못한다.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 경우 전용 84㎡ 기준 분양가가 7억8000만~8억9000만원에서 형성됐는데 ‘비싸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결국 두 아파트 모두 1순위 청약경쟁률이 1대1을 넘어섰음에도 완판에 실패했다. ‘묻지마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기류도 뚜렷하다. 저층이나 최고층 등 입주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아파트들이 잇따라 미분양 상황을 겪고 있다.
건설사들은 계약조건을 완화하는 등의 방법으로 미분양 사태에 서둘러 대응하고 있다. e편한세상 광진 그랜드파크 시행사인 MDM은 계약금을 기존 집값의 20%에서 10%로 낮추고 나머지 10%는 잔금으로 이월해 수요자 초기 계약 부담을 낮췄다. 또 시행사가 연대 보증을 서 중도금 대출을 40%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이를 통해 e편한세상 광진 그랜드파크 미분양은 30%대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미분양 사태에 대비해 ‘무순위 청약’을 미리 도입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무순위 청약이란 청약통장이나 주택보유, 세대주 여부와 상관없이 청약할 수 있는 제도를 의미한다.
홍제역 해링턴 플레이스는 사후 무순위 청약을 실시해 33.53대 1의 경쟁률을 보였고, 청량리 한양수자인은 지난달 서울에서 처음으로 사전 무순위 청약을 실시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분양가가 싸지도 않고 대출규제도 강한 데다 집값 상승도 신호가 없다 보니 소비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이것이 미분양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서울도 더 이상 ‘안전지대’는 아닌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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