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해산해달라는 청원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 나란히 제기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현재 총 300석인 국회 의석 가운데 민주당은 128석, 한국당은 114석을 각각 차지하고 있다.
두 당이 해산되면 국회의원 242명이 의원직을 잃어 사실상 20대 국회가 해산되는 것과 같은 효과다. 청와대가 답변해야 하는 국민 청원 기준(20만명)을 이미 넘긴 만큼 이르면 이달 안에 청와대가 입장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헌법상 정당해산 사유는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1일 “청와대가 청원 종료 후 한 달 안에 답변을 해야 하는 상황인 것 맞는다”면서도 “다만 ‘정당 해산은 청와대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선에서 별로 의미 없는 답변을 하지 않을까”라고 반문했다.
우리 헌법은 위헌정당해산제도를 두고 있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3년 정부가 옛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위헌정당해산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해 이듬해인 2014년 헌재가 재판관 8대1 의견으로 위헌 및 해산 결정을 내린 것이 현재까지 유일한 정당해산 사례다.

헌법에 따르면 정당해산심판 청구의 주체가 청와대, 즉 대통령인 것은 아니다. 정당해산 제소권은 ‘정부’에 있다. 헌법 제8조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물론 우리 헌법상 정부의 수반은 대통령이다. 다만 헌법은 대통령 혼자 독단적으로 정당해산 제소를 결정할 수 없도록 일종의 ‘안전장치’를 뒀다. 헌법 제89조는 최종 결정 이전에 반드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할 중대 사안을 죽 나열하면서 ‘정당해산의 제소’를 명시했다.
일단 주무부처인 법무부가 정당해산 제소의 필요성을 검토해 국무회의 안건으로 보고하면 대통령, 국무총리, 타 부처 장관들이 국무회의를 열어 심의를 한 다음 대통령이 최종 결단을 내리는 구조다.
◆박근혜, 해외순방 중 '통진당 해산 제소' 전자결재
옛 통진당 해산 제소도 이런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2013년 11월5일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정당해산 제소안을 긴급 안건으로 보고했다. 국무회의 심의가 끝난 직후 당시 유럽 국가들을 순방하느라 국내를 비운 박근혜 대통령이 멀리 해외에서 ‘전자결재’로 해산 제소를 재가했다.
이후 헌법재판소에서 1년 넘는 심리를 한 끝에 2014년 12월19일 위헌 및 해산 결정을 내렸다.
‘통진당은 위헌정당이므로 해산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에 재판관 9명 중 8명(박한철 헌재소장, 이정미·이진성·김창종·안창호·강일원·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이 가담했다.

유일하게 김이수 재판관만 ‘통진당에 일부 문제점이 있으나 해산 결정은 과하다’는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
헌재 선고 직후 통진당은 해산됐고 이정희, 김재연 등 통진당 소속 의원 5명은 그날로 의원직을 잃었다. 통진당 재산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의결을 거쳐 전액 국고로 환수됐다.
옛 통진당 해산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이가 바로 황교안 현 자유한국당 당대표다. 그는 올 초 한국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내가 통진당을 해산했다”고 강조해 보수층의 지지를 얻었다. 최근 경남 통영·고성에서 치러진 4·3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정점식 전 검사장도 법무부 통진당 해산 태스크포스(TF) 출신이다.
당시 의원직을 잃은 김재연 전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통진당 해산은 잘못된 것”이라며 “이를 주도한 황 대표를 꼭 법의 심판대에 세우겠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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