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생들에게 책 읽히기가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는,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모두 다 알고 있다. 책 읽기 과제를 내주는 순간, “그 책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하나요. 필요한 부분만 읽으면 안 되나요.”라는 등의 질문이 빈번하게 끊임없이 올라온다.
한때 기업 임직원 사이에 동서양 고전 읽기 및 인문학 열풍이 불었던 시절이 있다. 실제로 대학에서는 고전 읽기야말로 대학생 때가 적절한 시기라는 생각에 ‘사회과학 고전 읽기’ ‘고전 읽기와 글쓰기’ 등의 교양강좌도 개설하고, 대학 시절 반드시 읽어야 할 100대 고전 목록을 선정한 후 고전 읽기 캠페인(?)을 독려하기도 했으나, 정작 대학생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그즈음 “누구나 좋은 책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바로 고전이랍니다.”라는 애교 섞인 농담을 종종 들었으니 말이다.

한데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 하나 있다. 이토록 책읽기를 꺼리는 대학생들이 입학 당시 수험생 자격으로 제출했던 학생종합생활기록부에는, 고등학교 3년 동안 읽었다는 도서목록이 빼곡히 나열돼 있는 것이 아닌가. 도서목록의 양(量)만 보면 ‘시험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책 읽을 시간이 있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만큼 길고 긴 목록이 등장한다.
하지만 정작 어떤 종류의 책을 읽었는지 유심히 들여다보면 실소(失笑)를 금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에밀 뒤르켐의 ‘사회 분업론’.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등 대학생은 물론 해당 분야의 전문가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고전 목록이 다수 포함돼 있는가 하면, ‘재테크에 미쳐라’ ‘나를 사랑하는 법’ 같은 자기계발서도 종종 눈에 뜨인다. 심지어는 30대 여성 독자를 겨냥한 번역 수필집 제목도 등장하고,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라 할 아이돌이나 벤처기업가의 자서전까지 뒤죽박죽 섞여 있다. 그나마 당대 권위 있는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나 평론가로부터 호평받은 베스트셀러 제목을 발견하면 반가울 정도다.
때로 학생들이 쓴 짧은 독후감이 포함돼 있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독후감은 지나치게 형식적이거나 출판사 서평을 그대로 긁어온 듯한 전형적 표현으로 구성돼 있어 ‘정말 이 책을 읽긴 했나’라고 수험생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기야 ‘내신 타짜’(자녀의 내신 성적을 타짜 수준으로 관리해 주는 학부형을 일컫는 신조어)가 있어 독서목록까지 깔끔하게 관리해 준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니, 수수께끼의 한 자락이 풀리는 것도 잠시 허탈감이 밀려온다.
며칠 전 친지가 보내온 카톡 메시지는 황당함을 넘어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내용인즉 경기도 소재 공립중학교 2학년에 다니는 딸아이가 읽어야 하는 책 목록을 보니, 어떤 기준으로 책을 선정했는지, 이런 책을 중2에게 읽혀도 되는지 의구심이 든다는 이야기였다. 사진을 찍어 보내준 책의 목차에는 ‘학벌, 위험사회, (…) 돈, 가난, 노동, 여론, 군대’ 등이 나열돼 있었고, 1장 학벌의 소제목으로는 ‘대학의 졸업장 장사’ ‘사교육 시장이 계속 팽창하는 이유’ ‘부동산 격차가 학벌 격차를 낳는다’ ‘학벌 차별 부추기는 언론’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심지어 중학교 2학년을 위한 추천도서로 김종영의 ‘지배받는 지배자’, 나오미 클라인의 ‘재난 자본주의’ 등도 포함돼 있다면서, 난이도 수준조차 가늠이 안 된다며 한숨을 가득 쏟아냈다.
중·고등학생이면 세상 돌아가는 방식에도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고, 사회의 부정의나 불합리한 측면에 대해 합리적 비판의식을 가질 만도 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주제의 책을 섭렵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책을 읽는 것을 그 누가 반대하리요만, 현재 우리네 중·고등학교의 독서교육은 방향을 잃은 채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은 물론, 어느 누구도 적정 수준의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중·고등학생 시기 제대로 된 독서교육은 내신등급이나 수능점수 못지않게 중요하고도 큰 의미를 갖고 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인류가 남긴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고전의 가치를 음미할 줄도 알아야 하고, 좋은 책과 나쁜 책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도 키워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지침이 되어줄 책과 만나는 경험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청소년을 위한 도서목록 100권식으로 필독서 목록을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자칫하면 필독서 목록 자체가 강력한 하나의 권력이 돼 더욱 큰 폐단을 가져올 수 있음은 그간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중·고등학생 수준에서 읽을 만한 책의 기준을 다양하게 제시해 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이대로 학교 자율에 맡길 경우 책 선택기준이 실종된 상태에서, 난이도도 들쑥날쑥인 데다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는 필자의 관점을 걸러낼 장치도 없이 우리의 자녀가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사실을 방치해선 안 될 것 같다.
시험 준비하느라 잠잘 시간도 부족한 중고등학생들이 반드시 읽어두어야 할 좋은 책 대신 굳이 읽지 않아도 될 불필요한 책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함은 안타까운 일이다. 어차피 우리 학생들 책을 읽지 않을 테니, 부정적 영향도 받지 않을 거라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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