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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저출산 대책, 해답은 문화다

입력 : 2019-04-29 21:15:52 수정 : 2019-04-29 21: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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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지만 우리나라가 기어이 합계출산율 0명대 시대에 진입했다. 우리나라는 외부 충격이 없었는데도 합계출산율 1명선이 무너지는 세계 유일의 국가라는 불명예까지 안게 됐다. 이 암울한 초저출산 ‘신기록’이 언제쯤 깨질 수 있을까. 출산율 성적표를 받아 든 정부는 망연자실한 상태다.

정부에서는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놓고 갖가지 출산장려책을 펼쳤다. 그동안 들어간 돈도 약 153조원에 달한다. 안타깝게도 정부 정책이 출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청년실업에서부터 고용불안, 저임금, 주거난, 빈부 양극화, 과도한 사교육비 등까지 출산과 육아를 어렵게 하는 장애물을 잔뜩 안고 있는데 모두 부분적, 일시적 대책에 그칠 뿐 생존 환경의 근본적 개선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대부분의 평가다. 여성과 청년, 아동 등 수요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단순 지원정책만 남발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정부가 저출산 대책의 패러다임을 ‘출산장려’에서 ‘삶의 질 향상’으로 전환한 것은 뒤늦었지만 옳은 판단이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

이제 출산율 지표를 내려놓자. 출산율 상황판을 걸어놓고 숫자 변화에 일희일비하는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족을 아이 낳는 공장 정도로 취급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변화가 수반되지 않는 한 파편적인 지원정책에 의해 저출산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여성의 ‘독박육아’가 부부의 ‘공동육아’로 전환되고, 취업과 승진 등에서 여성에 대한 불이익이 사라지며, 여성 인권이 보다 높아지는 등 사회·문화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무엇보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자신들이 살아 왔던 시간보다 더 안전하고 행복할 것이라는 사회에 대한 믿음이 필요할 것이다. 출산을 결혼과 연관지으며 소위 ‘정상가정’ 아이만을 원하는 것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1인·동거·한부모 가구 등 다양한 가족의 권리를 법적으로 어떻게 보장할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저출산이 가져오게 될 냉혹한 미래를 직시하고 준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초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 사회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그런 만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이 시대는 가족에서부터 교육·노동은 물론 의료·복지 등 사회의 제반 영역에 걸쳐 총체적으로 다시 디자인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출산율을 잊고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며 성평등이 보장되고 다양한 가족이 인정되는 포용사회를 구현하는 것이 진짜 저출산 대책의 첫걸음이다.

인간을 노동력이나 병력 등 수단으로 파악해 도구화하지 않고 목적으로 생각하는 사회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이는 단순 정책이 아니라 성차별 의식과 정상가족의 신화에서 벗어나며 사람을 수단으로 쓰고 버리는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주류 문화를 바꾸고 미래를 지향하는 것은 시장과의 경쟁은 물론 과거와의 싸움도 필요하다. 게다가 기득권층의 반대가 따르기 때문에 몇 번의 실패와 좌절 후에야 겨우 이루어질까 말까 할 것이다. 문화가 본래의 뿌리를 내리고 꽃피게 하려면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고 설득하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속도보다는 방향이 훨씬 중요하듯이 저출산 대책은 주류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반대에 부딪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구태의연한 문화를 바꾸는 일에 더 집중해야 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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