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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내려가, 옆집 깨울게'… 그게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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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방화살인사건’ 피해자들의 이야기
'방화 흉기 난동사건'이 난 경남 진주시 모 아파트 화단 바닥에 18일 희생자가 흘린 핏자국과 주인을 잃은 신발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어머니와 아이, 아내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했데요. 그게 이렇게 될지 몰랐답니다”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사건 피해자인 금모씨는 4가족의 가장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는 젊은 가장이었던 그에게 17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다. 그날 그는 화재가 발생한 것을 알고 재빠르게 가족들에게 먼저 내려가라고 소리쳤다. 이후 옆집에 초인종을 눌러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다른 집 문을 두드려 이웃들을 대피시켰다. 하지만 먼저 내려간 식구들은 조현병을 앓은 적이 있는 한 남성에 의해 모두 안타깝게 세상을 등졌다. 아내는 병원에서 치료 중이지만 깨어난 아내에게 아이의 죽음을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이다. 눈에 넣어도 안아픈 11살의 딸 아이는 자다 일어나 눈을 비비며 급하게 계단으로 내려갔지만 그게 마지막 순간이었다. 

 

18일 오후 경남 진주시 한일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진주 아파트 방화 흉기 난동 사건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희생자와 유가족 지인 등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 금씨의 사연, “안씨와 알았지만...”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가좌주공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다. 대부분의 입주민들이 이웃 사촌이고 가깝게 ‘형님 동생’으로 지냈다고 한다.

 

특히 안씨가 최초로 불을 지른 아파트는 금씨의 바로 옆집이다. 이 곳은 금씨와 친하게 지내는 안씨의 친 형이 사는 곳이다. 평소 금씨는 안씨의 친형과 가깝게 지냈고, 얼마전 있었던 안씨의 폭행사고때도 중재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마가 덮어버린 아파트에서 모든 것은 사라졌다. 금씨의 지인들은 대부분은 가족과 함께 대피했다면 가족을 보호하고 불행을 막을 수 있었을 거라며 괴로워했다. 살을 애는 듯한 고통에 주변 사람들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금씨의 오랜 친구인 송모씨는 18일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피해자인 금씨는 저에게 힘이 되어주는 아우였다”며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곁에서 보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지는데 피해자는 어떻겠느냐”며 “주변 사람들을 도우려다 자신의 가족이 어떻게 되는지도 몰랐던 의인”이라고 말했다.

 

18일 오전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두른 안모(42)씨가 영장실질심사가 열리는 창원지법 진주지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금씨의 가족은 4층에 살고 있었다. 3층에는 금씨의 어머니가 살았다. 불이 난걸 확인한 금씨는 아내와 아이를 내려보낸 뒤 3층으로가 어머니를 깨웠고 다시 4층으로 올라와 다른 집들에 초인종을 누르면서 불이났다고 소리쳤다.

 

경남 진주경찰서에 따르면 진주시 가좌동 한 아파트 4층에 사는 안모(42)씨는 지난 17일 오전 4시25분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뿌려 자신의 집에 불을 질렀다. 이후 아파트 2층 계단에 자리를 잡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황모(74)·김모(64·여)·이모(56·여)씨와 최모(18·여)·금모(11)양 5명이 숨졌다. 노인, 여성, 아이 등 모두 사회적 약자였다. 다른 6명도 흉기에 크고 작은 상처를 입었고 7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다.

 

◆왜 안씨를 병원에 입원시키지 못했나

 

세계일보 취재결과 안씨는 이미 2년전 한 정신병원에서 6개월 동안 강제입원 치료를 받았고 이후에는 외부에서 생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안씨의 가족이 안씨를 다시 병원으로 보내려했지만, 안씨의 거부로 입원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안씨는 조현병으로 인해 가족들과 살지 못했고, 어머니 집에서 나와 홀로 생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안씨의 한 지인은 ”안씨 가족이 여러 병원을 돌며 안씨를 입원시키려 했지만, 본인이 희망의사를 밝혀야 한다고해 입원을 시키지 못한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안씨와 관련해 폭행 등 사고 신고만 올해들어 7건에 달했지만 안씨를 거둘수 있는 병원은 없었다.

 

유가족 위로하는 민갑룡 청장 민갑룡 경찰청장(오른쪽)이 18일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묻지마 살인 사건 희생자 5명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한일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진주=뉴시스

정신질환자 관리 강화를 위해 최근 정신질환자의 퇴원 사실을 직권으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통보하는 내용의 정신건강복지법이 통과됐다. 복지부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전문가 진단과 보호신청에 따라 입원치료를 받게 하는 행정입원을 적극 활용하고, 내년에는 치료를 중단한 정신질환자가 발견되면 보호자 동의 없이 외래치료를 받게 할 방침이지만 실효성은 여전히 의문이다.

 

또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대구에서 20대 조현병 환자가 10대 남성을 흉기로 찌르고 달아났다. 지난해 말 30대 조현병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임세원 서울 강북삼성병원 교수가 사망하기도 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살인 범행 당시 정신장애가 있는 비율은 2015년 7.5%, 2016년 7.9%, 2017년 8.5%로 늘고 있다.

 

◆피해자 대부분 서민, 지원책 필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정부도 지원책을 고민하곤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인 조현병에 대한 해결책 및 경찰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경찰 수사의 문제점에 대해선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17일 오후 8시30분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합동분향소가 꾸려진 한일병원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유가족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유가족들 사이에서 “여기 사진 찍으러 왔느냐, 죽을 사람 살리려면 시스템을 바꿔야지”라고 고함을 질렀다.

 

진 장관 등과의 면담에서 유가족 이창영씨는 “이건 분명한 인재다. 사고가 났을 때 초동대처가 미흡했다”면서 “그 피 철철 흘리는 어머니 목을 잡고, 조카의 피 흘리는…”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왼쪽)이 17일 오후 경남 진주시 한일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진주 방화·흉기 난동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유족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특히 피해자 대부분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치권도 나서서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책을 고민하고 있다. 

 

현재 경찰청은 가해자로부터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을 위해 ‘범죄피해자 구조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범죄피해자의 보호·지원을 위해 ‘범죄피해자 보호기금’을 마련하여 집행하고 있다.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를 통해 생계비와 학자금 등의 지원범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국민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의 상황을 고려하여, 폭 넓은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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