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낙태 처벌이 헌법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내일(11일) 판단합니다. 2012년 재판관 의견 4대 4로 위헌 정족수 6명에 미치지 못해 낙태죄가 '합헌'으로 결정된 지 7년 만인데요.
그간 낙태죄에 대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고, 여성에게만 죄를 묻는 것은 문제라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습니다. 헌법재판관들이 현재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를 직시하고, 전향적으로 반영하는 결정을 내놓기를 바라는 이들이 상당합니다.
2017년 기준 연간 5만여 건의 낙태가 이뤄지지만, 낙태죄로 실제 재판에 넘겨지는 경우가 극소수입니다. 처벌수위도 낮아 낙태죄 조항이 '사문화(死文化)'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헌재는 사회·경제적 이유로 임신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원하지 않는 여성의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자기 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행복 추구권을 위협한다는 지적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실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2010년 '낙태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응답이 53.1%였지만, 2017년 조사에선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51.9%였던 것은 달라진 세태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달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건강권·생명권·재생산권 등을 침해해 위헌이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헌재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낙태의 비(非)범죄화는 이미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만약 이번에 헌재가 위헌을 결정해 낙태죄 효력을 즉시 상실시키거나, 헌법불합치를 결정해 현행 낙태죄를 잠정 유지한 채 시한을 주고 입법을 촉구할 경우 국회가 신속하게 나서야 합니다.
다만 생명경시 풍조 확산은 마땅히 경계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와 의료계·종교계가 합심해 태아 생명권을 존중하고, 무분별한 낙태를 방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보완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헌법재판소가 오는 11일, 낙태죄 처벌이 합당한지 여부에 대한 답을 다시 내놓습니다. 태아를 생명권 주체로 인정할지 여부에 따라 낙태죄를 둘러싼 헌재 결정이 엇갈릴 것으로 보이는데요.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이달 1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소재 대심판정에서 낙태죄 처벌 조항인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선고기일을 엽니다.
앞서 의사 A씨는 2013년 11월부터 2015년 7월까지 69회에 걸쳐 임신중절수술을 한 혐의(업무상 승낙 낙태 등)로 기소됐는데요. A씨는 1심 재판 중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2017년 2월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형법 269조 1항에 따르면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할 경우 1년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합니다.
같은법 270조 1항은 의사·한의사·조산사·약제사·약종상이 부녀 촉탁이나 승낙을 얻어 낙태할 경우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요.
모자보건법 14조에 따르면 의사는 대통령령에서 정한 정신장애 및 질환이 있거나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 법률상 혼인이 불가한 혈족·인척간 임신, 임부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만 낙태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단 임신 24주 이내에만 가능합니다.
◆낙태죄 처벌 반대 측 “태아, 별개의 생명권 주체로 볼 수 없어…女 임신 자기결정권 침해”
헌재는 태아 생명권과 임산부 자기결정권 등을 토대로 해당 법조항이 헌법에 어긋나는지를 판단할 예정입니다.
낙태죄 처벌을 반대하는 측은 태아를 별개의 생명권 주체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인데요. 모체에 의존하는 만큼 동등한 수준의 생명으로 볼 수 없다는 논리입니다.
결국 낙태 처벌 조항이 여성 임신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건강권에도 위배된다는 입장입니다. 원치 않는 임신이나 출산 부담을 여성에게만 부과, 평등권도 침해한다고 봤습니다.
현실적으로 낙태죄 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 만큼, 태아나 임부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는데요.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한 처벌 예외 범위도 지나치게 좁다고 했습니다.
의사낙태죄 처벌 조항도 일반인이 낙태 수술을 하는 것보다 그 위험도가 낮은데, 의사만 가중처벌할 경우 평등원칙에 반하고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처벌에 찬성하는 입장은 태아도 별개의 생명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장차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아 성장 단계나 출산 여부에 따라 인정 여부가 달라질 수 없다고 봤는데요.
태아 생명보호는 사회가 지켜야 할 중요한 공익이고, 낙태 행위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 급증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사회적·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허용할 경우 사실상 대부분의 낙태를 허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견을 제시했는데요.
의사낙태죄 조항은 생명 보호 업무에 종사하는 자로서 의사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일반인 보다 훨씬 커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낙태 처벌하지 않을 시 결국 중절 수술 만연해질 거란 우려
2012년 헌재 판단은 재판관 4대 4로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습니다.
합헌 의견에서 재판관들은 '태아를 성장 단계에 상관없이 생명권의 주체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낙태를 처벌하지 않을 경우 결국 중절 수술이 만연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는데요.
모자보건법에서 제한적으로 낙태를 허용하고 있어 임신 초기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임산부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반해 재판관 4명은 '태아는 불완전한 생명체라 임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임신 12주까지 태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임신 초기 낙태는 위험성이 낮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는데요.
되레 불법낙태로 임부 건강이나 생명이 위험해지는 사례가 있어 적어도 임신 초기에는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달 11일 선고에서 재판관 6인 이상이 처벌 조항에 반대 의견을 낼 경우 낙태죄에 대한 판단은 7년 만에 바뀌게 됩니다.
위헌 결정은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내려지는데요.
일각에선 현재 헌재에 진보 성향 재판관들이 다수 포진해있으며, 여성 재판관이 2명인 점 등을 들어 헌재 결정이 뒤집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태아도 하나의 생명’ 생명존중 차원에서 낙태법 유지해야 한다는 시각도
지난달 30일 서울 도심에서 낙태죄 폐지를 두고 찬반 집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인권운동사랑방 등 23개 단체가 모여 만든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3시 30분쯤 서울 중구 소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카운트다운! 우리가 만드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계'라는 이름으로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를 열었는데요.
집회 참가자들은 '형법 제269조 폐지', '낙태죄 폐지'라고 적힌 검은색 망토를 입거나 '낙태죄 위헌', '낙태죄 폐지 새로운 세계'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습니다.
이들은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전면 비범죄화 △포괄적 성교육과 피임 접근성 확대 △유산 유도제 도입을 통한 여성 건강권 보장 △우생학적 모자보건법 전면 개정 △낙인과 차별 없는 재생산권 보장 등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징벌하며 건강과 삶을 위협해온 역사를 종결할 것"이라며 "임신 중지를 전면 비범죄화하고, 안전한 임신 중지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전남대 페미니즘학회 '팩트'의 수진 씨는 "여성이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원하는 바에 따라 아이를 낳는 사회를 요구한다"며 "여성은 자궁이 아니다. 형법 269조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학교 밖 청소년이던 시절 임신 3∼4주 때 임신 사실을 알고 20살 지인에게 신분증을 빌려 어렵게 임신 중절 수술을 받았다는 '라일락' 씨는 "이 사회가 청소년도 성적 욕망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고, 포괄적으로 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본다"며 "임신 중절과 관련한 정확한 정보를 학교 밖 청소년에게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라일락' 씨는 "낙태죄 폐지 이후의 세상은 청소년에게도 안전하고 주체적인 임신 중절을 보장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청소년으로서 받은 부당한 낙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길 바란다"고 덧붙였습니다.

비슷한 시각 세종대로 맞은 편 원표공원에는 낙태죄폐지반대국민연합을 비롯 47개 단체가 '낙태 반대 국민대회'를 열었는데요.
이들은 '태아는 생명이다', '낙태법 유지는 생명 존중'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었습니다.
이들 단체는 성명서를 통해 "가장 작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인 태아들의 생명권이 가장 안전해야 할 모태 속에서 위협받는 것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테러와 집단학살 못지않은 최악의 비극"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낙태죄라는 명백한 기준이 헌법에서 사라지는 순간 우리 사회는 핸들이 고장 난 자동차처럼 결코 침범해서는 안 되는 생명윤리의 중앙선을 마구 넘나들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이어 "대한민국이 모든 생명을 고귀하게 여기는 진정한 인권의 나라가 되고, 우리 사회가 미래에도 건전하고 안전한 사회로서 존속돼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 낙태죄는 결코 폐지돼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낙태가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낙태는 어떤 이유에서건 허용되면 안 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낙태 전면허용 시기상조…국회에 입법 촉구하는 방식의 주문 나올 가능성
우리나라의 낙태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에서 꾸준히 폐지를 주문해왔는데요.
지난해 유엔(UN)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대한 최종 권고문에서 "안전하지 않은 여성의 임신중절이 모성 사망과 질병의 주요 원인"이라며 낙태 합법화, 비범죄화, 처벌 조항 삭제를 주문했습니다.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도 2017년 같은 취지로 권고한 바 있습니다.
다만 낙태죄 폐지가 태아 생명권을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한 상황입니다.
태아 생명권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낙태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습니다.
지난해 보건당국의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에서 임신 경험이 있는 여성 19.9%가 여러 이유로 낙태를 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비공식적인 것을 제하고) 연간 17만건의 낙태 수술이 이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한편 청소년의 성관계는 10대 초·중반부터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부가 지난해 청소년 6만4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제14차(2018년) 청소년 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세였는데요.

문제는 청소년의 낮은 피임실천율입니다. 이번 조사에서 청소년 피임률은 절반 수준(59.3%)에 그쳤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청소년은 ‘피임 도구를 준비하지 못하거나’(49.2%) ‘상대방이 피임을 원하지 않아서’(33.1%) 피임을 하지 않는다고 답했는데요.
성관계를 하는 연령이 낮아지는 가운데, 피임을 지키지 않을 경우 청소년 임신율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입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2년 발표한 ‘청소년 한부모의 발생과정에 따른 예방 및 지원정책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 성관계는 애인이나 이성친구 뿐 아니라 즉석만남, 성구매 등을 통해서도 종종 발생했습니다.
다만 현재까지 청소년 임신중절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는데요. 그나마 가장 최신 연구는 이동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2013∼2015년 ‘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조사’입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성경험이 있는 여학생 가운데 0.2%는 임신을 했고, 임신한 경험이 있는 여학생 중 73.6%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했습니다.
실제 임신을 하고 임신중절을 경험하는 청소년의 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입니다. 현재 임신중절 수술은 불법으로 규정, 암암리에 이뤄지는 것은 통계로 잡히지 않을 공산이 큽니다.
헌재가 7년만에 낙태죄 처벌규정이 위헌인지 여부를 결정하게 되면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당장 낙태를 전면허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국회에 입법을 촉구하는 방식의 주문이 나올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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