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래퍼 김효은과 가수 브레디스트릿이 신곡 ‘머니로드(Money road)’에 혐오와 비하, 성폭력 등이 버무러진 표현을 노랫말로 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전에도 일부 래퍼의 부적절한 가사가 사회적 논란이 됐음에도 ‘예술이나 창작의 자율성’을 빙자해 입에 담기 힘든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노래하는 행태가 바뀐 게 없다는 것이다. 이번 머니로드 파문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욕설과 성적 단어 없이 노래를 만들지 못하냐”거나 “거친 표현 없이도 충분히 가사를 쓸 수 있다”면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노래를 해도 사과 한마디면 끝나는 관행을 원인으로 짚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머니로드와 같은 자극적인 가사가 힙합의 본질을 변질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성폭력, 범죄행위 가사에 담아…“이게 가사냐, 폭력이냐”
지난달 30일 발표된 머니로드는 “메갈X들 다 강간. 난 부처님과 갱뱅. 300만 구찌 가방. 니 여친집 내 안방. 난 절대 안가 깜빵. 내 변호사 안전빵. 내 이름 언급하다간. 니 가족들 다 칼빵” 등의 가사를 담았다. 특정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 중인 여성들을 강간하겠다면서, 자기를 건드리면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곧바로 누리꾼들의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한 누리꾼은 “이게 가사인지 폭력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고, 다른 누리꾼은 “욕설 없이 가사 쓰는 래퍼는 없느냐”고 물었다. 논란이 불거지면서 멜론, 엠넷 등 음원 사이트에서 해당 곡은 삭제됐다.

두 사람은 지난달 31일 인스타그램에서 사과했다. 브레디스트릿은 “가사 어휘 선택이 지나치게 과격했던 점 반성한다”며 “불쾌했을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하루빨리 가사를 수정하겠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보다 성숙한 뮤지션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김효은도 “곡 주인으로서 문제가 될 만한 가사를 검열하지 못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문제의 가사를 수정하겠다. 지켜봐 주셔서 감사하다”고 고개 숙였다.
◆반복되는 논란…‘자극’ 추구의 부작용 지적
과거에도 여러 래퍼가 자극적인 가사로 비난을 받았다. 아이돌 그룹 위너의 멤버 송민호는 2015년 한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 등 여성을 비하하는 랩을 했다가 “쟁쟁한 래퍼들과의 경쟁 프로그램 안에서 그들보다 더 자극적인 단어 선택과 가사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한 것 같다”고 사과했다. 청소년들이 즐겨 보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속사정’ ‘콘돔’ 등의 단어를 가사에 쓴 래퍼도 있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 유지) 제2호 및 제5호, 제30조(양성평등) 제2항, 제51조(방송언어) 제3항을 위반해 과징금 3000만원 처분을 받았다.

래퍼 블랙넛은 특정 여성 래퍼를 성적 도구로 전락시킨 가사로 법정에서 철퇴를 맞았다. 그는 “솔직히 난 키디비 사진보고 X쳐봤지. 물론 보기 전이지. 언프리티 너넨 이런 말 못하지. 늘 숨기려고만 하지”라는 가사를 썼다가 2017년 명예훼손·모욕 혐의로 피소돼 올 1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160시간을 선고받았다. 성폭력을 묘사한 가사로 비난받은 래퍼 창모도 “많은 분들의 질책에 공감하며 깊게 반성 중”이라면서 “여러분 비판을 밑거름 삼아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꼭 노력하겠다”고 사과한 바 있다.
◆누리꾼 “욕 없이도 힙합 할 수 있다”…‘자극 추구’가 힙합 변질
누리꾼들은 폭력적인 단어 없이도 힙합 문화를 일굴 수 있다고 말한다. 욕설 없이 오래도록 불리는 명곡을 만들 수 있다면서, 한 누리꾼은 “개인적으로 욕이나 성적 표현 없이 깨끗한 가사를 만들었다”고 래퍼 비와이를 예로 들었다. 다른 누리꾼도 “거친 표현만이 힙합의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힙합계의 대부’ 래퍼 스눕독은 2011년 영국 매체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권력이 있다면 남자가 여자를 비하하며 불러도 된다고 배웠지만, 그것이 옳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폭력적인 표현의 노래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2일 통화에서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저항을 담았던 흑인 음악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자극적인 면을 추구하게 됐다”며 “대중은 이러한 가사를 담은 노래가 사회정신과 비판의식이라는 힙합의 본질에 정말로 일치하는지 의문을 품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