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혁신으로 타개하려는 현대자동차그룹의 행보가 거침없이 이어지고 있다. 속도도 매우 빠르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이 그룹 지휘봉을 잡은 이후 사업과 조직 체계, 문화 등에서 이전 현대차그룹으로선 상상하기 힘들었던 변화를 몰아붙이고 있다. 그만큼 상황이 절박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임원인사 연중 수시로
현대차그룹은 내달 1일부로 임원 인사제도를 개편한다고 27일 밝혔다.
이사대우부터 이사, 상무, 전무, 부사장, 사장 등 6단계로 이뤄진 직급을 4단계로 축소한다. 이사대우와 이사, 상무를 상무로 통합하는 방식이다. 연말에 하던 정기인사 형식도 폐지했다. 앞으로는 경영환경 및 사업전략 변화와 연계, 연중 수시인사 체계로 전환한다. 이는 ‘일’ 중심의 수평적 조직문화를 촉진하는 동시에 발탁인사 등을 통해 우수한 인재를 빨리 발굴, 성장시키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조직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 현대차그룹은 군대 같은 ‘상명하복’ 식 기업 문화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임원들부터 유연해지고 해당 부문의 핵심 플레이어로서 책임감이 강화되면 업무 추진력과 전문성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현대차그룹의 기대다.
현대차그룹은 임원에 이어 일반·연구직 직원들에 대한 인사제도 역시 ‘자율성 확대’와 ‘기회의 확대’ 측면에서 손볼 예정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방안은 5단계(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를 주니어(사원-대리), 시니어(과장 이상) 두 단계로 묶는 것이 유력하다.

◆전방위 기업문화 혁신
임원 인사제도 개편은 현대차그룹이 최근 전방위로 시도 중인 기업문화 혁신과도 맞물린다. 출퇴근 및 점심시간 유연화를 도입한 데 이어 복장 자율화도 시행했다. 서울 양재사옥에선 대부분 형형색색의 캐주얼 복장에 청바지 차림까지 쉽게 볼 수 있으며, 정장 차림은 방문객 정도로 구별된다.
앞서 작년 9월 정 수석부회장은 인도에서 현대차를 스마트 모빌리티 업체, 즉 운송과 이동을 포괄하는 업체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공유경제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 이상 제조업체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다. “현대차를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다운 회사로 만들겠다”는 의지도 거듭 피력하고 있다. 작년에만 4명의 부회장을 퇴진시키고 그룹 기획·전략을 총괄하던 김용환 부회장과 정진행 사장을 현대제철·현대건설 부회장으로 옮기게 했다. 미래는 새로운 인물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에 입사한 지 20년째인 올해 대표이사 자리에 올랐다. 국내외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경영환경에 대해 ‘책임경영’으로 돌파한다는 대주주의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시장도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의 ‘현대차 흔들기’를 잠재우는 것으로 정 부회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날 현대차그룹은 제도 개편의 취지에 맞춰 일부 그룹사의 임원인사를 단행했다. 현대엔지니어링 화공플랜트사업본부장 김창학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현대모비스 홍보실장 이화원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해 기아타이거즈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현대·기아차 인사실장 김윤구 전무와 기아차 북미권역본부장 윤승규 전무는 각각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조현일 기자 con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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