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유명 배우 등이 연루된 미국의 명문대 입시 비리 스캔들의 불똥이 미국 명문대들의 ‘기여입학제’(legacy admission)로 튀고 있다. 대학의 자율권이 보장된 미국에선 기여입학제가 인정된다. 이는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 펜실베이니아대 등 명문대들의 어마어마한 재정 기반의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부유층·권력층의 학벌 대물림 통로로 활용되고 상대적 박탈감과 계층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 입시 비리 사건을 전후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CNN, 비영리 탐사보도매체 프로퍼블리카 등 미국 주요 언론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일가의 기여입학제 특혜 의혹을 겨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여입학제를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대표 사학 중 하나인 연세대가 총대를 멨었다. 노무현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과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장관을 지낸 김우식 전 연세대 총장이 재임하던 2000년대 초반이다. 하지만 ‘연세대 발’ 기여입학제 논란은 정부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고, 이후 김 전 총장이 ‘본고사·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내용의 ‘대입 3불정책’을 확고히 한 노무현 정부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발탁되면서 자격 시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연세대, “20억원 이상 기부자 자녀에게 정원 외 입학 기회” 총대 멨으나… 정부와 반대 여론에 밀려 좌초
2000년 8월 취임한 당시 김우식 총장은 이듬해 ‘기여우대 입학제’ 도입 의지를 분명히 하고 적극 추진했다.
김 총장은 2001년 3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정신적 교육적 금전적으로 학교에 기여한 인물의 자녀에 대해 입학 시 혜택을 주는 기여우대 입학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며 우리 사회에서 시기상조일 수도 있는 기여입학제를 공론화했다. 당시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김 총장은 기여입학제 도입 추진 배경과 관련, “우리나라에는 공익을 위해 봉사한 사람에 대해 보답하는 제도가 없는 실정임을 감안, ‘보은’의 한 방법으로 이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며 “사립대 재정에 정부 지원금이 차지하는비율은 2% 정도로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는 현상 유지하기도 힘들기 때문에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김하수 입학관리처장도 “사회통념상 인정되지 않고 있는 기여우대 입학제를 연세대가 꾸준히 추진하는 이유는 우리 대학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고 장기적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한 것”이라면서 “도덕적 해이가 없도록 제도적 보완을 한다면 기여우대 입학제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기여입학제가 사립대학의 발전에 가장 큰 애로점인 재정 확보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인 데다 정규 입학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투명하고 엄격한 심의 과정 등을 거쳐 정원 외로 선발하면 되니 도입할 만 하다는 것이다.
이후 연세대 측은 “물질적 기여우대제로 조성된 기금은 대학 경쟁력 제고를 위한 시설투자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사용될 것”이라며 기여입학제 추진을 강행했다.

정부가 즉각 “우리 국민정서상 아버지를 잘 만나 대학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한완상 교육부총리)이라며 기여입학제 불허 방침을 못박았지만 뜻을 꺾지 않았다.
연세대는 20억원 이상의 금품 기부자의 자녀에게 입학 기회를 주는 방안을 마련하는가 하면, 기여우대 입학제의 시범운영의 일환으로 해외동문 자녀에 대한 국제하계대학 등록금을 20% 할인해주거나 편입학 시험에서 동점자일 경우 학교에 비물질적으로 기여한 인물의 자녀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
연세대는 김 총장이 2004년 2월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이후에도 바통을 이어받은 새 총장의 주요 공약이 ‘기여입학제 지속 추진’이었을 만큼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김대중정부에 이어 노무현정부의 강한 반대와 ‘교육의 평등성을 해치고 빈부 격차에 따른 위화감을 심화시킨다’는 강한 반대 여론에 밀려 끝내 좌초됐다.

◆트럼프 일가 기여입학제 특혜 논란 재점화
한편 프로퍼블리카 등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38) 백악관 선임고문은 뉴저지의 부동산 개발업자인 아버지가 1998년 하버드대에 발전기금 250만달러(약 28억원)를 기부한 이듬해 하버드대(행정학 전공)에 들어갔다. 당시 입학 경쟁률은 9대 1이었고, 쿠슈너는 하버드에 갈 수준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41) 역시 이번 입시 비리 사건에 진보성향의 할리우드 인사들이 연루된 것을 조롱하다 비판 진영으로부터 “당신도 아버지(트럼프 대통령)가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와튼스쿨에 150만달러를 기부해 입학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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