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한 방 터졌다.

SBS 금토 드라마 ‘열혈사제’는 국가 정예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다 작전지에서 아이들을 죽게 한 해일(김남길 분·사진 가운데)이 오랜 트라우마로 죄책감에 시달리다 한 신부의 도움으로 사제의 길을 걷게 되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제가 된 뒤에도 해일은 불의를 보면 참기보다 ‘응징’하고, 하고 싶은 말은 기어코 다 해야 하는, 이 세상에서 결코 쉽게 만날 수 없는, 그런 신부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어르신들의 돈을 갈취하는 대부업자를 폭행한 사건 탓에 자신을 사제의 길로 인도했던 이영준 신부(정동환 분)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어 아버지와 같았던 이 신부의 죽음을 목도하고, 사건의 배후를 캐기 위해 수사를 펼치는 ‘열혈사제’가 된다.
박명수급 호통은 기본이요, 국가대표급 발차기는 옵션이다. 한 손으로 폭력배 여럿을 그냥 쓰러뜨리는 장면은 흡사 액션 영화를 방불케 한다. 게다가 항상 길고, 거추장스럽게만 느껴졌던 사제복까지 휘날릴 때면 ‘유쾌, 상쾌, 통쾌’를 넘어 시원함마저 느껴진다. 평소 동네에서 흔히 만났던 신부님이 아닌 이 특별한 열혈사제의 행동과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한방’ 먹힌 듯싶다.
천주교 신자들은 잘 알겠지만 사제가 된다는 것, 신부님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힘들게 신학교에 입학하고, 그 후 신학생이 되어도 만만치 않은 교육 과정을 이수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의미’가 담겨있다는 라틴어 수업은 기본이고, 유럽 곳곳의 역사와 문학 터득은 옵션이다. 게다가 ‘안 놀던 대학생들도 논다’는 방학 기간마저 출신 성당으로 직행, 유치부 꼬마부터 성인까지 한 사람, 한 사람 응대하며 성경학교와 여름 캠프를 진두지휘해야 한다. 아울러 성탄절 준비와 각종 성당 민원 해결까지 그야말로 365일 ‘기도하는 노동자’가 따로 없다. 그렇게 어렵게 신부가 되었다고 해서 오로지 기도하는 수도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낯선 성당에 배치되어 주임 신부님의 엄호 아래 신자들과 성당 식구들을 아울러야 하고, 오랜 보좌 신부 기간을 거친 뒤 비로소 주임 신부가 되면 성당 전체를 돌봐야 하는 막중한 책무까지 더해진다. 오죽하면 수명이 가장 짧은 직업군 중 하나가 종교인이라는 말이 있을까.
날 때부터 이미 천주교 신자였던 나는 성당에서, 동네에서 함께 어울리고 놀던 언니, 오빠들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신학교에 입학하고, 수녀원에 입교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날마다 만나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놀던 그들이 어느 날 사제복과 수녀복을 입고 나타났을 때의 심정을 아마 겪어보지 못한 이들은 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년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한 그들이 어떤 해는 지구 반대편 나라에, 어떤 해는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있지만 땅끝마을 등 이름 모를 동네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왠지 가슴 한구석이 시려온다.
가끔 그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말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은 대관절 무엇이기에 그토록 힘든 길을 걷게 하는지 말이다.
#‘열혈사제’ 이영준 신부의 대사 중에서

해일(사진)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이 신부가 늦은 밤 재활용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유치부 꼬마 아이의 ‘소중한 물건’을 찾아주면서 하는 대사다. ‘사람들이 잃어버린 소중한 물건’을 찾아주는 것, 그것이 아마 그들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감히 든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참고 인내하는 삶은 숭고하다. 그리고 그분들을 향해 우리는 ‘존경’이라는 단어를 감히 꺼내기도 한다.
큰일이다. 이번 미사 때 신부님의 얼굴을 제대로 못 볼 듯하다.
이윤영 방송작가 blog.naver.com/rosa0509, bruch.co.kr/@rosa0509
사진=SBS ‘열혈사제’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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