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 시흥시 배곧 신도시의 한 주상복합 건물에 들어설 예정인 상업단지를 광고하는 문구다. 이름이 ‘재팬타운’이어서였을까. 찬성과 반대 측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지역상권을 살릴 수 있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며 반기는 쪽이 있는 반면, ‘위안부 문제 등 과거 청산이 제대로 안 된 상황에서 섣부르다’는 반대론도 만만찮다. 특히 올해가 3·1운동 100주년이란 점도 논란에 불을 붙였다는 분석이다.

지난달 12일 일본 G&t Inc 프랜차이즈 본부와 김종민 부동산 메카 대표 등은 재팬타운 유치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알렸다. 이번 협약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영업 중인 유명 음식점 50여개가 H주상복합 건물(H빌딩)에 들어설 예정이다. 재팬타운 음식점은 일본 현지인들이 직접 운영한다.
김 대표는 “한일 관계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라 (유치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이뤄낸 성과”라며 “시흥시와 긴밀한 협의를 통해 배곧신도시가 요식업을 필두로 명실상부한 일본의 대표 먹거리, 볼거리, 쇼핑 등이 함께 어우러진 관광도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그는 5월쯤 본격적인 영업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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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이 커지자 ‘재팬타운’ 현수막을 철거한 H빌딩. 온라인커뮤니티 캡처(좌) |
재팬타운의 청사진을 두고 지역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26일 H빌딩 근처 정왕동을 산책하던 40대 여성 A씨는 “꼭 재팬타운이어야 했는지 이해가 안 가 며칠 전에 조성 반대 국민청원에도 서명했다”며 “이쪽은 이동 인구도 많지 않고 서울 등 외지에서 잘 찾아오는 곳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 사람들(시흥시민)이 과연 얼마나 (재팬타운을) 찾아갈지 모르겠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는 또 “애들(자녀)이 고등학생인데 다 반대하더라. 차라리 경복궁처럼 우리 역사와 관련된 걸 하면 교육적으로도 도움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지난 1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배곧 신도시 내 재팬타운 조성을 무효로 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으며 27일 기준 6만명 이상이 동의했다.
H빌딩 인근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점주 B씨 역시 “위안부처럼 굴욕적인 역사도 잊어버리고 한마디 사과도 안 하는 일본 문화를 왜 멍석까지 깔고 받아주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B씨는 “배곧은 서울대 시흥캠퍼스도 들어올 예정이라 주민들은 ‘교육도시’가 될 거란 기대감을 갖고 있었는데 재팬타운이라니 기가 찬다”며 “게다가 일본 사람들이 하는 음식점이면 일본 재료를 쓸 텐데 방사능 문제는 없을지도 걱정”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30대 여성 C씨는 “어차피 거기(H빌딩) 옆 건물에 초밥집과 라멘집도 있고 다 있다. 이미 여기저기 있던 일본 음식점들이 단순히 한곳에 모인다는 건데 큰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재팬타운 조성을 지지했다.
◆H빌딩 입점 상인들 “상권 형성에 도움 될 것”
H빌딩에 입점한 편의점 주인은 재팬타운 유치를 두 손 들고 환영했다. 그는 “여기 주변에 사람이 없다. 밤에 보면 건물 2층이 임대가 안 돼 불빛 하나 없다”며 “편의점 일 매출이 90만원도 안 될 때가 허다하다. 재팬타운 같은 거라도 있어야 사람이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해당 상가는 가장 목이 좋은 층이라는1층조차 썰렁했다.
‘재팬타운’이 이슈가 된 후 매장 임대 문의도 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민숙 힘찬헤리움 공인중개사사무소 소장은 “(재팬타운 이슈) 이후 전보다 꽤 임대 문의가 들어온다. 심지어 상가뿐 아니라 주거용 오피스텔 계약자들도 재팬타운에 관심 있어 한다”며 “오피스텔 입주민 ‘단톡방(단체카카오톡방)’이 있는데 거기서도 얘기가 계속 나온다더라. 아무래도 건물 내 편의시설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대부분 긍정적이다. 특히 지금 상가 임대가 시작되는 시기라 더 그렇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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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비어있는 1층 상가 모습. 나진희 기자 |
재팬타운 유치를 추진한 김 대표는 통화에서 “재팬타운에 대한 우려를 알고 있다”며 “순전히 1차, 2차에 걸쳐 50여개 일본음식점이 들어오는 것이다. 성인용품과 ‘밤문화’ 업소 등이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는 낭설”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일본에서 10년 정도 생활했다. 오사카에 있을 때 한국 여행객들이 줄서서 일본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한국에 일본 음식점을 내면 힘들게 이국땅까지 와서 먹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유치 배경을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내 일본 식당 음식값이 너무 비싸다. 5000~6000원인 일본 라멘이 한국에선 9000~1만2000원씩 한다는 것이다. 초밥도 한국은 한 개에 1700원 선인데 일본은 1200원이면 훨씬 더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고도 했다. 김 대표는 “업주들과 같이 서울 홍대까지 가서 일본음식을 먹어보고 시장조사를 마쳤다”며 “라멘, 초밥, 돈까스 등 재팬타운에 들어오는 업장들은 한국 내의 일본음식점보다 ‘가성비’를 훨씬 높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장 식재료는 국내산으로 준비할 것이고, 점주 분들이 직원을 쓰면 일자리 창출도 된다”며 “일본과 역사적 문제가 있지만 문화는 문화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스포츠는 스포츠대로 가야한다. 내용이 와전되다 보니 시나 정부에서 한다는 말이 있는데 순전히 민간 기업끼리 추진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재팬타운’의 명칭 논란과 관련, “몽골에 있을 때 그곳의 재팬타운을 보고 착안해 이름을 지었다. 상가에 일본음식점이 밀집되어 있다는 걸 홍보하기 위해 그렇게 정한 것”이라며 “논란이 큰 만큼 사실 이름은 굳이 재팬타운이 아니어도 된다”고 말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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