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리는 개털과 코를 찌르는 악취로 가득한 가건물 안에는 수십 개의 뜬장이 줄을 지었다. 뜬장에는 꾀죄죄한 몰골의 개 두 마리가 품종별로 들어 있었다. 교배를 위한 암컷과 수컷이다. 사람이 건물 안에 들어서자 수십 마리의 개들이 일제히 뛰고 짖으며 철창을 흔들어댔다. 산책은커녕 하루 한 번 바깥 공기도 허용되지 않는 ‘개들의 감옥’에서 애견샵의 말티즈, 푸들, 스피츠 등이 탄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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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군의 개농장 가건물 내부 |
소위 ‘강아지 공장’이라 불리는 대규모 번식장의 실태를 확인하고자 22일 국제 동물보호단체 HSI(Humane Society International)와 함께 충남 홍성군의 한 개농장을 찾았다. HSI는 약 2주간 개 200여 마리 구조에 나섰다.
해당 농장은 '식용견‘과 번식용 애견을 함께 키우고 있었다. 번식시키는 애견 종류는 유행따라 바뀐다고 했다. 외진 시골 농장임에도 푸들, 치와와, 시츄, 말티즈, 스피츠, 웰시코기, 닥스훈트, 시베리안 허스키, 말라뮤트, 프렌치 불독 등 견종이 다양했다. 농장주 이모(61)씨는 “예전에는 요크셔테리어, 시츄 이런 애들을 많이 키웠는데 요새는 비숑이 인기가 많대서 그것도 키웠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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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창으로 이루어진 뜬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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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량이 많은 대형견에게 좁은 뜬장은 스트레스다. 날뛰며 천장에 머리를 박는 ‘정형행동’을 계속했다. |
보급용 사료를 먹이는 개농장도 있으나 이른바 ‘짬’이라 부르는 잔반을 주는 곳도 있다. 이씨는 “예전에는 근처 학교에서 급식 남은 것을 받아다 개를 주었는데 얼마 전부터 그게 안 된대서 사료를 사다 먹였다”고 설명했다.
철창 속 개들은 언제 목욕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고 백내장이나 피부병 등 질환을 앓고 있기도 했다. 평생 쉴 새 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 하는 어미 개들의 상태는 더 처참했다. 대부분 실제 나이보다 훨씬 노쇠해 보였으며 이빨이 거의 빠져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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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병과 눈병을 앓고있는 개들 |

이날 앞서 찾은 경기 김포의 한 강아지 농장에 있는 개들의 사정도 측은하긴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마주친 검은 푸들 새끼는 한 손바닥 위에 몸 전체가 올라갈 정도로 작았다. 연신 낑낑대며 몸을 떨던 강아지는 생후 34일째라 다음 날 경매장에 보내질 운명이라고 했다. 강아지들은 경매장을 통해 애견샵 점주들에게 팔린다고.
농장주 A씨는 “(강아지는) 태어난 지 30~35일째까지가 가장 값을 많이 쳐준다. 그 이상 넘어가면 애견샵에서 너무 크다고 사가질 않는다”며 “사람들이 작고 귀여운 개만 찾는다. 애견샵도 개를 데리고 있으며 손님에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되도록 작은 강아지를 찾는다”고 말했다. 강아지 몸집이 크거나 외모가 ‘C급’ 이하로 매겨져 안 팔리면 한 마리도 못 팔고 도로 데려올 때도 있다고도 했다. 이 경우 주변에 분양해주거나, 사료값이 아까워 끔찍한 선택을 하는 농장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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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35일된 검은 푸들 강아지 |
경매에 나가는 어린 강아지들은 대부분 예방접종도 맞추지 않는다. 40일이 넘어야 예방접종이 가능하고 검사 과정에서 접종용 항원이 병으로 오인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이렇다 보니 강아지들은 쉽게 죽어 나갔다. 이씨는 “새끼 때는 금방 잘 죽는다. (죽는 비율이) 10마리당 3~4마리 정도”라며 “생후 40일 넘기고 좀 크면 그래도 낫다. 20% 정도만 죽는다”고 전했다.

강아지 공장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지난해 반려동물 생산업이 허가제로 전환됐다. 이 때문에 시설 기준 등을 맞추려 리모델링을 진행하는 강아지 공장도 보였다.
이 때문인지 김포 쪽 강아지공장들은 외견상 건물은 비교적 깨끗해 보였다. 농장주는 “9월 말이면 대규모 단속이 있다고 해 큰돈을 들여 리모델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들의 자유의지에 반하는 ‘대규모 번식 농장’인 건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해당 농장의 번식장으로 쓰이는 가건물 안쪽은 칸막이로 수십 개의 구획이 나뉘어 있었다. 뜬장은 아니었지만 개 암수 한 쌍이 들어가는 한 구획은 성인 2명이 나란히 서면 꽉 찰 정도로 좁았다. 산책은커녕 바깥 공기 한번 마시기 어려운 그곳에서 개들은 1년에 2번 이상 2~10마리씩 새끼를 낳다가 생을 마감한다.
출산이 곧 돈이기에 사람들은 교배에 열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억지로 발정유도제를 투여하거나 강제로 교배시키기도 하는 농장도 있었다. A씨는 “교배가 되어야 하는데 안 되면 가서 좀 도와주지”라고 했다.
농장주가 면허 없이 개에게 항생제 등을 주사하거나 수술을 시키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의사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동물의 자가진료는 소, 돼지 등 축산농가가 사육하는 가축만 가능하지만 강아지 농장에서도 자가진료는 빈번히 일어난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허술한 법망과 ‘솜방망이’ 처벌에 성행하는 강아지공장
2016년 기준 한 동물단체는 우리나라의 강아지공장을 3000곳으로, 농림수산식품부는 800~1000곳으로 추산했으나 실제 신고된 곳은 93곳으로 알려졌다. 이씨도 정부 허가 없이 해당 농장을 운영했다. 그는 “주변에서 돈이 된다고 권해서 육견 4마리로 식용견 농장부터 시작했다. 허가를 받아야 하는 지도 몰랐다”며 “이 주변에만 비슷한 사정의 개농장이 5곳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러한 대규모 번식장이 우리나라에서 ‘합법’이란 사실이다. 반려동물 생산업이 허가제로 강화됐지만, 허가 기준이 허술하다는 비판이 크다. 개정된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개-고양이 75마리당 관리 인력 1명으로 여전히 대량 사육을 허용하고 뜬장도 신규설치만 금지된다. 기존 시설은 30% 이상만 평판 설치가 의무화됐다. 거기다 허가를 받지 않고 영업해도 벌금이 500만원이라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애견샵 등 반려견 판매는 여전히 허가 없이 신고만 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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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I 봉사자들이 개농장 구조 활동 중이다. |

그는 이어 “동물복지 면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동물 생산 및 판매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제 강화와 함께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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