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4일 찾은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외곽의 시민 공동묘지는 성탄 이브를 맞이해 먼저 세상을 뜬 가족·친구·연인 등의 무덤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이들은 묘지에 초를 밝히고 꽃과 크리스마스 화관 등을 올려놓고 두 손 모아 기도했다. 묘지마다 크리스마스 장식물로 꾸며져 있었다. 공동묘지 안쪽 교회 건물 근처에 십자가가 없는 붉은색 묘지가 루마니아의 악명 높은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가 묻힌 곳이다. 한눈에 봐도 주변 다른 무덤에 비해 썰렁했다. 묘 위에는 누군가 갖다 놓은 화관 하나와 작은 초만 몇 개 놓여 있을 뿐이었다. 생전에는 루마니아 국민 위에 군림하며 호화로운 생활을 누렸지만 죽어서는 일반 시민과 똑같은 무덤에 묻혀 있는 셈이다. 독재자 차우셰스쿠 부부는 1989년 크리스마스에 총살돼 이곳 공동묘지에 묻혔다. 묘지 관리인은 “차우셰스쿠 아들도 이곳에 무덤이 있다”며 다른 묘지 쪽으로 안내했다. 묘비명 니쿠 차우셰스쿠. 그는 차우셰스쿠의 막내아들로 정권을 물려받을 후계자였다. 1989년 12월 22일 루마니아 혁명으로 정권이 붕괴한 이후 아동을 인질로 삼고 정부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을 적용받아 2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간경화증으로 석방됐으나 4년 뒤 오스트리아 빈의 병원에서 마흔다섯에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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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묘지에 묻힌 독재자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 시내의 일반 공동묘지에 묻힌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 무덤. 십자가 없는 붉은색 돌이 차우셰스쿠 부부 무덤이다. |
데제라투 연구원은 13년 동안 루마니아 국방부에 몸담았던 관료 출신 연구자다. 데제라투 연구원은 “1945년 전까지만 해도 루마니아 공산당 세력은 불과 몇백명에 불과할 정도로 소수였는데 소비에트 집권 이후 그 세력이 엄청나게 불어났다”며 “공산당 세력의 확장 방식과 그 시절 이뤄진 억압 등에 대해 연구하는 게 연구소의 주요 연구 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공산주의 시절 100만명 넘게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돼 있었고 구체적 수치는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게 데자라투 연구원의 설명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강제노동과 배고픔, 질병, 고문 등으로 사망한 이들도 부지기수인데 일부는 재판도 없이 처형됐고 실종 처리된 이도 많았다”며 “이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남아 있지 않다”고 전했다. 그는 전체주의 연구의 가장 어려운 점을 묻는 말에 “책임자를 특정하는 일”이라며 “피해자의 피해는 있으나 기록이 없으니 피해를 가한 인물이 누구인지 특정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부쿠레슈티 시내 후미진 곳에 자리 잡은 ‘공산주의 범죄 및 루마니아 망명자 추모 연구소(IICCMER)’는 증언과 기록 수집을 토대로 공산주의 시절 이뤄진 인권 범죄의 책임자를 추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2005년 루마니아 정치권에 불어닥친 반공산주의 처벌 바람을 타고 정부가 설립한 기관이지만 재정 지원은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이 연구소가 책임자를 찾아내 소송을 제기해 군부 인사 몇몇이 감옥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거나 치르던 중 옥사하기도 했다. 연구소의 알린 무레산 사무국장은 “재판 없이 비밀경찰에 의해 처형된 이들의 현장을 고고학자들과 함께 찾아 유해 발굴 작업을 하고 있으며 희생자 유가족의 유전자(DNA) 샘플을 채취하기 시작했다”며 “우리가 어렵게 오랜 시간 걸려 증거를 수집해 소송을 제기해도 검찰 등이 신속히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에는 독재정권 시절 루마니아 북부 지방 소재 보육원 양육시설에서 자행된 아동 학대 범죄 사실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무레산 국장은 “공산당은 사회주의를 지상낙원으로 선전했기 때문에 보육원 같은 시설에서 벌어진 아동 학대 사실을 숨기고 있었는데 그 시절 수많은 아이가 굶어 죽었다”며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렵지만 앞으로 밝혀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부쿠레슈티=글·사진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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