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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 시범운영 부대인 경기도 가평군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혜산진부대에서 지난달 31일 오후 일과를 마친 병사들이 당직사관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받고 있다. 가평=연합뉴스 |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군인다운 자세를 흐트러뜨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싸워 이기는 군인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군대의 본분을 망각하고 있다며 “군인을 보이스카우트로 만든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러한 주장과 비판은 병사를 바라보는 시각, 나아가서 민주주의 사회와 군의 관계 변화를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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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 일과 후 병사들의 부대 밖 외출 제도가 전면 시행된 1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30기계화보병사단에서 병사들이 외출을 위해 위병소로 이동하고 있다. 고양=연합뉴스 |
국방부가 지난 1일 전면 시행에 들어간 ‘평일 일과 후 병사 외출’은 복무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소나마 해소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병사 외출 가능 시간은 오후 5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다. 다만 부대 여건을 고려해 지휘관 판단 하에 조정할 수 있다. 군사대비태세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단결 활동, 면회, 진료, 자기 개발 및 개인 용무 등의 목적으로 외출이 가능하다.
외출 허용 횟수는 개인적 용무인 경우에는 월 2회 이내로 제한되지만 포상 개념의 분대, 소대 단위 단결 활동은 횟수에 제한이 없다. 분대, 소대 단위 단결 활동에서는 지휘관 승인을 받은 경우 가벼운 음주도 가능하다. 훈련이나 교육 등의 일과를 마치고 치맥을 하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외출 범위는 유사시 부대 복귀를 위해 작전책임지역으로 제한했다. 먼 지역으로 외출하는 것은 어렵다는 뜻이다. 다만 지휘관 판단에 따라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휴가자를 포함해 부대 병력의 35% 범위 내에서 부대 밖으로 나갈 수 있다.
국방부는 “평일 일과 후 외출을 통해 병사들의 건전한 여가 사용 여건을 최대한 보장할 예정”이라며 “외출 때 이동수단과 민간인 대상 사고 예방에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해부터 13개 부대를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한 결과, 군사대비태세 유지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평일 가족 면회, 개인 용무 해결 등 긍정적 측면이 많다는 점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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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 시범운영 부대인 경기도 가평군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혜산진부대 생활관에서 지난달 31일 오후 병사들이 통화와 문자메시지 전송, 인터넷 강의 시청 등 자유롭게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가평=연합뉴스 |
병사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다만 일과 후에만 사용할 수 있는 군부대의 특성을 배려한 요금제가 없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해 8월부터 시범적용 부대로 지정된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노도대대 소속 한 병사는 지난달 31일 열린 간담회에서 “하루 4시간만 쓸 수 있는데 5만5000원 요금제는 비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방부는 병사 전용 요금제 도입을 위해 이동통신사들과 협의를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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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원들이 미 해병대와 함께 화생방 상황에서의 전투 기술을 훈련하고 있다. 미 해병대 제공 |
병사들의 군부대 생활이 빠르게 변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휴대전화를 쓰고 외출하면 그게 군대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는 군대 문화와 사회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군대와 사회의 구분이 엄격했던 시절, 군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우수한 장교단과 엄격한 기강을 지닌 군대는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엘리트 집단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사회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진 현대 사회에서는 군대가 민간에 비해 우위를 누리기가 힘들다. 사회와 긴밀히 소통하면서 군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군대는 사회에 뒤쳐진 집단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현역 군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갖춰진 상황에서 우수한 인적 자원들이 군을 기피한다면 군대에 대한 사회의 인식 악화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군대와 사회가 서로 나뉜 채 소통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 발전이 이뤄지면 부작용이 생긴다. 바로 쿠데타다. 민간 사회의 변화를 ‘사회가 잘못되고 있다’고 인식하고 군대가 이를 되돌리려 할 수 있다. 1930년대 일본 군부가 정치인들을 암살하는 등 쿠데타에 나선 것은 1920년대부터 지속된 입헌 민주주의에 대한 군부의 반발이 원인이었다.

군 내부적으로도 병사의 자율권 확대는 리더십의 변화에 부합하는 부분이다.
유럽의 경우 나폴레옹 전쟁이 벌어졌던 18~19세기 이전까지의 군대는 지금처럼 국민 개병제에 의한 시민 군대가 아닌, 정부가 돈을 주고 고용한 정부군에 가까웠다.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많이 받는 군대에 병사로 입대하기를 꺼려했다. 때문에 병사로 군에 입대하는 사람들은 문맹자나 범죄자가 적지 않았고, 일확천금을 꿈꾸며 입대한 사람들도 있었다.
군대에 의해 강제징집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영국 해군의 경우 18세기~19세기 초 사실상 납치에 가까울 정도로 민간 선원이나 연안지역 남성들을 강제로 수병에 편입하는 강제징병제도를 운영했다.
다양한 동기에 의해 입대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에게 1분당 1~2발 정도만 쏠 수 있는 머스킷 소총을 주고 적군과 싸우게 하려면 엄격한 군율이 필수였다. 영국 해군은 탈주병을 체포할 경우 채찍질 300대를 가하거나 교수형에 처하기도 했다. “나를 따르라” 식의 장교 중심 리더십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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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6여단 장병들이 적 침투상황을 가정해 훈련하며 상륙돌격장갑차에서 하차해 이동하고 있다. 백령도=연합뉴스 |
병사들을 사회에서 격리해 혹독한 훈련을 시키고 구타와 폭력을 가하는 고대 그리스 스파르타 군은 한때 그리스를 장악했으나 그 영광은 오래 가지 못했다. 지나치게 폐쇄적인 특성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반면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며 시민의식을 유지했던 고대 로마제국의 군대는 수백년 동안 지중해를 재패했다. 병사들의 생활을 통제하고 간섭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군의 기강과 군사보안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병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군대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그것이 한국 군대를 강군으로 만드는 힘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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