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자리를 뜬 지 1시간가량 지난 9시쯤 같은 자리에 여성 BJ가 등장했다. 그 역시 셀카봉에 스마트폰을 달고 거리를 활보했다. 행인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도 자신의 얼굴이 방송에 나오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여성 김모(25)씨는 “이전에도 강남역 거리에서 어떤 BJ가 말을 걸어 당황한 적이 있다”며 “내 얼굴이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려진다는 사실에 매우 불쾌했다”고 정색했다. 카메라가 불편한 일부 행인은 BJ들을 피해 길을 돌아가거나 갑자기 뛰면서 촬영현장을 지나갔다. 일부 BJ는 지나가는 여성들이 방송 출연을 거절하는데도 붙잡고 늘어져 ‘요주의 인물’에 올라 있다는 얘기도 들렸다.
유튜브, 아프리카TV 등 개인방송이 큰 인기를 끌자 많은 BJ가 서울의 대표적 ‘핫 플레이스’인 강남역 거리를 찾고 있다. BJ 사이에서 일명 ‘야킹(야외방송을 통해 여성 게스트를 섭외하는 방송)’ ‘야방(야외방송)’이라는 형식의 콘텐츠가 유행하면서다. 이들은 주로 지나가는 젊은 여성들을 붙잡고 인터뷰 방송을 진행했다. 외모가 걸출하거나 노출 의상을 입은 여성이 카메라에 잡히면 시청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붐비는 주말이면 20여명의 BJ가 찾을 만큼 강남역 주변은 개인방송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위 ‘야킹의 성지’라 불린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업을 유지하는 상인 중에는 이들 BJ의 잦은 출몰에 골치를 앓는 경우도 있다. 젊은 여성 등 사람들이 BJ가 방송을 진행하는 거리를 피해 다니거나 일부 BJ가 손님들에게 다짜고짜 인터뷰를 요청하는 식으로 불편을 끼치면서 손님이 주는 등 매출 하락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주점 사장은 “BJ들이 ‘광고, 홍보효과가 있으니 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하는데 손님들 방해될까봐 내쫓고 있다”며 “가만히 앉아서 찍으면 뭐라 할 수 없는데 일부 손님이 불편하다고 항의할 때가 있어 되도록 만류한다”고 말했다. 고기 전문 음식점 운영자 정모(57)씨도 “BJ들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여성들을 데리고 오면 민망할 때가 있다”고 전했다.
급기야 일부 상인은 유명 BJ들을 불러모은 뒤 “하루 5명씩만 강남역에 나와 달라”며 자체적인 인원 통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강남역 인근 상인들의 연합체인 강남 상가번영회 측은 BJ 규제 강화에 조심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강남역 주변 홍보효과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상가번영회 이창구(52) 부회장은 “BJ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고 가게 홍보효과도 있어 부정적인 측면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며 “번영회 차원에서 상점에 들어와 손님들의 초상권을 침해하는 등 도가 지나친 BJ의 경우 경고를 해 누적되면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8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길거리 인터넷방송 금지해 주세요’라는 청원이 제기될 만큼 무차별적인 초상권 침해 등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인 야외방송은 계속되고 있다. 피해자들이 BJ에게 초상권을 침해받았다 하더라도 실시간 방송이 녹화된 증거가 없어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강남역에서뿐만 아니라 서울 홍익대, 이태원, 부산 서면 등 젊은 사람들로 붐비는 지역은 비슷한 방송이 자주 진행돼 물의를 야기하고 있다.
야외방송 BJ 사이에서도 초상권 침해나 영업방해를 자제해야 한다는 자정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야외방송을 주요 콘텐츠로 삼는 BJ A씨는 “주말 같은 경우 50m마다 카메라가 있는 거리를 사람들이 어떻게 지나다닐까 싶다”며 “누구나 방송할 수 있는 개인방송 특성상 신입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야외방송을 주로 진행하는 BJ들끼리는 이런 부분을 함께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리카TV 관계자는 “노출이 과한 행인을 촬영한다든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초상권을 침해한 BJ에 대해서는 이용 정지 등의 조치를 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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