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합숙 훈련 = 특효약…성적만 생각하다 선수를 잊었다

입력 : 2019-01-17 21:30:20 수정 : 2019-01-18 15:31:00

인쇄 메일 url 공유 - +

[심층기획-성폭행·폭력에 짓밟힌 스포츠인권] ② ‘운동기계’ 전락한 선수들 / 학생스포츠 합숙소 금지 불구 / 중고교 기숙사 형태 운영 여전 / 유소년때부터 폭력의 일상화 / 프로종목조차 버젓이 시행중 / 격리된 공간… 인권침해 온상 / 성적지상주의 풍토 개선 필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축구는 200여일에 달하는 합숙훈련을 소화했다. 이 긴 합숙은 체력과 조직력 향상으로 이어졌고, 결국 한국은 4강 진출의 신화를 이뤄냈다. 스포츠에서 합숙이 갖는 위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일화다. 단시간에 좀 더 많은 훈련을 체계적으로 소화할 수 있기에 합숙은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에서 경기력 향상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 심지어 한국은 1966년 태릉선수촌 개촌 이후 국가 차원의 합숙훈련시스템까지 운영해 왔고, 이는 스포츠 강국의 토대가 됐다.

다만, 강한 빛 아래에는 깊은 어둠이 존재하게 마련이다. 오직 효율적 훈련만을 위해 합숙이라는 수단을 남용하다 보니 합숙기간 폭력이나 성폭력 등 인권침해가 빈번하게 발생해 왔다. 최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의 성폭행 폭로를 계기로 이런 합숙시스템의 문제점이 다시 도마에 올랐다. 심석희가 국가대표 훈련장인 진천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조재범 전 대표팀 코치로부터 여러 차례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나 전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이어 나온 유도선수 신유용 등의 ‘미투’ 폭로도 합숙시스템이 사건의 주요 배경이 됐다.

문제는 이런 비극이 이들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합숙이 우리 체육계에서 워낙 일반적인 훈련방식인 탓이다. 2003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참사, 2007년 여자프로농구 감독 성폭행 미수 파문 등을 계기로 체육계에서 합숙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다수 나왔지만 여전히 합숙훈련은 체육 전 종목, 전 연령대에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심석희 선수 등 쇼트트랙 선수 4명을 상습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조재범 전 코치.
사진=연합뉴스
학생스포츠에서는 원칙적으로 합숙소 운영은 금지된 상태이지만 여전히 기숙사 형태로 운동부 선수들의 집단숙식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외부 전지훈련 등 형태로 비정기적 합숙도 수시로 진행된다. 심지어 배구 등 일부 프로스포츠에서도 합숙이 버젓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합숙은 격리된 공간에서 감독, 코치 등 일부의 지도감독하에 폐쇄적으로 진행된다.

최근 나온 ‘2018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는 합숙시스템이 가진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합숙 경험이 있는 여성 선수 중 14.7%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밝힌 반면, 합숙경험이 없는 여성 선수 중에서는 6.4%만이 피해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성추행이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장소로 약 39%에 달하는 선수들이 숙소를 꼽기도 했다.

더욱 큰 문제는 한국 스포츠의 풍토에서는 이런 합숙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완전히 뿌리뽑기 힘들다는 점이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은 “이런 합숙 등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단순히 특정인의 일탈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감독, 코치 등이 권력관계의 고착화를 위해 시도되는 성격이 짙다”고 조언했다. 성적지상주의 속에서 감독, 코치의 수직적 명령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폭력뿐 아니라 성폭력까지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체육계의 해묵은 성적지상주의를 뿌리뽑지 않는 한 ‘제2, 제3의 심석희’가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는 셈이다. 김 소장은 “올림픽 헌장 등에 명시된 스포츠의 기본정신은 인권의 실현이지만 체육진흥법이나 스포츠계 문화 및 관행, 제도 등은 모조리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구현돼 있다”면서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선수들을 수단화하는 체육계의 풍토가 성폭력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체육계가 완전히 변화해야만 성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필웅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여신 미모'
  • 아일릿 원희 '여신 미모'
  • 아일릿 민주 '매력적인 눈빛'
  • 다솜 '완벽한 미모'
  • 배드빌런 윤서 '상큼 발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