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제는 이런 비극이 이들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합숙이 우리 체육계에서 워낙 일반적인 훈련방식인 탓이다. 2003년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합숙소 화재 참사, 2007년 여자프로농구 감독 성폭행 미수 파문 등을 계기로 체육계에서 합숙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다수 나왔지만 여전히 합숙훈련은 체육 전 종목, 전 연령대에서 활발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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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희 선수 등 쇼트트랙 선수 4명을 상습폭행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조재범 전 코치. 사진=연합뉴스 |
최근 나온 ‘2018년 스포츠 (성)폭력 실태조사’는 합숙시스템이 가진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합숙 경험이 있는 여성 선수 중 14.7%가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밝힌 반면, 합숙경험이 없는 여성 선수 중에서는 6.4%만이 피해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성추행이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장소로 약 39%에 달하는 선수들이 숙소를 꼽기도 했다.
더욱 큰 문제는 한국 스포츠의 풍토에서는 이런 합숙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완전히 뿌리뽑기 힘들다는 점이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은 “이런 합숙 등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단순히 특정인의 일탈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감독, 코치 등이 권력관계의 고착화를 위해 시도되는 성격이 짙다”고 조언했다. 성적지상주의 속에서 감독, 코치의 수직적 명령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폭력뿐 아니라 성폭력까지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체육계의 해묵은 성적지상주의를 뿌리뽑지 않는 한 ‘제2, 제3의 심석희’가 나올 가능성은 여전히 상존하는 셈이다. 김 소장은 “올림픽 헌장 등에 명시된 스포츠의 기본정신은 인권의 실현이지만 체육진흥법이나 스포츠계 문화 및 관행, 제도 등은 모조리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구현돼 있다”면서 “국위선양을 목적으로 선수들을 수단화하는 체육계의 풍토가 성폭력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체육계가 완전히 변화해야만 성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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