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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우대 정책 오히려 역차별"…정부에 등 돌린 '20대男'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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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1-13 19:20:42 수정 : 2019-01-14 10:2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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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男 10명에 들어보니… / “기성세대 ‘유리천장 업보’ 청년에 전가” / 대통령 지지율 전 연령대 중 최저 / 종교적 병역거부 판결 ·젠더 갈등 등 / 공정하지 못한 과정·결과에 배신감 / 일부 여권 인사들의 부적절한 발언 / 분노에 불지펴…지지층 이탈 가속화
“정부가 우리에게 관심이 있긴 한가요? 솔직히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데요.”

대학생 이동현(24·가명)씨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이같이 강조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문빠’(문재인 대통령의 팬)로 통했던 이씨는 요즘 정부를 향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전역 후 복학을 앞둔 2016년 겨울엔 촛불집회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2017년 대통령 선거 땐 주변에 ‘기호 1번’을 강력히 추천한 그였기에 스스로도 놀랄 정도라고 한다. 계기라고 할 만한 일은 딱히 없었다. 이씨는 “처음엔 ‘나라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구나’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건 아니지 않나’란 생각이 점점 커졌다”고 털어놨다.

이씨처럼 정부에 등을 돌린 20대 남성(이른바 ‘이대남’)들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에서 20대 남성의 대통령 지지율이 모든 연령대 남녀를 통틀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때 문재인정부의 핵심 지지층으로 분류됐던 20대 남성들은 왜 반대층으로 돌아선 걸까.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에서 다양한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어느 한 가지 원인만 꼭 집어내기는 힘들다는 게 중론이다. 이에 세계일보는 직장인,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 20대 남성 10명에게 현 정부에 대한 평가와 그 이유를 들어봤다. 응답자들의 이름은 전부 가명으로 처리했다.

◆달라진 게 없단 인식에 ‘실망’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17일 공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남성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29.4%였다. 이는 60대 남성(34.9%)뿐만 아니라 전 연령대 남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다. 반면 20대 여성의 지지율은 20대 남성의 배가 넘는 63.5%였다. 나흘 뒤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20대 남성의 문 대통령 지지율은 41%로 20대 여성(67%)과 차이가 컸다. 새해 들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연령대별 남녀 지지율이 따로 표시되지 않아 20대 남녀의 지지율은 알 수 없다.

13일 본지와 인터뷰한 이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20대 남성들 사이에선 ‘달라진 게 별로 없다’는 인식이 퍼져 있었다. 이번 정부가 젊은층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출범했지만 여전히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생 서지훈(28)씨는 “취업이 힘든 건 지난 정부 때와 그다지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며 “그런데도 정부는 경제정책보다 남북관계에만 신경 쓰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는 “청년들이 변화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잇단 공정성 논란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직장인 김진우(28)씨는 “대통령이 언급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란 말을 참 좋아했는데, 현 정부에서도 ‘낙하산 인사’나 채용비리 등 문제가 반복되는 걸 보고 실망했다”고 말했다. 취준생 최우현(29)씨는 “대통령이 내부고발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정부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 이후 그를 바로 고발하는 모습을 보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각종 이슈·여성 우대에 ‘분노’

그러나 이것만으론 설명이 충분치 않다. 동년배 여성들도 똑같이 취업 한파를 겪고 있고 공정성 논란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슈 가운데 유독 남성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했던 부문을 살펴봐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현동 바른미래당 청년대변인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통계를 보면 남성 지지율이 급감했던 시기는 비트코인 규제, 남북 아이스하키 단일팀, 그리고 양심적(종교적) 병역 거부 논란이 일 때였다”고 전했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박준영(21)씨는 “현역 입영자들이 졸지에 (가기 싫은 군대를 마지못해 간) 비양심적인 사람이 됐다”며 씁쓸해했다.

갈수록 심해지는 남녀 간 성 갈등의 여파도 컸던 것으로 보인다. 20대 남성들 사이에선 정부의 여성 위주 정책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온다. 직장인 강명수(27)씨는 “아직까지 여성들이 겪는 부당한 차별이 남아 있다는 점에는 이의가 없지만 20대만 놓고 봤을 땐 얘기가 다르다”며 “지금의 여성 우대 정책들은 기성세대의 잘못을 젊은이들에게 전가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재환(25)씨는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도 엿볼 수 있듯 우린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며 분개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노무현재단 유튜브 캡처
◆일부 여권 인사 발언에 ‘좌절’

정치권도 20대 남성들을 자극하는 부적절한 언행으로 공분을 샀다.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으로 꼽히는 유시민 작가는 지난달 한 특강에서 20대 남성의 낮은 지지율을 두고 “우리(20대 남성)는 축구도 봐야 하고 게임도 해야 하는데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 불리하다”는 말로 구설에 올랐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유리천장’ 지수가 높은 나라이고 남녀 간 불평등이 심한 나라이므로 그런 부분을 바로잡는 정부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해 20대 남성들의 비판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 뉴시스
취준생 김승빈(26)씨는 “유 작가의 발언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이든, 우리를 ‘철부지’ 정도로 여기는 태도가 묻어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박 의원의 말 역시 ‘유리바닥’ 철폐를 주장해온 20대 남성들에게 오히려 훈계를 하고 있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녀 갈등을 “특별한 갈등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것을 두고 박준영씨는 “‘페미니스트 대통령’께는 별일 아닐지 모르나 우리에겐 절박한 현실”이라며 “이 나라는 이제 답이 없는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전문가들은 20대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감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취업 문제 등에서 20대 남성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여성에 비해 강하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25~29세 여성의 고용률은 69.6%로, 같은 연령대 남성 고용률(67.9%)보다 높았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그동안 우리 사회가 정책적으로 20대 남성을 배려하지 못한 건 사실”이라며 “이 문제가 지속될 경우 저출산 등 다른 사회문제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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