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초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회사원 김모(29)씨는 23일 세계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우편함에서 적십자회비 지로용지를 발견했다. 누가 봐도 공과금 고지서 같이 생겨 당연히 세금처럼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황당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매년 연말연시 집으로 발송되는 대한적십자사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두고 국민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세금·공과금 고지서처럼 지로 형태로 발송돼 의무 납부인 줄 알고 내는 사례가 있을 뿐 아니라, 국가기관도 아닌 특수법인인 대한적십자사가 세대주의 이름과 주소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까지 더해졌다.
대한적십자사는 적십자회비 모금 방식의 다각화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히며, 기부금의 축소가 적십자 인도주의 사업의 축소로 이어질 것을 우려해 나눔 문화에 확산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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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회비 지로용지. 대한적십자사 제공 |
무엇보다 대한적십자사의 일방적인 지로통지서 발송의 회비 모금 방식에 대한 국민들의 우려와 불만이 크다.
적십자사 회비 모금에 지로용지가 도입된 것은 2000년이다. 그전에는 각 지역의 통·반장 등이 집마다 방문해 모금을 도왔는데, 강제성 논란과 함께 투명성 담보도 어렵다는 지적이 나와 지로용지 배부 방식으로 변경됐다.
현재 적십자사는 매년 12월 소득에 상관없이 개인은 1만원, 사업자는 3만원의 금액이 적힌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를 만 25세 이상 75세 미만 모든 세대주에게 발송하고 있다. 회비를 납부하지 않은 세대에 한해서는 이듬해 2월에 2차로 다시 발송한다.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는 공과금 고지서와 비슷한 형태로 주소와 세대주 이름, 납부 기간까지 명시돼 있다. ‘적십자회비는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성금입니다’라는 문구가 있긴 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시민들이 공과금처럼 의무 납부해야 한다고 착각하기 쉽다는 것이다.
또 ‘대한적십자사 조직법’ 등에 의거해 적십자사가 각 지자체로부터 세대주 이름과 주소 등 개인정보를 확보한다고는 하지만, 적십자사가 개인정보 제공을 위한 별도의 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있다는 점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몇 년간 적십자 회비를 납부했다는 회사원 황모(33)씨는 “이제 적십자회비 지로가 오면 바로 버린다. 공과금 고지서랑 똑같이 생겨서 당연히 내야 하는 줄 알았고, 안 내면 연체료가 붙을 것 같아 바로 냈었는데 안 내도 된다고 하더라”며 억울해했다. 그러면서 “(대한적십자사가) 세금을 받는 기관도 아닌데 내 이름과 주소를 알고 매년 고지서를 보낸다는 것도 찝찝하다”고 덧붙였다.
◆“적십자회비 모금 방식 변경해달라”…청와대 청원·시민단체 요구 잇따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도 적십자회비 모금방식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청원이 끊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공과금으로 착각할 수 있는 지로통지서 형태와 동의 한 번 구한 적 없이 집 주소를 알아내 발송하는 데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지난 16일 한 청원인은 “지로 통지서 양식 변경을 요청한다”며 “대한적십자사에서 발송하는 지로통지서가 전기세, 수도세 등의 세금 납부 통지서와 아주 흡사해 세금인 줄 알고 납부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개인정보 무단 사용 금지를 요청한다”며 “현재 대한적십자사에서는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은 개인정보에 근거해 지로 통지서를 발송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개인의 개인정보를 왜 정부에서 승인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다른 청원인은 앞서 지난 13일 “예전에는 적십자 회비가 공과금인 줄 알고 납부했었는데 선택이라더라. 주소와 같은 개인정보를 동의 절차 없이 알고 청구하는 것도 문제”라며 “납부를 했다면 어떻게 쓰였는지 경과보고를 해주는 것도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알 권리와 선택할 권리를 침해하는 적십자 회비가 과연 정의의 손길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 맞는지 정부에게 묻고 싶다”고 청원했다.
대구지역 25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는 지난해 초 성명을 통해 “적십자의 특혜모금 방식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 행정기관에 개인정보 요구를 중지하고 반강제성 지로 납부제를 폐지하라”고 촉구하며 적십자사의 반강제적 회비모금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대한적십자사 측은 매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지로용지를 통한 적십자회비 모금방식에 대해 “각종 공과금뿐만 아니라 신문 구독료, 전기요금, 아파트 관리비, 학생회비 등 다양한 곳에서 활용 중인 지로는 모든 은행의 점포를 수납·지급 창구로 활용할 수 있어 편리하며 참여자가 누구인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며 “다만 지로 규격은 은행 창구, ATM, 편의점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금융결제원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며, 임의로 디자인 등의 규격 변경이 불가해 공과금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적십자회비 지로 상단의 홍보란을 통해 ‘자율적 참여’ 문구를 명기해 세금으로 오인되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모금 경로 다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기부 문화 확산에 동참해 줄 것을 당부했다. 적십자사 측은 “현재 지로 외에 개인별 가상계좌 부여, 모바일을 통한 간편 결제(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등), 약정 통한 정기후원 제도 등 모금 경로 다각화를 위해 노력 중”이라며 “기부에 대한 불신·기피 현상과 장기적인 경제 불황으로 모금에 어려움이 있는 지금, 기부금의 축소는 재난구호·위기가정 지원 등의 적십자 인도주의 사업의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 나눔 문화를 확산해서 함께 살아가는 희망 가득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적십자의 노력에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김지연 기자 delay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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