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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결국 폭행으로 터졌다”… 이수역 사건이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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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1-20 07:00:00 수정 : 2018-11-19 18: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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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톡톡] 혐오표현이 실제 폭행으로 가는데 한발짝뿐
최근 남녀갈등으로 심화한 ‘이수역 폭행사건’의 출발은 ‘혐오표현’이었다. 공개된 영상, 인터뷰, 경찰조사 등을 종합해보면 폭행사건 당사자인 여성 2명은 지난 13일 새벽 서울 동작구 이수역 인근 주점에서 평소 관심을 두던 ‘페미니즘’에 관한 대화를 나누다 주변 손님과 갈등을 빚었다. 그 과정에서 남자 무리와 여자 무리 사이 ‘혐오발언’이 오가며 갈등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주점 안은 극단적 온라인 커뮤니티 일베, 워마드 등에서나 볼 법한 ‘혐오표현’으로 가득찼다.

여성들은 “내가 Xcm면 그냥 자살했다” “내 X가 네 X보다 더 크다” “칙칙폭폭(성소수자 비하표현)” 등의 말을 쏟아냈고, 남성들도 “야이 메갈X(여성주의 사이트 메갈리아 사용자를 조롱하는 말)아” “X달고 이것도 못 해?” “XX대장부” 등 혐오표현을 내뱉었다. 이 같은 말다툼은 폭행까지 이어졌다. 서로의 혐오표현을 휴대폰 영상에 담으려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발생했고 한 여성은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결국 서울 동작경찰서는 이날 남성 3명, 여성 2명 등 총 5명을 쌍방폭행 혐의로 입건했다.

지난 1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된 이수역 폭행 직전 상황 영상.
유튜브 캡처
◆성인 남녀 80%…“혐오표현 심각해”

‘이수역 폭행사건’은 온라인 혐오표현이 현실 폭행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주점에서 오간 남녀 혐오표현들은 온라인에서 탄생해 각종 커뮤니티를 떠돌며 빠르게 주변으로 확산한 것들이었다. 이들 혐오표현은 특정집단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수역 폭행사건’이 보여주듯 이같은 혐오표현은 당사자에겐 실제 폭력처럼 다가올 수 있지만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따라 이를 막을 규제조차 없었다.

일종의 온라인상 ‘놀이’로 출발한 ‘혐오표현’은 현재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문제로 번지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지난 7월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여성·남성 혐오표현 인식’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0.7%가 ‘심각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여성(85.8%)이 남성(75.6%)보다 혐오표현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김치녀’, ‘한남충’ 같은 남녀 혐오표현에 대한 단어를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도 75.6%에 달했다.

지난 10월 서울 혜화역에서 열린 ‘5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혜화역 시위)’에서도 집회참가자들이 여성차별을 주장하며 “한남충”, “재기하라” 등 혐오표현을 외쳤다. 지난 7월 시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문재인 재기해’ 구호가 등장해 사회적 파장을 낳기도 했다. 지난 15일 사회 이슈를 반영해 출제되는 ‘2018 대학수능시험 사회탐구영역’에 ‘혐오표현 규제방안’에 대한 문제가 등장할 정도로 혐오표현은 사회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이수역 폭행’ 여성 당사자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차별금지법’으로 혐오표현 가이드라인 마련해야

국내에서는 혐오표현이 대상 집단에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이를 규정할 제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는 혐오표현을 직접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법령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을 향한 혐오표현은 ‘모욕죄’나 ‘명예훼손죄’로 처벌할 수 있지만 집단을 대상으로 한 혐오표현은 처벌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 ‘혐오표현’이란 정의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최영애 위원장은 지난 9월 “여성과 이주민, 난민, 성 소수자 등을 비하하는 표현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성별, 장애, 학력, 용모 등을 이유로 한 차별 행위는 평등의 가치를 외면한다”며 취임 후 자신의 첫 번째 책무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꼽았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혐오표현을 방지할 제반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최 위원장은 이후 차별금지법 제정을 목표로 한 인권위 내 ‘혐오·차별·배제 대응위원회’ 구성 계획을 밝혔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는 19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와 이민자에 대해 반대할 때 혐오표현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차별금지법은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혐오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이어 “이수역 폭행사건에 등장하는 혐오표현들 자체를 직접적으로 규제할 수 없겠지만 법을 통해 그런 표현들이 혐오표현이란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온라인상 혐오 표현의 경우에도 지금은 처벌이나 방지할 근거가 없지만 차별금지법이 있다면 표현을 계도하거나 삭제할 근거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캡처
◆해외는 ‘혐오표현’ 어떻게 대응하나

해외에선 나라별로 ‘혐오표현’에 대한 정의가 다양하다. 영국은 혐오표현을 ‘공공질서’를 흩뜨리는 선동으로 보고 인종적, 종교적 혐오 등을 ‘공공질서법’에 따라 규제하고 있다. 해당 법조문에 따르면 “말이나 행위에 인종적 증오를 선동할 것을 의도하거나 전체적 상황에 비추어 인종적 증오가 선동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유죄. 종교적 증오를 선동할 것을 의도한 경우 유죄”라고 설명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홀로코스트, 나치 찬양 금지에서 비롯한 증오표현 규제가 엄격하다. 독일형법에는 “국적, 인종, 종교, 민족적 출신에 따라 특정되는 집단에 대해 개인에게 증오를 불러일으키거나 이에 대한 폭력적 또는 자의적 조치를 유발하는 자를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자유형을 처한다”고 명시돼있다.

일본 오사카시도 2016년 ‘헤이트 스피치 처리에 관한 조례’를 통해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 권리 또는 자유를 제한하는 것, 증오 또는 차별의식이나 폭력을 선동하는 것 중의 하나를 목적으로 행해지는 모욕, 비방, 위협”등을 ‘혐오표현’으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확산을 예방하기로 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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