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개교한 경찰대학은 어느덧 30년이 지나 배출한 졸업생만 4000여명에 달한다. 퇴직 후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졸업생도 있지만, 대부분은 경찰에 남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른바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라 불리는 명문대학에 갈 실력을 지닌 우수한 학생들이 경찰대에 입학해 체계적인 교육을 거쳐 간부로 입직하면서 경찰의 수준과 자질이 많이 향상됐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경찰대학의 부정적인 요소는 ‘경찰대 순혈주의’다. 경찰대학은 고교를 졸업한 21세의 미만의 사람만 입학할 수 있고, 매년 100명이 입학해 기수 간의 위계 서열이 엄격하다. 엄격한 기수 문화 속에서 경찰대 졸업생들 간에 알게 모르게 서로를 ‘밀어주고 땡겨주는’ 관행이 있다는 게 경찰대 순혈주의의 주요 요지다. 경찰의 기존 주류 세력이었던 간부후보생과 순경 공채 출신 경찰들이 경찰대 순혈주의 때문에 박탈감을 느낀다는 얘기도 어제 오늘 일을 아니다.
◆경찰대 개혁방안의 주요내용은?
경찰개혁위원회가 경찰대학 개혁방안을 내놓은 주된 이유도 경찰대 순혈주의 해소다. 13일 경찰대학 개혁추진위원회는 13일 경찰청에서 경찰대 교육역량 강화와 경찰 내 경찰대 순혈주의 해소 등을 위한 16개 세부개혁 과제를 발표했다. 개혁안에 따르면 현재 고등학교 1학년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2021년부터 경찰대의 고졸 신입생 선발인원이 100명에서 50명으로 절반이 줄어든다. 2023년부터는 재직 경찰관 25명과 일반대학생 25명도 경찰대 3학년으로 편입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신입생 입학연령 상한이 현재 입학연도 기준으로 21세인 것을 41세로 완화하고, 편입 가능 나이는 43세로 높아진다. 다양한 경험을 갖춘 인재들이 경찰대에서 공부할 길을 열여 주기 위해서다.
편입학 지원자격은 고등교육법상 대학교 등에서 65∼70학점 이상을 이수한 사람이며, 2∼3년제 전문대나 학점인정제도, 평생교육(독학사) 학점도 인정한다. 일반 대학생 편입학에는 전공 제한이 없고, 경찰공무원 채용시험처럼 ‘법령상 임용 결격 사유가 없는 자’에게만 자격을 준다. 재직경찰관은 계급 및 응시 횟수 제한 없이 편입요건만 갖추면 지원이 가능하며, 합격한 경찰관은 퇴직 후 편입학 절차를 밟게 된다. 현재 12%로 규정한 여학생 선발 비율도 폐지해 늦어도 2021학년도에는 남녀 통합 모집을 하기로 했다.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대통령 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자치경찰제 특별위원회안 발표 및 정책토론회`에서 정순관 위원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2019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졸업 후 의경부대 소대장 근무로 군 복무를 대신하는 전환복무가 사라진다. 따라서 개별적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국비로 전액 지원되던 학비와 기숙사비 등은 1∼3학년까지 개인 부담으로 하되 국립대 수준 장학제도를 지원하기로 했다. 개혁위원회측이 밝힌 학비 수준은 충남 지역 내 국립대 문과대학의 1년 등록금인 350만원 정도다.
◆경찰대 졸업생들 “경찰대의 사실상 폐지 수순?”
이번에 발표된 경찰대학 개혁방안에 대해 경찰대를 졸업해 현직에 임관한 경찰들 사이에서는 경찰대를 사실상 폐지하는 수순을 밟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나온다. 개혁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13일 개혁방안 발표에서 “경찰대의 최종 종착지는 학부를 폐지하고, 연구 중심의 대학원 체제로 나가는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경위 입직 등의 혜택은 사라지고, 경찰 내의 경찰대 순혈주의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경찰대학 관계자는 “박 위원장의 발언은 경찰대학 개혁 TF 내에서 논의 및 검토가 됐던 내용이지만, 확정된 내용은 아니다”라고 반박했지만, 박 위원장의 말대로 경찰대가 바뀐다면 사실상 경찰대가 폐지되는 것은 명약관화하다는 게 경찰 안팎의 반응이다.
한 경찰대 출신 경찰은 이번 개혁안을 두고 ‘개혁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대부분의 경찰대학 졸업생들이 책임감을 어깨에 짊어지고, 경찰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나름 희생해 왔다고 생각했다. 국민을 위해 치안 일선에서 노력하는 우리들을 개혁의 대상으로만 모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라며 토로했다.
경찰대학 출신들이 고위직 승진 독식한다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한 경찰대 졸업생 출신 경찰도 있었다. 그는 “과거엔 순경 공채로 입직하면 계급 하나 승진하기 힘들어 만년 경사 같은 경찰들도 많았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젠 순경 공채로 들어와 승진 공부를 열심히 하면 경위까지 몇 년만에 승진하고, 경감은 경찰대 졸업생과 비슷하거나 더 일찍 다는 사람들도 있다”라면서 “오히려 조직 내부에서 ‘쿼터제’를 운운하며 입직경로별 승진이나 부서 전입에 제한을 가하고 있어서 경찰대 출신 경찰이 차별도 많이 받고 있기도 하다. 오히려 순경 공채로 들어온 사람들이 승진 공부에 매달리면 더 고위직에 빨리 올라가는 게 현실 아닌가. 승진 공부에 매달리지 않고 정말 국민을 위해서 일할 사람은 누구일지 생각해달라”라고 말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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