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날 등장한 상반된 언급으로 국회 국방위 국감은 ‘기승전 NLL’로 진행됐다. 같은달 19일 해군본부 국감에서 NLL 문제로 격돌한 여야는 20일 국방부 및 합참 종합국감에서 ‘북한이 NLL을 인정했는가’를 두고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NLL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행동과 그렇지 않은 증거들이 함께 드러나면서 NLL 문제는 혼란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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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장성급군사회담 남측 수석대표인 김도균 소장(오른쪽)과 북측 수석대표인 안익산 육군 중장이 지난달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파주=사진공동취재단 |
1959년 11월30일 북한이 발간한 ‘조선중앙연감’은 서해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표기하고 있다. 6.25 전쟁으로 해군력이 초토화된 북한으로서는 유엔군 함대가 해상봉쇄에 나서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NLL 덕분에 북한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해역이 생겼다는 측면에서 NLL은 북한에게 이로운 존재였다. NLL을 준수할 동기가 있었던 것이다.
1963년 5월 17일 군사정전위원회에서 유엔군사령부가 북한측에 간첩선의 남하에 항의하자 북한측은 “북한 함정이 NLL을 넘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1984년 9~10월 우리측의 홍수 피해에 대해 북한 적십자사가 수해복구물자를 지원했을 때 남북 군함은 NLL 선상에서 북한 수송선을 인수인계했다. 북한군이 NLL을 준수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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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서해 해상 적대행위 금지구역(완충수역) 합의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인천시 옹진군 연평면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장재도의 포진지가 닫혀 있다. 연평도=연합뉴스 |
북한이 NLL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부정했다는 증거도 많다. 북한 선박이 황해도 해주항을 마음대로 오갈 수 없어 4~5시간 이상을 우회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서해 중부 해상을 장악하면 서북도서를 고립시킬 수 있어 바다에서의 행동도 자유로워진다. 북한이 6.25 전쟁에서 궤멸된 해군 전력을 회복한 1970년대부터 NLL 무력화에 몰두한 이유다.
1973년 10~12월은 북한의 NLL 무력화가 시작된 시기다. 북한 어뢰정들이 우리 군함을 향해 모의어뢰발사 훈련을 실시하고, 백령도로 가는 상륙함을 포위하는가 하면, 서북도서를 오가는 여객선에 위협을 가했다. 유엔사에서 군사정전위를 통해 북한에 항의하자 북한측은 “황해도와 경기도 경계선 북쪽의 바다는 우리 해역”이라며 “서북도서를 오가려면 우리측의 사전 승인을 받으라”고 억지를 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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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상 적대행위 금지구역(완충수역)에 관한 9.19 남북군사합의가 시행된 첫날인 1일 오후 인천시 옹진군 연평도 인근 해안에서 기동훈련중인 고속정의 포신에 덮개가 씌워져 있다. 연평도=사진공동취재단 |
1999년과 2002년 1,2차 연평해전이 벌어진 뒤 2006년 5월에 열린 제4차 장성급회담에서는 북한의 억지 주장이 정점에 달했다. 김영철 당시 북한 대표는 “북측은 NLL에 대해 합의도 승인도 묵인해준 적도 없다”며 우리측을 압박했다. 1959년 조선중앙연감에 NLL을 표기한 것에 대해서는 “연감을 만든 출판사가 표기를 잘못해 인민들의 항의를 받아 출판사는 없어졌으며, 도표는 3개월만에 찢어버렸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김영철은 새로운 해상경계선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실왜곡과 공갈, 협박 등을 지속했으나 우리측의 ‘NLL 수호’ 원칙에 막혀 성과를 얻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군사적으로는 NLL을 준수했지만 남북, 유엔사와의 회담과 내부 선전 등 정치적 측면에서는 NLL을 부정하는 행태를 취해왔다. NLL 무력화를 통해 한반도 정세 주도권을 장악하고 서해 일대에서 한미 연합군의 활동을 견제하려는 정치적, 군사적 의도가 깔려있다는 해석이다.

NLL에 대한 북한의 이중적인 태도는 국내에서 “북한이 NLL을 인정하느냐”라는 논란으로 이어진다. 인정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름의 근거가 있다. 논란이 격화되다보니 주무부처인 국방부의 NLL 관련 언급도 오락가락하는 모양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NLL의 법적 근거와 서북도서 일대의 실효적 지배 여부다.
서해 NLL은 1953년 8월 30일 획정 당시 정전협정에서 합의한 경계선은 아니다. 하지만 남북 함정의 충돌을 방지한다는 설정 목적으로 볼 때, 정전협정의 정신을 계승한 해상 경계선이다. 1992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와 불가침부속합의서는 ‘해상 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의 해상 관할구역을 존중하고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쌍방의 해상관할구역이란 NLL을 기준으로 한 구역이다. 1953~1973년까지 북한은 NLL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를 준수했다. 묵시적 동의로서 국제관습법적 지위를 얻은 셈이다. 북한의 거듭된 NLL 무력화 시도에도 우리 해군과 해병대는 서북도서와 NLL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NLL 대신 서해 경비계선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999년 서해 해상경계선을 선포한 이후 그 형태도 바뀌었다. 2000년 서해 5개 섬 통항질서를 공표, NLL 이남 해역에 대한 통제권을 선포했으나, 북한 군함은 NLL 이남으로 내려오지 못한 채 우리 해군에 의해 번번이 격퇴됐다. 북한해군의 실제 활동 범위인 군사수역도 NLL 이북에 있다. 법적 근거가 미약하고 실효적 지배권도 행사하지 못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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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도에서 해병대 서북도서방위사령부 주관으로 지난해 9월 실시된 서북도서방어훈련에서 해병대 6여단 장병들이 적 침투상황을 가정해 훈련하며 상륙돌격장갑차에서 하차해 이동하고 있다. 백령도=연합뉴스 |
하지만 북한의 NLL 인정보다 중요한 것은 NLL과 서북도서 통제에 대한 법적 근거와 실효적 지배권이다. 북한이 부당통신을 거듭하고 남북 회담에서 NLL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NLL 일대에서 활동하는 우리 해군과 해병대를 격퇴할 힘은 없다. 국제법이나 남북 협약도 NLL을 인정하고 있다. 법의 논리와 군사력에서 북한보다 우위에 있는 우리측이 북한의 NLL 인정에 연연할 이유는 없다. 북한의 NLL 인정 논란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 그대로 ‘인정하면 좋고 부정해도 그만’인 이유다.
북한이 인정하든 부정하든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어 남북이 새로운 해상경계선 획정에 합의할 때까지 NLL은 실질적인 남북 해상경계선이다. 서해와 동해에 완충수역이 설정되어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 해군과 해병대가 NLL을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NLL을 넘보지 못하는 이유다. 북한이 NLL 이남으로 내려오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NLL 인정이다.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은 약자의 인정을 갈망하지 않는다. 힘을 가지고도 북한의 인정에 연연하는 것은 약자의 모습일 뿐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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