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있었던 비화 접할 수 있어 큰 도움” “시체가 들어오면 우선 수사관과 인터뷰를 합니다. 이후 유족들의 말까지 귀담아듣고 나서 부검을 진행하죠. 일반적인 부검은 턱 끝부터 아랫배까지 일자로 가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어 흉강과 복강 내 장기를 적출해 무게를 잽니다. 혈액이나 위 내용물도 채취합니다. 머리의 경우 귀 뒤로 두피를 절개해 뒤집어 상처를 확인합니다. 목은 제일 나중에 합니다.”
지난 23일 오후 3시40분. 40평쯤 되어 보이는 공간에 30여명의 방문객이 한 남자의 설명에 바짝 주의를 기울였다. 설명 끝을 놓칠세라 질문들이 쏟아졌다. “여러 구의 시체를 동시에 부검할 때도 있나요?” “어떤 부검이 가장 힘드나요?” “중독이나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는 어떻게 부검하나요?”
강원도 원주에 위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의 중앙법의학센터 일반부검실이다. 설명과 답변을 이어가는 남자는 국과수 중앙법의학센터 구형남 보건연구관, 그의 말을 경청하는 사람들은 CJ ENM의 ‘오펜’ 2기 작가(드라마 작가 19명, 영화 작가 9명)들이다. ‘오펜’은 CJ ENM의 사회공헌사업으로, 드라마·영화 작가와 음악 작곡가를 양성하는 교육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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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 ‘오펜’의 드라마·영화 작가들이 강원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 부검실에서 연구원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들은 이날 국과수 현장학습을 통해 부검법, 심리조사 등 다양한 범죄 수사기법과 실제 사례 등을 보고 들었다. CJ ENM 제공 |
부검실 한쪽에는 스테인리스로 된 테이블이 3개 놓여 있다. 테이블 옆에는 3개의 싱크대가, 싱크대에는 2개의 수도꼭지와 20여㎝ 길이의 관 한 개가 달려 있다. 모두 합쳐 ‘부검대’라고 불렀다. 천장에는 3대의 카메라가 달려 있다. 부검대 맞은편 벽은 통유리로 돼 있다. 형사나 검사 등이 부검을 참관하는 장소다.
“수도꼭지 하나는 시체를 닦을 때, 다른 하나는 부검의가 자신의 얼굴을 씻거나 부검실 바닥을 청소할 때 사용합니다. 가운데 관은 시체에서 혈액을 뽑아내는 기구입니다. 천장 카메라는 부검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고, 영상을 따로 보관하지는 않습니다.”

부검실은 깨끗하고 밝았지만 왠지 스산한 느낌이다. 작가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부검 절차나 시체 상태를 설명할 때에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냈다.
“부검할 때 예상외로 피가 많이 튑니다. 사방으로. 시체의 상태도 다양합니다. 익사해서 물에 부풀어오른 시체나 죽은 지 오래돼 부패된 시체, 심지어 구더기 등 벌레들이 살을 파먹고 있는 시체 등…. 반면 ‘신선한’(죽은 지 얼마 안 지난) 시체가 오기도 합니다. 그날은 무척 운이 좋은 날이라고 서로 이야기하죠. 부검하기가 훨씬 더 수월하거든요.”
작가들은 부검실뿐만 아니라 DNA보관실, DNA형 판독실, 디지털 포렌식 실험실 등을 방문했다. 법최면검사실 등 법심리과 관련 시설도 견학할 예정이었으나 취소됐다. 국과수 관계자는 “장애인 집단 성폭행 관련 피의자들을 심리조사 중이어서 부득이하게 일정을 변경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들은 이번 견학이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영화 시나리오 ‘악마를 만드는 사람들’을 쓰고 있는 문상휘 작가는 “마침 범죄 스릴러 장르를 쓰는 중인데, 실제 있었던 다양한 비화를 들을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는 데 참고가 많이 될 것 같다”며 “오펜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연락해 다시 찾아올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tvN ‘드라마스테이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는 김도연 작가(‘각색은 이미 시작됐다’)는 “이번에 준비한 대본이 로맨스 장르여서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나중에 참고할 만한 것들을 많이 챙겨놨다”고 말했다.
오펜은 다음달에도 견학을 진행한다. 현재 궁궐과 종합병원, 특급호텔 등의 방문일정을 조율 중이다.
원주=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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