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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다한 ‘민중의 지팡이’… 감동의 명예퇴직 [밀착취재]

입력 : 2018-10-25 19:25:11 수정 : 2018-10-25 23: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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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署 김범일 경감 23년 경찰 생활 마침표 / 3년간 질병휴직… 업무 복귀 못해 / 동료들 박수 속 감동의 명예퇴임 / 경찰, 특별승진·청장 표창장 수여 / 아내, 참수리재단에 2000만원 기부 /“남편처럼 사고 당한 경찰 관심을” 25일 서울영등포경찰서 강당. 경찰관 정복을 입은 남자가 휠체어를 타고 연단에 등장했다. 강당을 가득 채운 참석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동료 경찰관이 미는 휠체어에 앉은 그의 표정은 무뚝뚝했다. 얼굴에 감정 표현조차 마음대로 지을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러웠을지 모른다. 동료들의 박수가 쏟아졌을 때 감격에 겨워 울먹이는 표정이 비쳤다.

이날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제73주년 ‘경찰의날’ 기념식이 화려하게 열린 시간에 영등포서 강당에선 한 경찰관의 조촐한 퇴임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경감 김범일(51). 1995년 순경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가 만 23년간의 경찰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었다. 새파란 20대 청년은 이제 백발이 뒤섞인 중년이 됐다. 하지만 그는 가슴 벅찰 법도 한 날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왜 그랬을까.
김범일(가운데) 경감과 가족, 동료들이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경찰서 강당에서 열린 명예퇴임행사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제공
영등포서 교통과에 근무하던 2015년 1월23일. 김 경감은 영등포구 여의도동 당산철교 근처 도로에서 교통사고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2차로와 3차로를 오가며 분주히 사고현장을 수습하던 그는 1차로에서 눈길에 미끄러져 내려오는 차량을 미처 보지 못했다. 온몸이 부서지고 뇌출혈이 일어났다. 의식을 찾지 못하고 병원 중환자실 신세를 진 지 수개월. 희망조차 사라지려던 어느 날 기적처럼 의식을 되찾았다. 하지만 여생을 휠체어에 의지해 살아야 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정상적인 의사소통도 어려워졌다.

결국 3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공무상 질병휴직 상태로 3년 이상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퇴직 처리되는 국가공무원법 때문이다. 평소 온화한 성품으로 업무에 애착이 많았던 김 경감. 동료들은 그런 그와 함께 근무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영등포서 경찰 300여명은 이날 그를 위해 특별승진을 겸한 명예퇴임식을 열고 경찰청장 표창을 수여했다.

행사에서 김 경감의 아내 김미옥(47)씨는 지난해 수상한 ‘제6회 영예로운 제복상’ 상금 1500만원 등 2000만원 기부증서를 ‘참수리 사랑재단’에 전달했다. 참수리 사랑재단은 경찰관과 소방관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 사회질서를 지키다가 숨지거나 다친 공무원과 시민을 지원할 목적으로 2007년 설립됐다. 미옥씨는 “남편처럼 공무 중 사고를 당하는 경찰이 많다”며 “적은 금액이지만 뜻 깊게 쓰여 국민이 안타까운 사고를 겪는 경찰관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경감의 정복은 이날 아침 부인이 손수 입혔다고 한다. “정복을 입으면 불편하다”는 남편의 투정을 다신 못 들을 것이란 생각에 단추를 채우는 내내 눈물이 났단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영상 격려사에서 “영등포경찰서 근무 시절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항상 궂은일에 앞장서던 김 경감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위로했다. 경찰은 김 경감을 간호해온 부인에게도 경찰청장 감사장을 전달했다.

한 경찰관은 “지난 18일에도 경남 김해중부경찰서의 이상무 경위가 교통사고를 처리하던 중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며 “아무리 대비해도 위험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이다 보니 동료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종종 접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범인을 검거하거나 교통사고를 처리하다 다치는 일이 많은 경찰들이 재활에 집중할 수 있는 전문병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영등포서 동료들은 김 경감을 위해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했다. 이어 도열한 동료들 사이로 김 경감이 가로지르며 정문을 나서면서 퇴임식도 막을 내렸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김 경감의 눈망울에 가을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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