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제73주년 ‘경찰의날’ 기념식이 화려하게 열린 시간에 영등포서 강당에선 한 경찰관의 조촐한 퇴임식이 열렸다. 주인공은 경감 김범일(51). 1995년 순경으로 첫발을 내디딘 그가 만 23년간의 경찰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었다. 새파란 20대 청년은 이제 백발이 뒤섞인 중년이 됐다. 하지만 그는 가슴 벅찰 법도 한 날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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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일(가운데) 경감과 가족, 동료들이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경찰서 강당에서 열린 명예퇴임행사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영등포경찰서 제공 |
결국 3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명예퇴직을 결심했다. 공무상 질병휴직 상태로 3년 이상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퇴직 처리되는 국가공무원법 때문이다. 평소 온화한 성품으로 업무에 애착이 많았던 김 경감. 동료들은 그런 그와 함께 근무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영등포서 경찰 300여명은 이날 그를 위해 특별승진을 겸한 명예퇴임식을 열고 경찰청장 표창을 수여했다.
행사에서 김 경감의 아내 김미옥(47)씨는 지난해 수상한 ‘제6회 영예로운 제복상’ 상금 1500만원 등 2000만원 기부증서를 ‘참수리 사랑재단’에 전달했다. 참수리 사랑재단은 경찰관과 소방관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 사회질서를 지키다가 숨지거나 다친 공무원과 시민을 지원할 목적으로 2007년 설립됐다. 미옥씨는 “남편처럼 공무 중 사고를 당하는 경찰이 많다”며 “적은 금액이지만 뜻 깊게 쓰여 국민이 안타까운 사고를 겪는 경찰관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경감의 정복은 이날 아침 부인이 손수 입혔다고 한다. “정복을 입으면 불편하다”는 남편의 투정을 다신 못 들을 것이란 생각에 단추를 채우는 내내 눈물이 났단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영상 격려사에서 “영등포경찰서 근무 시절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항상 궂은일에 앞장서던 김 경감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위로했다. 경찰은 김 경감을 간호해온 부인에게도 경찰청장 감사장을 전달했다.
한 경찰관은 “지난 18일에도 경남 김해중부경찰서의 이상무 경위가 교통사고를 처리하던 중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며 “아무리 대비해도 위험에 자주 노출되는 직업이다 보니 동료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을 종종 접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범인을 검거하거나 교통사고를 처리하다 다치는 일이 많은 경찰들이 재활에 집중할 수 있는 전문병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영등포서 동료들은 김 경감을 위해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했다. 이어 도열한 동료들 사이로 김 경감이 가로지르며 정문을 나서면서 퇴임식도 막을 내렸다. 휠체어에 몸을 맡긴 김 경감의 눈망울에 가을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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