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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타워] 전인지, 악플 그리고 기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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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21 21:13:05 수정 : 2018-10-21 21: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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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의 LPGA 우승 회견장서/“악플에 많은 상처 받았다” 고백/ 선수·연예인·일반인 모두 노출/ 익명의 그늘서 한 사람 인생 망쳐 “너무 무서웠어요. 여자로서 참기 힘든 속상한 말을 듣고 가슴에 콕 박혀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더군요.”

지난 14일 인천 스카이72 골프클럽 오션코스(파72)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 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2년1개월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전인지(24·KB금융그룹). 하지만 기자회견장에 나온 그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이어 그의 입에서는 뜻밖의 얘기가 흘러 나왔다. 그동안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악플에 시달렸다는 얘기였다. 

최현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전인지는 2015년 LPGA 메이저 대회 US 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한·미·일 메이저를 모두 제패했다. 또 2016년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역대 메이저 최저타수 기록을 세우며 우승할 정도로 한국을 대표하는 골프선수인 만큼 인기가 매우 높다. 하지만 경기력 때문만은 아니다. ‘플라잉 덤보’가 별명일 정도로 늘 미소를 잃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모습을 보여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별명과 같은 팬클럽 플라잉 덤보 회원 수만 9500명이 넘을 정도다. 2016년 리우올림픽 때 그를 응원하기 위해 브라질 리우까지 날아갈 정도로 극성팬도 많다. 이처럼 많은 인기를 거느린 스타 골퍼이기에 그가 악플에 시달렸다는 고백은 다소 충격이다. 뿐만 아니다 전인지는 2년 동안 우승 문턱에서 번번이 미끄러지자 지난 4월 심기일전한다는 의미로 트레이드 마크이던 긴 생머리를 평소 해보고 싶던 스타일인 커트 머리로 잘랐다. 악플러들은 이를 두고도 ‘남자친구와 결별했다’, ‘파혼했다’, ‘부모님이 강제로 잘랐다’는 등의 근거없는 악플을 쏟아냈다. 전인지는 “저한테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져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커트했을 뿐인데 안 좋은 루머가 오르내려 속상했고 저한테 작지 않았다”며 많은 상처를 받았음을 털어놓았다.

운동 선수뿐 아니라 연예인들도 악플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린다. 얼마 전 한 여배우는 끊임없는 악플에 자살하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데뷔 이래 끊임없는 악플과 조롱에 시달린 다른 여배우는 ‘자살이나 할 것이지’라는 악플이 마음에 꽂혀 결코 떠나지 않는다고 고충을 토로했고 결국 지난 3월 “그동안 고통속에서 너무 힘들었고 앞으로 평범한 삶을 살겠다”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남기고 결국 은퇴했다.

사실 악플에 가장 노출되는 직업을 꼽으라면 기자다. 악플러들이 정치적 견해가 다르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 반대로 싫어하는 선수 관련 기사가 맘에 안 들면 빼먹지 않고 적는 단어가 있다. 기자를 ‘기레기(기자 쓰레기의 줄임말)’로 호칭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다. 기레기는 양반이다. ‘기레기 새끼’라는 욕설도 비일비재하다. 실제 얼마 전 기자가 쓴 박성현 관련 기사가 포털 메인에 오르자 ‘기자 쉒이 개념이 없네’, ‘기레기야 ㅉㅉ 먹고 살기 힘든가 보네ㅉㅉ’, ‘골프나 치면서 이런 기사 쓰냐’는 식의 댓글이 쏟아졌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다 보니 무반응보다는 낫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 한다. 하지만 기자도 사람이라 여전히 씁쓸하고 어떤 댓글은 가슴을 후벼파며 아리게 만들기도 한다. 기자도 이 정도니 전인지는 오죽 했으랴. 전인지 역시 “밑에서 움직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악플은 전성기의 선수가 골프를 포기하게 만들 뻔했다.

악플 폐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인천의 한 여중생이 고층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SNS에 올린 댓글 폭력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나 경찰이 수사 중이다. 전인지의 악플 기사가 나가자 네티즌들은 “인터넷 실명제 꼭 필요하다. 안 그러면 나라 망한다”, “끝까지 추적해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며 악플러들을 성토하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인터넷 댓글 실명제는 찬반이 팽팽하다. 하지만 악플 폐해가 끊이지 않으니 극단적인 악플을 필터링하거나 상습 악플러 아이디 차단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도 악플러들은 어디선가 누군가를 헐뜯고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기자도 많이 두렵다. 그들은 이 칼럼에 또 어떤 악플을 쏟아낼까.

최현태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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