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복궁에서는 하루 두 번 수문장 교대식을 거행한다. 이때 깃발을 든 기수와 함께 멋진 전통의상을 입고 새의 꽁지깃으로 만든 작우(雀羽)가 꽂힌 갓을 쓰고 있는 악단이 등장하니 바로 전통 궁중악대인 취타대이다. 옛날에는 왕의 거동이나 행차, 군대의 행진이나 개선에 쓰였는데, 지금은 국가적 행사, 군 행사 등에서 주로 볼 수 있다.
취타대는 관악기와 타악기가 중심이 된 악단을 의미한다. 주로 나발, 나각, 태평소 같은 관악기와 장구, 자바라, 징, 용고, 운라 등의 타악기가 사용된다. 취타대의 연주자 중에는 커다란 고둥을 들고 부는 나각수(螺角手)가 있는데, 요즘 이들의 악기인 나각에 쓰이는 생물종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종이 아닌 장군나팔고둥으로, 남쪽의 인도·서태평양 아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종이다.
왜 전통 군악대에 외국 종이 사용되고 있을까. 오래전 취타대에서는 우리나라의 어떤 생물을 사용했을까. 고둥류로 만든 나각의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려시대의 것으로, 군사인 취라군(吹螺軍)이 행진을 위해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여러 궁중행사, 왕족의 출입과 행차, 군대 훈련을 위한 음악에 나각이 사용됐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사용된 나각은 분명 우리나라 바다에 서식하고 있는 나팔고둥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팔고둥은 패각의 길이가 30㎝에 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복족류 연체동물로, 남해안 인근과 제주도 수심 10~200m의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종이다. 나팔고둥은 현재 식용과 관상 목적의 남획으로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해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중요한 국가행사에서 사용되는 악기인 만큼 앞으로 정확한 고증을 거쳐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우리 생물로 제작된 나각을 사용한 취타대를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길현종·국립생물자원관 동물자원과 환경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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