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용금 120만원, 단이자 연 4할, 차용일 1976년 3월23일, 채권자 김일성(金日成), 채무자 박정희(朴正熙).’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이 북한 김일성 주석한테 120만원을 빌리며 차용증을 써줬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정부와 회사, 그리고 사회를 향한 불만이 가득했던 이씨는 한 달 뒤 이 가짜 차용증서를 들고 직장상사 김모씨한테 갔다. 차용증을 보고 당황해하는 김씨를 향해 이씨는 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말을 그야말로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박정희가 이후락(전 중앙정보부장)을 죽이려고 했다. 중앙정보부 요원이 이후락씨 집을 포위하여 죽이려고 했으나 이후락씨가 기미를 먼저 알고 피했다. 성남시가 서울시로 편입된 것을 반대하는 데모(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을 지칭한 듯)에 참여하고 서울시장 승용차를 내가 불질렀다.”
김씨 신고를 받고 출동한 수사당국 요원에 검거된 이씨는 대통령긴급조치 제9호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75년 발령된 긴급조치 9호는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했다. 1심 재판부인 춘천지법 원주지원은 1976년 9월 이씨의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이후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은 1977년 1월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으로 형량을 올렸고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씨는 복역을 마치고 풀려났으나 건강 악화로 정상적 사회생활이 힘들었다. 결국 그는 전두환정부 시절인 1986년 33세를 일기로 사망했고 이 사건은 그렇게 잊혔다.
문재인정부 들어 대검찰청 공안부가 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차원에서 본인이 사망 등 이유로 재심을 청구하지 못한 경우까지 일괄해서 재심을 청구하면서 이씨는 유죄 확정 41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5일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이씨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옛 유신헌법 53조에 규정된 긴급조치권에 근거해 발령된 긴급조치 9호는 그 발동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목적상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함으로써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유신헌법은 물론 현행 헌법에 비춰보더라도 위헌·무효임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적용 법령이 당초부터 위헌·무효이므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며 “유죄의 원심 판결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