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중국. 톈안먼 사태가 발생했고, 냉전 종식을 앞둔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역사적으로 암울한 시대에는 늘 자성을 촉구하는 저항의 목소리가 존재했다.
우한 후베이미술학원 재학생이던 마류밍(馬六明)이 자신의 맨몸을 비닐 랩으로 감는 생에 첫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도 이 시기다. 이후 베이징 둥춘(東村)으로 건너온 마류밍은 여장을 한 체 나체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행위예술을 이어나갔다. 당시 중국 사회는 보수적이었고 행위예술이라는 장르는 생소했다. 마류밍은 온몸으로 신체 해방과 표현의 자유를 외치다 당국에 체포돼 구금되기도 했다.
![]() |
마류밍 작가가 이번 개인전의 대표작인 ‘No. 1’(2016)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행위예술가에서 회화로 회귀한 작가는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고 ‘나’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고재 제공 |
그랬던 마류밍은 2000년대 들어 회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원래 자신의 전공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또 다른 자아인 ‘펀-마류밍’과 영원히 작별한 것은 아니다. 마류밍의 회화는 작가 자신의 인생과 철학, 진실한 표현의 축적이다. 그는 지난 퍼포먼스의 이미지들을 화폭에 불러오며 과거의 신념을 굳히고, 그 정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쌓아가고 있다.
17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시작된 마류밍의 개인전 ‘행위의 축적들’에서는 지난 4년간의 작품 19점을 선보인다. 특히 나이프를 이용해 화면에 수많은 흔적과 균열을 만들어 낸 회화가 눈에 띈다.
![]() |
마류밍 작가가 스무살 때 처음 선보인 퍼포먼스를 표현한 작품. |
대표작인 ‘No. 1’(2016)도 같은 기법을 응용했다. 화폭 전면에 불의 이미지가 나타나는데, 균열로 가득한 가운데 꺼질 듯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의 형상이 강인한 인상을 준다. 그 불길 너머로 흐릿하게 나타나는 발 벗은 다리는 열정과 고통을 가까이해온 작가 자신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 ‘판-마류밍’ 퍼포먼스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작품도 다수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첫 퍼포먼스를 그림으로 나타낸 ‘states No. 1’은 단상 위에서 비닐로 감싼 나체의 몸을 웅크린 채 괴로움을 토로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작품 ‘No. 1’(2015∼2017)은 길게 찢은 신문지를 온몸에 두르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서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단순한 색과 붓질로 표현했음에도 표면의 균열과 갈라짐이 형태와 잘 어우러져 강렬한 이미지를 풍긴다.
본관 안쪽에서는 마류밍 특유의 누화법(漏?法)을 이용해 그린 회화 8점도 만나볼 수 있다. 누화법은 성긴 캔버스의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 앞으로 새어 나오게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으로 완성한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전신이 아닌 신체 일부만 보인다. 마류밍은 “자신이 퍼포먼스를 마치면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오는 관객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며 “일부만 표현한 것은 한 부분만으로도 인물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학고재는 “한 시대에 큰 흔적을 남긴 작가 마류밍의 작품세계를 되새기고 최근 행보를 살펴보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며 “지나간 격정의 세월에 대한 추억과 애상이 녹아든 캔버스 화면 아래, 변함없이 강인한 작가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9일까지 계속된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