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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정의 세월을 산 행위예술가의 추억과 애상

입력 : 2018-08-24 03:00:00 수정 : 2018-08-23 20: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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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로 돌아온 마류밍 개인전 ‘행위의 축적들’ “이전의 행위예술이 국가나 집단에 대한 저항의식이었다면, 회화로 회귀한 것은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1989년 중국. 톈안먼 사태가 발생했고, 냉전 종식을 앞둔 사회는 혼란스러웠다. 역사적으로 암울한 시대에는 늘 자성을 촉구하는 저항의 목소리가 존재했다.

우한 후베이미술학원 재학생이던 마류밍(馬六明)이 자신의 맨몸을 비닐 랩으로 감는 생에 첫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도 이 시기다. 이후 베이징 둥춘(東村)으로 건너온 마류밍은 여장을 한 체 나체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행위예술을 이어나갔다. 당시 중국 사회는 보수적이었고 행위예술이라는 장르는 생소했다. 마류밍은 온몸으로 신체 해방과 표현의 자유를 외치다 당국에 체포돼 구금되기도 했다.

마류밍 작가가 이번 개인전의 대표작인 ‘No. 1’(2016)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중국을 대표하는 행위예술가에서 회화로 회귀한 작가는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고 ‘나’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고재 제공
그 같은 퍼포먼스는 젊은 나이의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중국에도 저항 정신을 표출하는 행위예술가가 있다는 사실이 서양 미술계엔 신선한 충격이었다. 영국의 듀오 아티스트 길버트와 조지가 베이징을 방문해 마류밍과 함께 작업하면서 그는 중국 밖에 알려지게 됐다. 마류밍은 1993년부터 10여년 간 미국, 유럽, 아시아 전역을 순회하며 퍼포먼스를 벌였다. ‘펀-마류밍(芬-馬六明) 만리장성을 걷다’(1998), ‘리옹에서 펀-마류밍’(2001), ‘몬트리올에서 펀-마류밍’(2001) 등 연작으로 그는 동시대 미술사에 자신의 이름을 확고히 새겼다.

그랬던 마류밍은 2000년대 들어 회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원래 자신의 전공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그의 또 다른 자아인 ‘펀-마류밍’과 영원히 작별한 것은 아니다. 마류밍의 회화는 작가 자신의 인생과 철학, 진실한 표현의 축적이다. 그는 지난 퍼포먼스의 이미지들을 화폭에 불러오며 과거의 신념을 굳히고, 그 정신을 새로운 방식으로 쌓아가고 있다.

17일 서울 종로구 학고재에서 시작된 마류밍의 개인전 ‘행위의 축적들’에서는 지난 4년간의 작품 19점을 선보인다. 특히 나이프를 이용해 화면에 수많은 흔적과 균열을 만들어 낸 회화가 눈에 띈다.

마류밍 작가가 스무살 때 처음 선보인 퍼포먼스를 표현한 작품.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이 그렇다. 검은 바탕에 앙상한 흰 나무가 타오르듯 강한 에너지를 뿜는다. 단순해 보이는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사실 인내가 필요하다. 먼저 나이프를 이용해 흰색 물감으로 나무 모양을 거칠게 작업한 뒤 한 달을 말려, 그 위에 다시 두껍고 평평하게 검은색 물감을 덮는다. 시간이 지나 유화가 마르고 갈라지면서 아래 있던 흰색이 드러나게 된다. 갈라지고 찢긴 흔적이 작가가 경험한 고통을 내포한다. 어떻게 마르고 어떤 모습으로 갈라질지는 작가조차도 알 수 없다. 오랜 시간에 걸쳐 시행착오를 겪으며 빚어온 결과다.

대표작인 ‘No. 1’(2016)도 같은 기법을 응용했다. 화폭 전면에 불의 이미지가 나타나는데, 균열로 가득한 가운데 꺼질 듯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의 형상이 강인한 인상을 준다. 그 불길 너머로 흐릿하게 나타나는 발 벗은 다리는 열정과 고통을 가까이해온 작가 자신처럼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는 과거 ‘판-마류밍’ 퍼포먼스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작품도 다수 만날 수 있다. 자신의 첫 퍼포먼스를 그림으로 나타낸 ‘states No. 1’은 단상 위에서 비닐로 감싼 나체의 몸을 웅크린 채 괴로움을 토로하는 모습이다. 또 다른 작품 ‘No. 1’(2015∼2017)은 길게 찢은 신문지를 온몸에 두르고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서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화폭에 옮겼다. 단순한 색과 붓질로 표현했음에도 표면의 균열과 갈라짐이 형태와 잘 어우러져 강렬한 이미지를 풍긴다.

본관 안쪽에서는 마류밍 특유의 누화법(漏?法)을 이용해 그린 회화 8점도 만나볼 수 있다. 누화법은 성긴 캔버스의 뒤에서 물감을 밀어내 앞으로 새어 나오게 표현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으로 완성한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전신이 아닌 신체 일부만 보인다. 마류밍은 “자신이 퍼포먼스를 마치면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오는 관객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며 “일부만 표현한 것은 한 부분만으로도 인물의 특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학고재는 “한 시대에 큰 흔적을 남긴 작가 마류밍의 작품세계를 되새기고 최근 행보를 살펴보고자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며 “지나간 격정의 세월에 대한 추억과 애상이 녹아든 캔버스 화면 아래, 변함없이 강인한 작가의 정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다음달 19일까지 계속된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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