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씨는 처음엔 뜨끔했다. 이씨는 “업소명과 지역, 시기까지 구체적으로 얘기하니 처음엔 뜨끔한게 사실”이라면서 “통화를 응대하면서 동시에 포털사이트 등을 검색해보니 새롭게 등장한 보이스피싱 수법이더라”고 말했다. 보이스피싱임에 안도한 이씨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씨는 “지금 동원 가능한 현금이 200만원뿐이다”라고 말하자 통화 상대자는 궁색하게도 “성매매 여성 오빠가 최소한 반은 받아야겠다고 한다. 우선 200만원 입금하고, 나머지 50만원은 나중에 다시 입금하라”고 대답했다. 이씨는 “성매매 업소를 자주 다니는 남성들이라면 진짜 속을지도 모를 정도로 내 이름뿐만 아니라 직장명까지 언급하더라”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성매매 사실을 추궁하며 폭로하겠다며 협박하는 방법 등으로 돈을 갈취하는 신종 보이스피싱이 등장했다. 성매매 정보를 음성적으로 주고받는 몇몇 커뮤니티 게시글을 살펴보면, 이씨와 비슷한 방식으로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하소연이 눈에 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해킹 등으로 확보한 전화번호를 통해 상대 남성의 SNS를 찾아내 아내나 자녀 이름, 직장까지 들먹이며 몰아붙인다.

보이스피싱은 한때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로 희화화되기도 했다. 이를 보며 사람들은 ‘대체 왜 보이스피싱을 당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2006년 보이스피싱 범죄가 처음 등장한 이후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다. 200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총 16만건이 발생했고, 피해액 규모는 1조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경찰청이 발표한 보이스피싱 현황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접수된 보이스피싱 피해는 1만6338건에 달하며 피해액수는 1796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1만626건, 1051억원)에 비해 발생건수는 54%, 피해액으로는 71%가 증가한 수치다. 경찰은 올해 상반기 동안 보이스피싱 관련 범죄 1만5135건을 적발해 1만9157명을 검거했다.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검거 건수는 38%, 검거 인원은 32% 증가했다.
이씨의 사례처럼 성매매 등을 활용한 신종 보이스피싱 수법도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최근 가장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수법은 ‘대출사기’다. 경기악화로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제1금융권 이용이 힘들어 고금리의 제2금융권 대출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서민들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대출사기 수법이 보이스피싱의 ‘대세’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경찰·검찰·금융감독원을 사칭해 예금을 보호해주겠다거나 불법자금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접근하는 '기관사칭' 수법도 올 상반기 3179건 발생했다. 대출사기형보다 발생은 적지만 건당 피해액은 대출사기형(900만원)보다 약 2배 많은 2000만원이다. 2265건(71%)이 검사를 사칭한 수법이었고, 주로 온라인 계좌이체를 통해 피해가 발생했다. 대출사기형 보이스피싱은 20·30대 여성들이 큰 피해를 봤다. 3179건중 20대 여성에서 1549건, 30대 여성에서 527건이 발생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원들은 은행원이 인출용도를 질문할 것을 대비해 "은행원도 범죄에 연루돼있으니 여행자금, 유학자금, 사업자금이라고 둘러대라"고 지시한다고 경찰은 전했다. 또 금융기관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라고 한 뒤 악성 코드에 감염시켜 진짜 은행에 전화를 걸더라도 보이스피싱 사기범에게 연결되도록 하는 수법도 사용했다. 가짜 검찰청 홈페이지에 접속하도록 한 뒤 수사대상자인 것처럼 속이기도 했다.
경찰은 범인이 검거되더라도 피해 보상이 어려우므로 범죄수법을 숙지하고 피해를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검찰, 금감원은 어떤 경우에도 예금보호, 범죄수사를 이유로 계좌이체나 현금인출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돈을 송금했다면 즉시 112신고를 통해 금융기관에 지급정지를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보이스피싱 전담수사부서의 인력을 증원하고 국제 공조를 통해 범죄 조직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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