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 곳곳에 당선·감사 선거 현수막 '눈살' / 설치 과정에서 노끈과 철사 사용 / 현수막만 제거…노끈·철사 찌꺼기는 그대로 남아 ‘흉물로 방치’ / 붙이는 사람 따로, 떼는 사람 따로 / 현수막 걸린 가로수마다 물리적 충격을 받아 / 깊게 상처 난 가로수가 수두룩 / 상처 난 가로수는 생육은 나빠져 / 결국, 고사하면서 세금을 들여 다시 심어야 하는 악순환 / 노끈에는 검은 때가 잔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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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로수에 선거 현수막은 제거된 채 묶었던 노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선거 전 경쟁적으로 설치한 현수막이 선거 후에는 그대로 방치돼 도심 흉물로 전락했다. |
“선거 현수막, 그만 보고 싶네요. 지긋지긋합니다. 짜증도 납니다. 눈에 띄는 곳마다 선거 현수막이 있어서 막말로 노이로제 걸릴 것 같아요. 다음 선거를 미리 준비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참 이해가 안 됩니다.”
삭막한 도시에서 힐링을 선사하는 가로수가 현수막에 사용된 노끈과 철사로 죽어가고 있다.
6·13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곳곳을 다니며 살펴보았다. 큰 교차로마다 당선, 낙선사례 후보들의 각종 선거 현수막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26일까지 당선, 낙선사례 현수막을 정당 또는 본인 명의로 해당 선거구 내 읍·면·동마다 한 개씩 설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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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봇대에 선거 현수막은 제거된 채 묶었던 노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선거 전 경쟁적으로 설치한 현수막이 선거 후에는 그대로 방치돼 도심 흉물로 전락했다. |
선거철만 되면 현수막은 도시 미관을 해치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가로등이나 가로수 높은 곳에 설치된 선거 현수막은 이미지 효과를 극대화 노려 야광 색 사용해 눈에 피로 및 시선 분산을 시켜 도시 미관을 크게 해치고 교통사고 위험까지 주고 있다. 이번 선거부터 선거구 내 읍·면·동 한 개씩으로 제한됐던 후보 현수막이 법 개정으로 두 개로 늘어 전국에 무려 13만 개에 달한다. 선거 전 경쟁적으로 설치한 현수막이 선거 후에는 그대로 방치돼 도심 흉물로 전락했다.
공직선거법상 이를 내걸었던 후보자 측이 철거해야 하지만,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관할 구청이 직접 제거하고 있다. 설치한 후보자 측이 선거 후 지체 없이 제거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법의 허술한 틈을 타 방치됐다.
현수막을 제거하는 비용도 지방 예. 빗발치는 민원에 지자체 소속 공무원들을 동원해 철거한다. 한 구청 관계자는 “선거 때만 되면 항의성 민원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구청에서 나가서 이를 철거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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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봇대에 선거 현수막은 제거된 채 묶었던 노끈은 그대로 남아 있다. 선거 전 경쟁적으로 설치한 현수막이 선거 후에는 그대로 방치돼 도심 흉물로 전락했다. |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롯가에서 꽁꽁 묶인 노끈을 풀고 끊고 너비만 10m가 넘는 현수막을 떼어 내 내는 것부터 쉽지 않다. 짧은 시간 내에 신속하게 제거하기도 쉽지 않다. 높은 위치에 묶여 있는 노끈과 철사는 더욱 제거하기도 힘들다. 손이 닿지 않는 높이에 걸린 현수막은 칼이 톱 같은 날카로운 특수장비로 신속하게 끊어내야 한다. 이 과정도 위험하지만, 보행자를 위로 현수막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가로수를 상태를 살펴보니 심각했다. 문제는 설치 과정에서 노끈이나 철사를 사용했다는 것. 가로수에는 현수막만 제거된 상태에서 그 흔적은 노끈과 철사는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오래전부터 방치된 노끈과 6·13지방선거 현수막이 노끈이 뒤섞여 방치돼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페이고 상처 난 가로수가 수두룩. 깊게 상처 난 가로수는 생육은 나빠지게 된다. 보기만 해도 흉측한 상처에 미관도 해치게 된다. 결국 고사하면서 가로수 기능도 못 하게 될 뿐만 아니라 세금을 들여 다시 심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회사원 김모(43·남)씨는 “단순하게 볼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라며 “홍보도 좋고, 후보자를 알려야 하지만, 설치했으면 깨끗하게 제거를 하는 것도 후보자의 도리다. 선거 끝났다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이 후보자의 진심인지 의문이 든다”고 이해 못 하는 표정을 지었다.
환경미화원 김 모씨 “가로수 상처만 보면 한숨만 나온다. 매일 보는 가로수에 상처가 늘어 갈 때마다 안타깝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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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가로수에 촘촘히 매달린 6·13지방선거 현수막. 이번 선거부터 선거구 내 읍·면·동 한 개씩으로 제한됐던 후보 현수막이 법 개정으로 두 개로 늘어 전국에 무려 13만 개에 달한다. |
제때 제거하지 않고 오래 내버려 두면 노끈·철사 등이 가로수 살에 파고들어 죽을 수 있다는 것. 선거법 개정으로 선거 현수막 늘면서 노끈이나 철사 등 각종 사용된 도구도 배로 늘어났다. 사용된 도구 노끈과 철사는 가로수에 묶어 둔 채 그대로 내버려 둬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문제는 허술한 법. 현행 공직선거법 제276조에는 "선거운동을 위해 선전물이나 시설물을 첩부·게시 또는 설치한 자는 선거일 후 지체 없이 이를 철거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후보자가 없다.
지자체가 공직선거법에 따라 후보자 측에 요구하고 있지만 이를 단속해야 할 지자체는 속앓이하고 있다. 현수막을 내건 후보와 단체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행정 절차가 복잡한 데다 규정 자체가 모호해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빗발치는 항의성 민원에 지자체에서 예산을 들여 제거할 수 밖에 없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후보자 측에서 철거하는 것이 맞다."라면서 "이번 선거부터 현수막이 늘어나 철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인원이 한계가 있고 항의성 민원이 늘어나 최대한 제거에 노력하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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