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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의 또 다른 주역 ‘아라가야 왕성’ 실체 첫 확인

입력 : 2018-06-07 21:43:37 수정 : 2018-06-07 21: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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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문화재연구소, 함안군 가야리 발굴조사 / 금관가야·대가야와 함께 중심세력 / 최대 높이 10m·폭 40m 토성 확인 / 백제 몽촌토성보다 2m이상 높아 / 토성 내부에서 통형기대·토기 등 / 최고위층 사용 추정 유물 출토 주목 “백사리 북쪽에 옛 나라의 유허(遺墟)가 있는데 주위 둘레가 1606척이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가야국의 도읍이라 한다.”

1587년 편찬된 조선시대 읍지 ‘함주지’(咸州誌)의 내용 중 일부다. 지금의 경남 함안군 가야리 일대에 대한 설명이다. 이곳에는 ‘남문외고분군’, ‘선왕고분군’, ‘신읍’(臣邑) 등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전하기도 한다. 이런 자료들을 근거로 일제강점기 이래 각종 조사에서 금관가야, 대가야와 함께 가야의 중심세력으로 한국 고대사의 한 주역으로 꼽히는 아라가야의 왕궁지로 추정됐다.

이 같은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는 아라가야 왕궁추정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돼 7일 현장설명회가 열렸다. 당대 가야권역에서는 최대 규모인 토성이 확인됐고, 5∼6세기 최고 지배층의 거주공간을 추정할 수 있는 유물들이 발굴되어 아라가야 왕성의 실체를 처음으로 확인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남 함안 가야리의 아라가야 왕성 추정지에 대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 결과 높이 8.5m, 폭 20∼40m의 당대 최대 규모의 토성이 확인됐다. 이만 한 규모의 토성은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막강한 정치권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높이 8.5m… 당대 최대 규모의 토성

아라가야는 5세기 고령 지역의 대가야를 중심으로 한 가야 연맹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신라와 동맹을 맺은 대가야가 굴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아라가야를 중심으로 뭉치는 연맹 국가들이 생겼다. 아라가야가 백제·신라·왜의 사신을 초빙하여 국제회의를 여는 등 세력을 과시하며 전성기를 구가한 건 5세기 중반∼6세기 중반이었다. 아라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의 쟁투 속에서 줄타기를 하며 나라를 이어갔으나 한강 유역에서 백제를 물리친 신라가 가야 지역에까지 영향력을 펼치면서 끝내 신라에 투항했다.

가야리 일대가 아라가야의 왕성일 것이라는 짐작은 문헌을 기초로 일찍부터 있었지만 왕성 추정지에 대한 발굴은 지난 4월 우연히 그 흔적이 드러나면서 처음으로 진행됐다.

발굴을 진행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토성의 높이는 확인된 것만 8.5m에 달한다. 발굴이 진행되지 않은 부분까지 합치면 10m 정도는 될 것이라는 연구소의 예상이다. 초기 백제의 도성 혹은 방어용 성으로 추정되는 몽촌토성(높이 6m)보다 2m 이상 높고,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가야 권역의 성산토성(4.1m), 순지리토성(4m)의 2배가 넘는 규모다. 토성의 상부 폭은 20∼40m였다.

토성을 축조하는 방식도 독특했다. 쌓은 흙이 밀려내려가지 않도록 나무기둥을 설치했으며 지반을 단단히 다지기 위해 나무를 태우면서 만들어진 목탄층이 확인됐다. 연구소 강동석 학예연구관은 “땅을 다지기 위해 나무를 태운 흔적이 발견된 다른 사례가 없다. 큰 공을 들여 토성을 만든 증거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석을 파서 조성한 긴 네모꼴의 수혈(사진 위)과 의례 공간에 주로 발굴되는 통형기대.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막강한 권력의 존재 보여주는 증거”

토성 내부에서는 방어시설인 목책과 함께 건물터, 구덩이 등이 발견됐다. 건물터는 현재로선 정확한 형태와 규모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고상건물지(기둥을 세워 높여 지은 건물 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암석을 파서 조성한 구덩이는 긴네모꼴로, 용도는 명확히 알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구덩이 안에서 부뚜막으로 추정되는 시설이 있고, 주로 고분 등 의례 공간에서 나오는 통형기대(筒形器臺·원통모양 그릇받침)가 출토돼 특수한 목적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붉은색의 연질토기가 나온 것도 주목된다. 강 연구관은 “이전의 가야 관련 유적 발굴은 대부분 고분을 대상으로 한 것이서 연질의 생활형토기가 드물었다”며 “발굴이 좀 더 진행되면 가야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소 측은 “이번에 확인된 토성은 대규모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정치권력의 존재를 보여 주는 증거다. 아라가야가 가야의 중심세력으로 활동하였던 정치·경제적 배경을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며 “최고지배층의 생활문화와 가양의 토목기술, 방어체계, 대내외 교섭 등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함안=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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