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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 반전 거듭 / 비핵화 발언 수위도 낮아져 / 국내정치적 상황 감안해 / 북한과 현실적 타협할 수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략은 오직 다음 트윗 전까지만 유효하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의심하던 트럼프가 응징 차원의 시리아 공습을 두고 오락가락하는 행태를 보인 걸 꼬집은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의 트위터에 “멋지고 새로운 스마트한 미사일이 날아갈 테니 러시아는 준비하라”는 글을 올린 지 하루 만에 “시리아를 언제 공격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매우 빠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슈피겔은 “미국의 대외정책이 예측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는 트럼프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이런 행보는 대외정책뿐만 아니라 통상문제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중국에 대한 고관세 부과 정책을 발표했다가 돌연 유보하고 다시 관세를 물리겠다고 뒤집는 등 입장을 여러 차례 바꿨다. 전통적인 동맹이나 우방국가에도 압박과 회유를 서슴지 않는다. 찰떡 궁합을 과시해온 일본의 철강과 알루미늄에도 관세 예외조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한국이나 일본 등 동맹국들을 포함한 통상교섭국들을 대상으로 자동차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원재연 논설위원
트럼프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준 건 지난달 북·미 정상회담 취소 사태다. 그는 세계적인 관심이 쏠린 회담을 불과 보름 남짓 앞두고 48시간 사이에 회담 취소와 번복을 거듭했다. 트럼프의 죽 끓 듯하는 변덕에 한반도 정세가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운명을 좌우할 중대사다. 동북아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북핵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 정부와는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회담을 걷어찼다가 다시 열겠다고 태도를 바꿨다. 명색이 세계 최강대국 지도자라는 사람이 손바닥 뒤집는 듯한 처신을 하니 “10대들의 연애 같다”(USA투데이)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트럼프의 이런 태도를 계산된 치밀한 전략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는 모든 것을 거래로 받아들인다. ‘사업가 트럼프’의 협상 기술과 리더십을 대통령이 된 뒤에도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를 옹호하는 이들은 그의 일관성 없고 예측 불가능한 태도가 상대방을 제압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비즈니스에서는 통할지 모르지만 정치나 외교 무대에서는 원칙이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일관성 없이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한다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 구상은 북한에 대한 완전한 비핵화를 일괄타결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었다. 북한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합의하고 초단기에 실질적 비핵화 조치와 검증을 마친다는 내용이다. 지난 1일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면담한 뒤에는 말이 달라졌다. 트럼프는 “북·미 정상회담은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고, 나는 12일에 무언가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리는 천천히 갈 수도 있다”고도 했다. CVID 원칙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해법’을 트럼프가 수용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트럼프는 역대 미국 대통령이 하지 못한 일을 해내고 싶어한다. 북핵 문제도 그 가운데 하나다. 북한 비핵화를 달성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현실이 녹록지 않자 한 발 물러선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초 구상대로 북한을 압박하자니 회담이 깨지겠고, 그렇다고 비핵화 문제에서 구체적 성과 없이 합의하자니 후폭풍이 걱정된다. 트럼프가 직면한 상황이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시간표가 나오고 장소도 정해졌다. 그 중심에는 트럼프가 있다. 그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고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는 뮬러 특검의 칼날도 피해야 한다. 협상과 원칙 고수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어떤 카드를 쓸지 모른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북한과의 적당한 합의로 트럼프가 협상의 공을 차지하고 우리는 ‘북핵 비용 청구서’를 받아드는 것이다. 역사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음이 가볍지 않은 이유다.

원재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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