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僧舞)
조 지 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조 지 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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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은희 |
달빛과 별빛이 교교한 한밤중, 대웅전 앞마당에서 여승이 춤을 추고 있다.
여승은 흰 저고리에 흰 장삼을 입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는 얇은 비단으로 만든 하얀 고깔을, 어깨에는 붉은 가사를 걸쳤으며 외씨버선을 신고 춤을 춘다. 여승은 미끄러지는 듯 발을 내딛다가 나는 듯 버선코를 하늘로 향해 사뿐히 접어 올리고 장삼자락도 하늘을 향해 길게 뻗는다.
달과 별, 오동나무와 귀뚜라미가 그녀의 까만 눈동자,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지는 눈물, 흩날리는 장삼 자락, 돌아설 듯 날아가는 발 디딤새를 보고 있다. 여승은 춤사위가 깊어지면서 출가 전 세상사의 번뇌를 떨쳐내고 마침내 하늘의 달과 별, 땅의 오동나무와 귀뚜라미를 품고 합장한다.
우리는 속세에 살면서 이 여승처럼 무수한 번뇌에 시달린다. 구상한 지 열한 달, 집필한 지 일곱 달, 조지훈 선생이 오랜 시간을 가슴에 품다 창작한 시 ‘승무’는 번뇌가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고이 접어서 나비처럼 날아가게 한다.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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