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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산의마음을여는시] 승무(僧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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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21 21:09:58 수정 : 2018-05-21 21: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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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지 훈
승무(僧舞)

조 지 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원은희


달빛과 별빛이 교교한 한밤중, 대웅전 앞마당에서 여승이 춤을 추고 있다.

여승은 흰 저고리에 흰 장삼을 입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는 얇은 비단으로 만든 하얀 고깔을, 어깨에는 붉은 가사를 걸쳤으며 외씨버선을 신고 춤을 춘다. 여승은 미끄러지는 듯 발을 내딛다가 나는 듯 버선코를 하늘로 향해 사뿐히 접어 올리고 장삼자락도 하늘을 향해 길게 뻗는다.

달과 별, 오동나무와 귀뚜라미가 그녀의 까만 눈동자,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지는 눈물, 흩날리는 장삼 자락, 돌아설 듯 날아가는 발 디딤새를 보고 있다. 여승은 춤사위가 깊어지면서 출가 전 세상사의 번뇌를 떨쳐내고 마침내 하늘의 달과 별, 땅의 오동나무와 귀뚜라미를 품고 합장한다.

우리는 속세에 살면서 이 여승처럼 무수한 번뇌에 시달린다. 구상한 지 열한 달, 집필한 지 일곱 달, 조지훈 선생이 오랜 시간을 가슴에 품다 창작한 시 ‘승무’는 번뇌가 가득한 우리의 마음을 고이 접어서 나비처럼 날아가게 한다.

박미산 시인·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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