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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똥군기'…상사는 소주병 폭행…사장 아들은 '폭언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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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07 11:01:00 수정 : 2018-05-08 15: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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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스토리-甲甲한 직장②-ⓐ] 직장 내 괴롭힘 백태
<편집자주>“회사 안은 전쟁터요, 회사 밖은 지옥이다.”

국가 및 사회의 민주주의는 크게 진전됐다는데, 우리들은 언제부턴가 이같은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전쟁 같은 삶’을 살게 된 것일까요.

원인 또는 이유를 찾아가자면, 우리들의 삶이 가장 많이 머무는 직장도 그 연루 혐의를 벗어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직장 앞에서 멈춰섰다는 지적도 많으니까요.

오너 갑질, 사장님 갑질, 부장님 갑질, 정규직 갑질, 공무원 갑질, 대기업 및 본사 갑질, 을의 갑질, 임금 갑질, 괴롭힘 갑질, 잡무 갑질, 노동시간 갑질…. 참 말도 많습니다.

세계일보는 우리들이 매일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부조리한 실체를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보도는 직장인들의 ‘온라인 해우소’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공동기획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참여 부탁합니다. 혹시 자신이 겪고 있는, 또는 주위에서 겪고 있는 갑질이나 괴롭힘, 부조리가 있다면 그 증거와 함께 알려주십시오. 확인이 가능하고 공유할 가치가 있다면 기사를 통해 소개하고 싶습니다. 제보를 보내실 이메일은 kimgija@segye.com 또는 homospiritus1969@gmail.com, 전화번호 02-2000-1181.

“접시머리에 코 박고 죽어라, OO같은 게, 살이나 빼!”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갔다 왔는데 그 누구도 제가 인사하는 거를 보지 않더라구요” “죽고 못 살 일이 아닌데… 점심때까지 뭘 해서 내라… 무조건 원하는 시간 내에, 원하는 데이터로, 원하는 양식으로.”

영혼까지 태워버린다는 간호사 사회의 악습 ‘태움’ 문화를 다룬 인천재능대 간호과 이윤주‧인하대 간호학과 이은진씨의 2014년 3월 논문 ‘직장 내 괴롭힘 개념 개발: 병원간호사를 중심으로’에 나오는 사례의 일부다. 직장내 괴롭힘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표현이다.

간호업계의 공공연한 부조리인 ‘태움’은 2016년부터 수면 위에 드러났다. 전남에서 일하던 40대 간호사의 극단적 선택을 통해서다. 공론화가 이뤄지고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거기까지였다. 결국 올해 2월 서울에서 일하던 20대 대형병원 간호사가 삶을 포기했다.

‘태움’은 직장 내 괴롭힘이 만연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일 뿐이다. 소위 ‘똥군기’라고 불리던 직장 내 괴롭힘은 한때 군대문화의 단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간호업계 사례에서 보듯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그 실상을 들여다본다.

◆우체국 갔다 늦게 왔다고 “O같은 년” 폭언 다반사

‘직장갑질119’와 ‘사무금융노동자 직장내 괴로힘 조사연구팀’,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폭언은 가장 흔한 직장 내 괴롭힘의 유형으로 꼽힌다. 위계적으로 우위에 있는 직장 상사가 아랫사람에게 행하는 것이 대부분의 사례다.

올해 1월 직장갑질119의 문을 두드린 한 제보자는 “오늘 아침까지도 육두문자를 듣고 시작했다. 회식 자리에서 ‘키메라’, ‘아수라백작’, ‘이중인격자’, ‘조폭꽃돼지’ 등 몇 년간 무참히 언어폭력에 시달렸다. 평소에도 휴무 날 전화를 바로 안 받으면 ‘야 OO년아’라고 바로 욕이 날라온다. 욕을 하면서 안경을 손으로 접었는데 욕의 사유는 우체국을 늦게 다녀와서라고 했다. 왜 우체국을 저만 가야 되나 물으니 ‘이 OO O 가치도 없는 게 O같은 년’ 저 욕이 날아왔다”고 털어놨다.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이뤄진 가혹행위 사례다.
간호업 종사자들의 호소도 이어졌다. 중소병원 수술실 간호사라고 밝힌 제보자는 의사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상담을 요청했다. 의사와 간호사는 전형적인 갑(甲)과 을(乙)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제보자는 “너무 당하고 지내다보니 자기모멸감과 자괴감, 비참함 등 심지어는 살인의 충동도 느낀다. 무시하고 멸시하고 소리 지르고… 욕하고 수술기구 던지고 반말하는 게 일상이다. 간호사들이 퇴직을 하다보니 멤버부족으로 남은 멤버의 업무는 가중되고 당직수도 늘어난다”고 호소했다.

◆음란물 보면서… 다른 회사 지인 업무 시켜

부당한 지시에 대한 고발도 있다. 실수를 빌미로 잡무를 가중시켜 고통에 시달린 한 제보자는 “실수를 하자… 간식 사오기 등 업무 외적인 것부터… 단순한 업무들은 제 몫이 됐다. 다른 상관은 근무시간을 영화, TV, 드라마… 음란물을 시청하거나 회사 팀원 단톡방으로 음란물까지 게시했다. 아는 분이 (다른) 업체에서 근무 중인 것 같은데 번역 업무를 여러 차례 지시했다. 면담을 신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또 다른 인격모독이었다”고 털어놨다.

직장 연수 중에 ‘갑질’을 경험한 한 제보자는 “왜 주는 술을 안 먹느냐… 인사를 왜 똑바로 안 하느냐… 연수 짐 싸서 돌아가라 등 갑질하는 인간 때문에 울화통이 터진다. 고작 2주 연수… 나이 조금 많다고 군대 놀이하고 욕질하고 계급질 하는 게 잘하는 것인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퇴직 시키려 책상 치우고…얼굴∙정강이 무차별 가격

직장 내 괴롭힘은 물리적 피해를 입기도 한다. 한 제보자는 잔무 문제로 보육원 원장과 말다툼이 있었다. 그 장면을 목격한 직장동료이기도 한 원장 아들에게 심한 욕설과 신체적 위협을 받았다. 제보자는 “너만 일 하냐 입 찢어버리기 전에 그만 해라… 심한 폭언을 퍼붓기 시작해… 당황한 나머지 아무 말도 못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원장님과 서로의 의견과 입장을 말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 원장아들이 사무실로 들어와 도르래 테이프를 겨냥해 들더니… 2차 폭언을 했다. 자극 받은 원장아들은 자기 책상을 향해 걸어가며 ‘칼 어디 있어! 칼로 입 찢어버리게’ 큰 소리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임직원 아들로부터 폭행을 당한 남편의 고통을 전한 제보자도 있었다. 그는 “(남편이) 출근해서 사무실에 갔을 때 책상 의자가 빠져있고 서류는 바닥에 뿌려지고 모니터는 엎어져 있었다. 남편이 집기를 정리하는데 이리 와보라고 하더니… 폭언과 함께 멱살을 잡아 벽에 밀어붙이고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고 정강이를 워커발로 3대… 남편은 그 자리를 피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알리고 회사를 나왔다”고 전했다.

상사로부터 폭행을 당한 피해 사례도 있다. 지방 출장 중 폭행 피해를 당한 제보자는 “점장이 술을 한 잔 더 하자고 했다. 술자리가 길어질수록 일을 왜 이리 못하느냐고 하는 등과 욕설이 똑같은 싸이클로 반복됐다. 많이 취하신 것 같아 ‘그만 하시고 들어가셨으면 좋겠다’고 하니… ‘말을 끊네’라는 말과 더불어 소주병으로 머리를 때리고 주먹으로 계속 머리를 강타했다. 살려주라고 빌었지만 소용없이 쫓아와서 계속 때렸다. 저희 부모가 사장을 만나 화를 삭히면서 ‘아들이 맞았다’고 얘기했다. 사장은… 제가 인성적으로 결함이 있으니 쉽게 말해 맞을 짓을 했으니 맞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털어놨다.

◆사무직에서도 따돌림 만연...“식충이” 공개 모욕도

사무금융 노동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무금융노동자 직장내 괴로힘 조사연구팀’ 등이 2015년 작성한 보고서 ‘전략적 성과관리? 전략적 괴롭힘!: 사무금융 노동자 직자 내 괴롭힘 실태조사 보고서’ 등에 따르면 많은 사무직 직장에서도 따돌림이나 공개적인 모욕주기와 협박 등의 괴롭힘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었다.

한 증권사 직원은 “지점장이 회식할 때 ‘재는 빼고 한다’든지 아니면 은근슬쩍 지점장이 회의시간에 ‘재 때문에 우리 지점이 힘들고 어렵고 너희들이 힘들다’고 하고, 주위에 몇몇 직원들도 ‘그것 좀 하지, 왜 우리 같이 힘들게 하느냐’고 해가지고 따돌림 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토로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망신을 주거나 모욕적인 언사를 쏟아내기도 한다. 한 금융권 회사원은 “회사의 고위 간부가 공개적인 자리와 회의에서 저성과자들에게 식충이라는 말을 많이 했고...월급 축내고 있다, 식충이다, 이런 식의 발언을 했다”고 회고했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7명꼴 “직장내 괴롭힘 경험”

국가인권위원회가 김정혜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에게 의뢰해 지난 2월 공개한 ‘우리 사회 직장 내 괴롭힘 실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73.3%가 최근 1년 간 한 번 이상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는 1년 이상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만 20~64세 임금근로자 1506명 대상으로 이뤄졌다.

응답자들(복수 응답)은 조사에서 대체로 △업무능력이나 성과를 부당하게 낮게 평가(43.9%) △과도한 업무를 주거나 다른 사람 업무 떠넘기기(37.6%) △출근 전ㆍ퇴근 후ㆍ휴일 업무 지시(37.1%) △정당한 이유 없이 의견 무시(36.7%) △사소한 일에 트집 잡기(36.6%) △필요하지 않은 일 과도하게 지시(35.0%) 등을 괴롭힘 유형으로 꼽았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도 지난해 11월부터 올 1월 20일까지 접수된 전체 제보 5478건을 분석한 결과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건수가 825건으로 전체의 15.1%를 차지했다. ‘임금갑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갑질 유형이었다.

◆“지속적 괴롭힘 입증 위해 평소에 녹취록 등 챙겨야”

전문가는 직장 내 괴롭힘의 상황에 처할 경우 자신이 당한 피해를 입증할 녹취록, 동영상, CC(폐쇄회로)TV, 메신저 대화록, 동료 진술서 등 자료를 챙겨야 한다고 조언했다. 단발적으로 수차례 이뤄지는 괴롭힘에는 대응할 방안이 마땅치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자료를 꼭 준비해야한다는 당부다.

김유경 돌꽃 노동법률사무소 대표노무사는 “폭언이나 폭행은 근로기준법 상에 금지조항이 있기 때문에 법 위반으로 걸 수 있지만 문제는 입증이 중요하다”며 “보통은 폭행이나 폭언이 상습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한 번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면 녹취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부당한 업무지시 등에 대해선 “법원으로 갈 수 있는 근거조항은 없지만 산재 신청이나 손해배상 청구, 국가인권위 진정 등을 통해 우회적으로 인정된 사례가 있다”며 “지속적으로 부당한 지시가 있었고 왕따가 있었고 비하 발언이 있었던 것에 대해 입증자료를 평소에 축적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정호 기자 southcross@segye.com
<공동기획> 세계일보·직장갑질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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