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은 정상회담 만찬사에서 “북측에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는 속담이 있다. 김 위원장과 나는 이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좋은 길동무가 됐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오늘 내가 걸어서 넘은 여기 판문점 분리선 구역의 비좁은 길을 온겨레가 활보하며 쉽게 오갈 수 있는 대통로로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화답했다. 남북 정상이 시급한 현안들을 풀어갈 실마리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북 정상은 한반도 평화의 새 길을 열기로 했지만 그 길이 평탄치만은 않을 것이다. 5월 중에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를 어떻게 담판짓느냐가 분수령이다.
박완규수석논설위원 |
판문점 선언에는 남북 간의 길을 열어나가자는 합의사항이 들어 있다. 관념의 길이 아닌 현실의 길이다. 비핵화에 관한 합의사항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 의미는 가볍지 않다.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로 했다”는 1조 6항 구절이다. 2조 1항에는 “앞으로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는 구절이 있다. 남북이 1일 군사분계선(MDL)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시설 철거작업에 들어간 것은 그 준비작업의 일환이다. 5월 중 열리는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에선 서해·동해지구 DMZ의 ‘남북관리구역’을 확대하는 방안이 논의된다고 한다. MDL 일대의 철로를 기준으로 서해지구 관리구역은 폭 250m로, 동해지구 관리구역은 폭 100m로 설치해 철도와 도로를 연결했는데 이를 넓히자는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합의가 이뤄지면 다른 어떤 것보다 먼저 DMZ 평화지대에 대한 남북 협의가 본격화할 것이다. DMZ 세계평화공원이 조성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남북 간의 길을 여는 일은 민족적 과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 김훈은 산문집 ‘자전거 여행·2’에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통제선 부근 마을의 풍경을 이렇게 적었다. “경의선 도로는 전쟁의 찌꺼기가 널린 들을 건너간다. 전쟁의 자취들은 일상 속에 널려 있고 봄은 임진강의 이쪽과 저쪽에 가득하다. 개성으로 가는 4차선 도로가 이 들을 지나고 있다. 여기가 통일의 길목이다.” 경의선 도로는 한반도 서쪽 1번 국도의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구간이다. 남북 간 도로·철도의 연결과 현대화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국제사회 대북제재망이 워낙 촘촘해 일일이 따져봐야 하는 데다 비용 부담 등 수반되는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길이 열릴 조짐이 보이지만, 그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당장에는 흐릿한 윤곽만 드러낼 뿐이다. 이제부터 치밀하게 길을 만들어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은 ‘도로고(道路考)’에 “길은 원래 주인이 없고 오직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라고 했다. 사람들이 다니면 길이 되는 것이다.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발을 내딛을 동기와 이유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길이 갑자기 끊길 때에 대비하는 일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동요작가 윤극영은 초기 작품 ‘반달’에 대해 “민족의 진로를 찾으려는 염원으로 결론을 삼았다”면서 2절까지 불러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2절 마지막 부분은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이다. 절로 노래를 읊조리게 된다.
박완규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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