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를 합쳐 영남(嶺南) 지방이라고 한다. 고개 남쪽 지방을 말하는 영남의 그 고개는 경북 문경의 조령(鳥嶺)을 말한다. 조령이 바로 문경새재다. 한양과 부산 동래를 잇는 약 380㎞의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은 고갯길이 문경새재였다. 새재는 새조차 힘들게 넘나들 정도로 높고 험하다 해서 이름 붙었는데, ‘억새(草)가 우거진 고개’, ‘새(新)로 뚫린 고개’, ‘하늘재와 이화령 사이(間)의 고개’라는 뜻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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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조성된 이화령길은 고속도로가 건설된 후로 자전거 마니아들이 찾는 한적한 길이 됐다. |
선비들이 걷던 험한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영남의 제1관문 주흘관부터 제3관문 조령관까지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잘 정비된 길을 걷는 것이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거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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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제1관문 주흘관은 새재의 3개 관문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원형도 잘 보존돼 있다. 이 문을 통과해야 새재길이 시작된다. |
‘태조 왕건’, ‘뿌리 깊은 나무’, ‘대왕 세종’ 등 인기 사극을 촬영한 세트장을 지나면 마사토가 깔린 폭 3~4m 황톳길이다. 옛날 나그네에게 편의를 제공하던 조령원터, 도적떼와 여행객이 번갈아 쉬어갔다는 마당바위, 시장기와 여독을 풀던 주막 등을 만난다. 이어 새재 계곡과 건너편 산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는 교귀정에 이르는데, 신·구 경상감사가 인수인계를 하던 곳이다. 순수 한글 비석인 ‘산불됴심’ 표석까지 지나면 제2관문 조곡관에 다다른다. 주흘관에서 조곡관까지는 3㎞ 정도로 길이 완만한 반면, 조령관까지 3.5㎞ 구간은 상대적으로 가파르다. 조령관을 지나면 충북 괴산이다. 새재길을 걷다 보면 중간중간 옛길 가는 길 표시를 볼 수 있다. 선비들이 진짜 새재를 넘던 길은 바로 그 길이다.

문경읍 관음리와 충북 충주 상모면 미륵리를 잇는 하늘재 옛길이 대표적이다. 기록에 남아 있는 백두대간을 넘는 최초의 고갯길로 신라 때인 156년 개척됐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아달라이사금 3년(156년) 4월에 계립령로를 열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어 2년 뒤인 158년에 죽령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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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충주에 있는 하늘재 표지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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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새재 계곡과 건너편 산봉우리를 조망할 수 있는 교귀정은 신·구 경상감사가 인계인수를 하던 곳이다. |
하늘재에 이어 문경새재가 신작로가 됐지만, 일제강점기 때 이화령길이 뚫리면서 새재도 옛길이 돼버렸다. 이화령은 문경과 괴산을 잇는 고개였는데, 일제가 1925년 한반도 신작로화를 명분으로 이화령에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도로를 개설했다. 이화령 역시 중부내륙고속도로 건설로 지금은 자전거 마니아들의 성지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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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비리와 이어진 고모산성. |
문경=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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