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중 가장 물리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무기는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천사와 악마’에 등장했던 반물질 폭탄일 것이다.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의 가속기에서 만들어진 반물질은 범인에게 탈취된 후 바티칸시의 상공에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진다.
반물질의 존재는 1920년대 이론적으로 예측되었고 1932년 우주에서 날아온 우주선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인류 앞에 드러냈다. 물질에 대한 반물질의 관계는 나와 거울 속에 비친 나로 비유해 볼 수 있다. 거울 속의 나는 좌우가 바뀐 것을 제외하면 현실의 나와 똑같다. 반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는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와 질량은 똑같지만 그 외 성질들은 반대이다. 가령 음전하를 띤 전자의 반입자는 전자와 질량은 동일하나 양전하를 띠는 양전자다. 수소 원자의 핵인 양성자의 반입자는 음전하를 띠는 반양성자다. 수소 원자에선 양성자 주변을 전자가 돌지만, 수소의 반물질인 반수소에선 반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 주위를 양전자가 돈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에 따르면 반물질과 물질은 동일한 특성을 나타낸다. 가령 우리 앞에 반물질로 구성된 사과가 있더라도 그것은 물질로 이루어진 사과와 똑같이 보인다. 그러나 반물질 사과로 의심된다면 그것을 절대 만져서는 안 된다. 반물질과 물질이 만나면 질량이 소멸하면서 빛에너지, 즉 감마선 에너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반물질 폭탄이 가능한 이유다. 아인슈타인이 밝혔듯이 질량은 에너지의 한 형태인 것이다.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이 핵분열 혹은 핵융합의 과정에서 손실되는 약간의 질량을 에너지로 바꾸는데 반해 반물질 폭탄은 질량의 100%를 에너지로 바꾸니 얼마나 효율적인 폭탄인가. 이 때문에 미 공군의 한 간부가 반물질 무기를 언급했다는 기록이 있다.
반물질은 물질과 만나자마자 소멸하기에 다루기가 그만큼 까다롭다. 영화처럼 손에 쥘 정도의 작은 용기에 담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흥미롭게도 위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유럽 입자물리 연구소에서 올 초부터 트럭을 이용한 반물질 수송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가속기의 반물질 공장에서 형성되는 반양성자 10억 개를 전자기장을 이용한 덫에 가두고 이를 수백 미터 떨어진 연구실로 옮길 계획이다. 이렇게 옮긴 반양성자를 방사성 핵과 충돌시켜 핵의 비밀을 파헤침과 동시에 중성자별의 내부를 이해하기 위한 단초를 얻는다고 한다.
혹자는 10억 개나 되는 반양성자를 실은 트럭을 누군가 탈취해 폭탄으로 사용하거나 트럭이 전복되어 물질과 만나면 영화에서 본 것처럼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런 염려는 붙들어 두어도 될 것 같다. 10억 개의 반양성자를 모두 에너지로 변환해도 꼬마전구 하나 켜기 힘들 정도로 미약한 에너지에 불과하다. 히로시마에서 터진 원폭 정도의 폭발력을 내기 위해선 반양성자가 0.5 그램, 개수로 치면 1 뒤에 0이 스물셋이나 붙을 정도로 많아야 한다. 현재의 기술로 이 정도 양을 만들려면 수천억 년이 걸린다니 어느 국방부가 반물질 폭탄의 개발에 매달리겠는가.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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