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판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어땠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리한 선택으로 우려를 씻었다. 탄탄한 스토리의 뼈대에 짜임을 달리한 연출과 한국적 정서를 입혀 또 다른 감동을 만들어 냈다.
영화는 엄마 수아(손예진)가 남긴 동화책 이야기로 시작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구름나라가 있단다. 죽은이는 사람들이 기억해주면 하늘나라에 가지 않고 구름나라에 머무르게 된대. 엄마 펭귄은 구름나라에서 아기 펭귄을 보며 매일 울었는데 장마가 오자 기적이 일어났어. 빗방울 열차를 타고 아기펭귄에게 가서 다시 행복한 시간을 보낸 거야. 장마가 끝나고 엄마 펭귄은 구름나라로 돌아갔지만 모자는 더 이상 울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대.”
비가 오면 돌아오겠다는 엄마의 말을 믿고 1년을 기다린 여덟 살 지호(김지환)는,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일기예보에 들뜬다.
“아빠도 좋지? 장마 오면 엄마도 오잖아.”
드디어 첫 장맛비가 내리던 날, 아빠 우진(소지섭)과 지호는 심포리 간이역에 간다. 엄마가 진짜로 왔다. 하지만 수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부자는 엄마가 죽었었단 사실을 숨긴 채 집에 적응하도록 최선을 다하고, 세 식구는 다시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장마가 끝나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수아. 6주간의 짧은 행복을 남긴 채, 가족은 어느 햇볕 쨍한 날 슬픈 이별을 한다. 이후 우진은 수아의 일기장을 통해 죽은 수아가 돌아와 잠시 머물다 간 ‘기적’의 비밀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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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명 소설 원작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세상을 떠난 엄마가 장마에 다시 돌아온다는 기적 같은 사랑 이야기다. 원작의 재미에 한국적 정서를 입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한국판은 일본판과 같은 내용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한국적 코드에 맞는 설정들이 공감을 높인다. 비가 오게 하기 위해 일본판 아들 유우지는 인형을 거꾸로 달아 놓는 반면, 한국판은 ‘빨래를 하면 꼭 비가 온다’, ‘세차를 하면 비가 온다’는 징크스를 활용한다. 과거 회상 장면은 공중전화, 편지 등 아날로그 감성을 듬뿍 담아 관객들을 시간여행에 몰입하게 한다.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첫사랑의 풋풋함과 어설픔’ 코드도 부각됐다. 연애를 시작한 20대에도, 수아가 기억을 잃고 돌아온 30대에도 그들은 처음이다. 서툴기에 벌어지는 ‘웃픈’ 상황의 연속에 미소가 지어진다.
죽은이가 머무는 곳을 ‘구름나라’로 설정한 것은 가장 돋보이는 변주다. 엄마의 동화가 가진 의미와 기적의 프로세스가 원작보다 더 뚜렷하다. “원작을 너무나 좋아하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는 이장훈 감독의 신중한 접근과 노력의 결과다.

일본판 영화에서 늘 맥없고 슬퍼보였던 아빠는 소지섭이 연기하면서 ‘덜’ 약해졌다. 대신 순수함에서 오는 허당끼와 귀여움이 있다. 이 같은 우진의 성격과 씩씩한 수아가 만나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 일본판과 눈에 띄게 다른 특징이다. 웃음을 대놓고 노린 우진의 친구 홍구 캐릭터는 일본판의 잔잔한 분위기를 사랑하는 팬이라면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위트 있는 원작 소설과 비교한다면 전체적 분위기는 한국판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처음 스크린에 데뷔한 아역 김지환의 발견은 반갑다. 엄마 옷장에 들어가 원피스 소매를 붙들고 잠드는 짠한 모습부터 엄마를 보내지 않으려 비가 오게 하려는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은 눈물샘 폭발의 기폭제 역할을 한다.
일본판은 성장한 아들의 모습으로 영화가 시작되는데 한국판은 엔딩에 등장한다. 엄마의 부재 속에서도 훌륭하게 자란 지호는 관객들을 ‘분명’ 흐뭇하게 할 것이다.
영화는 질문한다. 당신은 단 한 사람과의 행복을 위해 일생의 대부분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내 사랑, 기다려 주세요. 지금 만나러 갑니다.’
수아의 벅차고 뜨거운 독백이 길게 남는다. 달달한 화이트데이 개봉.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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