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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권력형 성폭력 피해 땐 ‘기록’ 꼭 해야

입력 : 2018-02-27 18:49:10 수정 : 2018-02-27 20: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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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생계·친분 등 얽혀 대처 어려워 / 대응과정서 일관된 구체진술 큰 도움 / 거부 못했다 자책 말고 심리상담 필요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머리가 하얘졌다. 너무 무섭고 떨렸다.’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백이다.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대개 권위·생계·사적 친분이 개입된 사이에서 발생해 대처가 어렵다. ‘미투’ 운동이 공감을 얻고 있지만 막상 같은 성범죄에 맞닥뜨릴 경우 여전히 대응이 쉽지 않은 이유다. 전문가들은 권력형 성폭력 피해를 입을 경우 기록·상담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피해 사실을 기록하며 상처를 돌아보고 증거로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건 당시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어도 자책하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G피해 사실 기록… 주변·기관과 상담을

피해를 입었다면 무엇보다 기록이 중요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피해자가 나중에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외상 등으로 기억이 조각나고 헷갈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향후 대응 과정에서도 진술의 일관성, 구체성이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 역시 “사건 당시 정황·느낌을 기록해 놓으면 증거로 활용할 수 있고, 본인이 사건을 정리하는 데 힘이 된다”고 전했다. 26일 체포된 극단 번작이 대표 조증윤이 ‘합의된 관계였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데서 보듯 가해자 대부분은 조사 과정에서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 역시 성추행 의혹에 대해 “오래 전 일이라 그런 기억이 없다”고 말했다.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피해 발생 후 고소할지, 소속 공간에 얘기할지, 안정을 위한 시간을 가질지 명확히 인지하고 움직여야 한다”며 “성폭력 범죄가 비친고죄로 전환됐기에 신고 기간에 대해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설명했다.

이들은 상담기관 등 조력자의 도움을 꼭 받으라고 조언했다.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전국에 성폭력상담소, 해바라기 아동센터 등이 있다. 어려우면 주변의 믿을 만한 사람에게라도 상의하고 심리적으로 힘을 내는 게 확실히 많은 도움이 된다”며 “성폭력상담소에는 판례나 전문 자료가 축적돼 있기에 상담이라도 꼭 하는 편이 좋다”고 밝혔다. 향후 법적 대응을 위해서는 “모을 수 있는 자료는 최대한 모으는 게 중요하다”며 “성폭력이라 느낀 정황, 위압성에 대해 본인의 호소를 일관되게 구체적으로 밀고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선은 발생 즉시 거부… 못했어도 자책 말아야

성폭력 사건에서 최선은 당연히 현장에서 즉시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쉽지 않다. 여성의전화 관계자는 “가장 좋은 건 성폭력 사건 발생 즉시 거절하는 것”이라며 “그게 피해자의 정서에도 제일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와 평소 관계 때문에 피해를 인지하기 쉽지 않거나 불이익이 두려워 문제제기를 못 할 수 있다”며 “설령 현장에서 거부하지 못했어도 절대 자책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문화계 12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피해자 중 자리를 옮기거나 뛰어서 도망친 이는 20%에 불과했고 39.5%는 아무 대응을 하지 못했다. 조치를 취하지 못한 이유로는 △그 사람의 행동이 성폭력인지 몰라서(40.9%) △어떤 행동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아서(28.4%) △말을 안 들으면 큰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23.1%) 등이 있었다.

이윤택 성폭행을 폭로한 김보리(가명)씨도 고발글에서 “이런 일은 어…어… 하는 사이에 일어난다. 나이가 어리고 사회 경험이 없을 수록 대처하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은 권력을 쥔 연출가·교수·작가의 폭력에 숨 죽이거나 ‘참으라’는 조언을 들어야 했다. ‘제대로 대응 못했다’는 생각은 자책으로 이어져 피해자를 또한번 괴롭혔다.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명확하게 저항하기 어려우면 비언어적이고 간접적인 거절 의사를 보일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자리를 피하거나, 다른 사람 옆으로 가라”고 조언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건 발생 후 주변인들에게 ‘어느 자리에 있었는데 뭐 때문에 힘들었다, 너도 봤느냐’라고 얘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언어적 성희롱의 경우 “가해자의 말을 반복해서 들려줘 그게 얼마나 잘못된 말인지 되돌려주거나 ‘선배님 요새 그런 얘기하면 큰일나요’ 식으로 가볍게 제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 “피해자뿐 아니라, 주변인들도 돕는 방법들을 생각해보면 좋다”며 “목격자가 되어준다든지 피해자가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문화를 조성하고 ‘네 탓이 아니다’라고 지지해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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