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1일까지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신진작가전에 초대받은 우정수(33) 작가는 ‘그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시장엔 여러 장의 패널그림으로 구성된 대형 작품을 내걸었다. 하나의 이야기(서사)로 설명이 안 되는 작품이다. 자유로운 드로잉들이 제각각 춤을 추고 있다. 일부분에 서사가 강한 예수 도상이 보이지만 아우라가 없는 일반 대중속의 모습이다. 서사가 사라진 느낌이다. 대형작품 이웃엔 아주 작은 인물그림이 걸려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작품이다. 일부러 그렇게 배치해 그림의 서사에서 탈출해 보려는 작가의 몸짓을 보여주고 있다. 그림에서 완벽한 서사가 그리 중요한가 묻는 듯하다.
“서사가 강한 하나의 인물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선 선들을 극도로 자제시키게 된다. 결국 자유로운 드로잉 선들은 다듬어지면서 사라지게 된다. 서사와 회화적 표현(붓의 유희) 간의 관계와 긴장감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가 언급하는 ‘회화적 표현’이란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하고, 구체적인 의미 없이 조형적이거나 감정적인 선을 조율하기 위해 사용되는 붓질이다. 흔히 추상적 표현이라고 쓰는 것을 포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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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하게 살아가는 젊은 작가의 자화상을 엿보게 해주는 우정수 작가. 그는 “서사를 전달하기 위해 이미지를 글처럼 명료하게 그려내려 했지만, 그러한 의도가 제약으로 작용하자 표현 형식들에 대한 탐색에 나서게 됐다”고 작업배경을 설명했다. |
그는 점점 많아진 제약과 함께 이미지가 너무 언어화되고 , 단순한 구성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최근 들어 종이에서 패널로 재료를 바꿔 작업하다 보니, 다층의 레이어와 러프한 선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런 것들을 가능케 해준 것은 작가를 지원해주는 기금과 레지던시 프로그램들이다. 제작비와 공간적 제약이 없어지면서 다양한 방식을 부담 없이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만들어졌던 제약들’을 하나하나 풀어가고 있다. 앞으로의 작업들은 회화적 표현과 함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더불어 과연 내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제약들이 정말 필요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해보려고 한다.”
그가 ‘그리는 것’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삶을 풍요롭게 하듯, 그리는 것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그의 그림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지난밤 그는 한 갤러리에서 열리는 펜드로잉전 마무리를 위해 피곤한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새내기 작가는 그렇게 ‘미래의 불안’을 떨쳐간다.
중학교 방과후 교사로 작업비를 충당했던 그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에 입주해 작업을 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울문화재단 기금도 받았다.
“작업비 걱정 없이 이렇게 그림에만 집중할 시기가 별로 많지 않았다.”
그의 20대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이해되지 못하는 것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시간이었다.
“축적하고 쌓아온 지식은 부유하는 단어들로 느껴졌고, 현실 속 사람들은 욕심이라는 단순한 감정 속에서 복잡한 이해관계를 만들어 냈다. 뭔가 허술하고 설득력 없는 세상이 계속 이어져 간다는 게 이상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결국 이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이해되지 않는 것을 언제까지 바라보고 있어야 하나 생각하게 됐다.”
그는 결국 바뀌었다. 제일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 ‘긍정’이라는 단어였다.
“이전까지 나는 한국에서 소비되는 긍정이라는 것을 혐오했다. 책임감 없고 굉장히 강박적인 모습으로 소비되었고, 어떤 경우 일종의 샤머니즘적인 형태도 취했다. 그 얇고 무책임한 상징이 갑자기 생각나게 되는 데는 내 주변환경과 사회변화가 일조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항상 부정에서 시작하려 했고, 내가 바라본 세상은 부정의 변증법이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비판, 부정으로 출발하는 이론들. 어쩌면 이러한 부정적인 태도 속에서 부조리한 것은 당연하다 생각하며 실망을 피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아나키즘에 대한 책들을 읽었다. 단순히 아나키즘 이미지에 끌린 것도 있다.
“동의할 수는 없었지만 책을 읽을수록 너무 이상적인 생각과 인간의식에 대한 높은 기준에 이끌렸다.아나키즘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결국 ‘인간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다. 새로운 종류의 부정을 찾기 위해 본 책에서 오히려 ‘긍정’을 보게 되서 얼떨떨했다. 그리고 긍정으로 이러한 다양한 층위와 무게를 만들어 내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 젊은 작가의 자화상을 보는 듯하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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