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빙판이 미끄러운 건 마찰이 작기 때문이다. 접촉한 물체 사이의 마찰력이란 서로 미끄러지는 운동에 저항하는 힘이다. 재질이나 표면의 미세한 굴곡 등이 마찰에 영향을 미치나 표면의 원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전자기력이 마찰력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런데 얼음의 표면은 왜 그리 미끄러울까. 이는 오랫동안 과학자들을 고민에 빠뜨린 문제였다.
얼음은 물분자들이 수소결합을 통해 3차원 네트워크로 묶여 있는 고체다. 그렇지만 얼음 표면의 분자들은 연결될 수 있는 분자들이 부족해 다소 무질서하며 유동성을 가지는 얇은 층을 형성한다. 특히 0도보다 약간 낮은 온도에서는 이 얇은 수막의 유동성이 커지면서 얼음 특유의 미끄러움이 쉽게 형성된다. 게다가 그 위를 지나가는 썰매나 스케이트에 의해 발생하는 마찰열은 얼음을 녹여 수막을 더 두껍게 만든다.
이처럼 미끄러운 얼음 위에서도 마찰은 존재한다. 마찰력이 전혀 없다면 선수들은 걷거나 뛸 수 없다. 물리학의 운동 법칙 중에 작용-반작용 법칙이 있다. 스케이팅으로 설명하자면, 선수가 스케이트 날로 빙판을 밀어 힘(작용)을 가하면 빙판은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인 힘(반작용)을 선수에게 가한다는 것이다. 반작용의 힘을 받은 선수의 몸은 앞으로 가속되며 빨라진다. 선수가 얼음을 더 세게 뒤로 지칠수록 얼음이 선수를 미는 반작용이 강해져 더욱 속도가 붙는다. 이에 스케이팅 선수들은 출발 초기에 가능한 한 마찰력을 크게 해 앞으로 튀어나가려 한다. 선수들이 스케이트 날을 운동 방향에 대해 큰 각도로 틀어서 얼음을 지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속도가 충분히 난 상태에서는 얼음 및 공기와의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스켈레톤 선수들은 몸을 가능한 한 낮춰 공기와의 마찰을 줄인다. 일부 종목의 선수복에는 골프공과 비슷하게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는 홈들을 새기기도 한다. 쇼트트랙 선수들이 곡선 구간을 돌며 바닥을 짚을 때 사용하는 개구리장갑의 끝부분에도 얼음과의 마찰을 줄이는 물질이 발라져 있다.
그런데 얼음 위 마찰력의 미묘한 작용을 실감나게 볼 수 있는 스포츠는 아마도 컬링일 것이다. 컬링의 컬(curl)은 휘어진다는 뜻이다. 초기에 회전을 주면 컬링 스톤은 가로막은 상대편 가드 스톤을 피해 휘어져 나아갈 수 있다. 스웨덴 웁살라대학 연구팀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화강암 재질인 스톤 표면의 미세한 거칠기로 인해 빙판에 형성되는 스크래치가 스톤 회전의 주요한 원인이라 한다. 즉, 스톤의 앞부분이 회전하면서 형성하는 비스듬한 스크래치가 뒷부분의 움직임에 영향을 주어 스톤을 회전시킨다는 것이다. 게다가 움직이는 스톤의 앞에서 선수들이 부지런히 행하는 빗자루질(스위핑)은 마찰력을 줄여 스톤을 더 멀리까지 휘어져 나아가게 한다. 빙판 위에서 펼쳐지는 선수의 투지, 환희, 눈물에 공감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들의 동작 뒤에 숨어 있는 물리법칙의 미묘한 작용까지 고려한다면 동계올림픽의 즐거움이 배가될 것 같다.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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