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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게임 좋아하는 30대는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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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2-05 20:53:06 수정 : 2018-02-05 21: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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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습관적으로 어머니의 젖무덤을 찾곤 했다. 동네 ‘골목대장’과 한 판 싸운 뒤 얻어터지거나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울고 싶을 때면 어머니의 따뜻한 품에 안겼다. 온몸이 나른하게 녹아내리면서 그 순간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나 달콤한 꿈을 꿀 수 있었다. 지금도 베개를 끌어안고 자는 걸 보면 그때의 느낌을 잊지 못하는 것 같다.

어머니의 품을 찾기에 다소 쑥스러운 나이가 된 지금은 모바일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를 하면서 안정을 찾는다. 업무를 마치고 자기 전에 잠깐만 한다는 것이 어느새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게임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게임까지 섭렵한 수준이 됐다. 접속 후 현실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다른 역할을 맡는 ‘또 다른 나’를 보면 내일 걱정으로 오늘의 머리가 복잡한 나날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몬스터들을 때려잡으며 인간 고유의 ‘파괴 본능’을 해소하는 건 덤이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올해로 서른 살이 됐지만 여전히 게임을 놓지 못하면서 “애처럼 굴지 말라”는 핀잔을 듣는다. 이른바 ‘키덜트(유년시절의 취미가 있는 어른)’ 대열에 합류한 셈이다. 그런데 게임을 즐겨 하는 직장인들은 나뿐만이 아니다. 국산 MMORPG 게임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리니지M은 사용자의 주 연령대가 30~40대라 ‘린저씨’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이처럼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MMORPG 열풍이 부는 데는 가상공간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삶의 애환이 담겼다. 직장 내 중요한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인간관계가 꼽힌다. 게임 내에도 ‘연맹’이나 ‘혈맹’ 등 집단시스템이 존재해 인간관계를 맺는다. 이곳에서 밉보이지 않으려면 일정시간 게임을 플레이해 연맹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 현실과 비슷하게 ‘호혜성’을 기반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셈이다.

그러나 게임상에서는 기본적인 규칙만 지키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더 이상의 노력을 요하지 않는다. 나이, 신분에 따른 고하(高下)가 없어 상대방의 비위를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된다. 또한 언제든지 게임을 종료하는 것으로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큼 한없이 가볍다는 게 매력이다. 수많은 관계 속에 살아가며 이를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는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요새 직장인들은 연차도 마음 놓고 쓰지 못할 만큼 일 걱정이 태산이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해 11월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연차를 모두 사용한 직장인은 22.3%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직장인들은 만성적인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기도 한다. 쉬면서도 일 생각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MMORPG에 접속해 가상공간의 역할에 몰두하다 보면 업무를 잊게 된다. 치통이 신경 쓰여 온 신경을 그곳에 집중하다가 다른 곳에 더 큰 자극이 오면 일순 신경이 옮겨가는 것과 비슷하다.

퇴근 후에도 자신을 옭아매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단순히 철없는 키덜트 현상으로만 봐야 할까. 휴식도 없이 쉼 없이 달려온 직장인들에게 MMORPG는 어머니의 품처럼 수시로 안길 수 있는 어른들의 쉼터나 다름없다. 오늘도 바글바글한 게임 속 캐릭터들은 자유를 찾아 떠돌고 있다.

안병수 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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